새 땅 이야기 18.
해가 없어 어두웠던 3,4월에는 예상을 못했던 보라색 노란색 꽃들이, 5월과 함께 피어나더니 이제 꽃은 지고, 6월이네요.
그 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그곳도 초여름이겠네요. 저희는 40도 안팎의 공기와 심한 습도에 조금씩 적응을 해가고 있습니다. 이곳은 싱가폴이나 필리핀과 달리 사계절이 있는 편이어서 5월까지가 봄이고, 6,7,8월은 밤에 조차 습도가 안 사라지는 한여름이라고 하네요. 그래도 해가 없던 3월에 비해 환하고 밝은 것, 빨래가 마르는 것만으로도 감사를 느낍니다.
처음 이곳에 도착해서 보낸 첫 두 달은, 세 아이 도시락을 준비하는 새벽부터, 오전에 시작 되어 오후 네 시까지 했던 언어수업과, 돌아와서 저녁 해서 먹고, 아이들 챙기고 언어를 복습하다가 잠이 들 때까지, 내내 곁을 지키는 습한 이곳의 날씨가 쉽지 않았습니다. 3월엔, 자고 깨면 이불에 습기가 베어 들어 무겁게 젖어 있는 것을 느낄 정도였습니다. 게다가 국화와 향으로 숭배 받던 자리에 말씀과 찬양이 스며드는 것을 만만히 두지 않는 어떤 존재와의 싸움이, 고국에서와는 다른 강도로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날씨처럼 마음을 무겁게 하는 방식으로….
그 가운데 아버지의 도움을 요청하며 펼쳐 든 책이 한 권 있었습니다. 즐겨 읽던 낡은 책인데 아버지께 가까이 가는 연습을 40년 동안 했던 분의 이야기였습니다. 평생을 수도원 부엌에서 일을 하면서도 시선을 땅에 두지 않고 하늘에 두었기에, 그분과 함께 모든 일을 즐거이 한 이야기가 여러 새로운 도전들 앞에서 새삼 일깨움을 주었습니다. 기후든, 언어든, 다른 무엇에 아랑곳 하지 않고, 우리가 오직 그분께 시선을 두기만 한다면,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을 공급받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냈습니다. 그러자 지난 20여 년을 우리와 함께 해주신 아버지의 은혜가 떠오르며, 앞으로 이곳에서 보낼 날들 가운데 우리를 통해 그들에게 주실 좋은 것들을 기대하며 기뻐하게 되었습니다. 학개의 이야기처럼, 곡식 종자가 창고에 없더라도 우리가 손을 모으며 지대를 쌓는 날부터 기억을 해주시는 그분이 우리 곁에 계시기에…..
그 후 지난 한 달은 수업도 조금 조정이 되었고, 한결 적응이 되어 여유로워진 마음으로 지낼 수 있었습니다. 잃어버린 자전거 대신에 아버지의 선물로 주어진 새 자전거로 의현이의 ‘동네 한 바퀴’의 즐거움이 회복되었고, 이동의 활기만큼이나 마음에도 생기가 돌아서 새 땅을 알아가며, 이들의 문화를 익혀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함께 언어를 익히는 세 명의 싱글 멤버들과 저희를 가르치는 현지인 선생님과 저희 집에서 함께 식사하며, 서로를 격려했습니다. 마치 갓난 아이처럼, 백일이 관건이라는 적응의 시기를 무사히(?)넘겨 가는 것도, 생각해 보면 연약한 저희를 보내놓고 아버지 앞에 마음을 쏟아 주신 그 사랑 때문인 것을 알기에, 마음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이곳에서 저희 팀이 일을 한 지는 18년이 되었지만, 메콩 지역에 속해서 지금껏 운영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난 4월 말에는 처음으로 독립을 선포하는 컨퍼런스를 태국에서 가졌습니다. 채 스무 명이 안 되는 멤버인데다가, 그 중 절반은 지난 1년 안에 소속이 되었기에 보기에는 미약하고 어눌해 보이지만, 무언가 꿈틀거리는 새 기운이 있었습니다. 지난 시절을 어려운 일터에서 견디어 준 선배들의 노고에 감사하며, 100년 전 한국에서처럼, 속히 그분의 때가 여기에도 임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근 일주일을 벅찬 시간을 보냈습니다. 또 향후 1년 안에 도착할 새로운 멤버들이 미국과 캐나다와 영국에서 준비 중에 있기에 머잖아 변화가 있을 것 같고, 그렇게 되기를 소망하며 손을 모으고 있습니다.
저희는 석 달 째 다니엘 프로그램으로 언어수업을 받고 있습니다. ‘참여하며 성장하는 언어 습득 법’이라고, 목동에서 훈련을 받을 때 배웠던 GPA프로그램입니다. 마치 어린 아이가 책과 공책이 아닌, 수도 없이 듣는 가운데 어느 날 말문이 트이듯이, 석 달 째인 지금도 많은 부분을 저희를 지도하는 교사로부터 정확한 발음으로 어휘와 문장을 듣고, 그 반복을 바탕으로 간단한 문장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처음 100시간은 오직 듣기만 하며 그림에 나온 상황을 맞춰서 지적하는 것만을 거의 했습니다. 그것으로 표현을 위한 빙산을 만들어 가는 것이어서, 영어나 독일어를 배우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경험을 하면서, 재미있게 익히고 있습니다. 더구나 이 나라 말은 여섯 개의 성조가 있어서 톤을 다르게 하면 계속 발음을 틀렸다고 하기에, 때로 한국어에는 없는 몇 개의 음운을 어떻게 발음해 낼 수 있을지, 난감해 하며 웃기도 합니다. 집에 와서도 녹음한 것을 듣고 복습 하며, 언어가 되는 만큼 이들과 더 가까워질 것을 알기에 부지런히 익히고 있습니다.
대학에 속해서 언어를 배우면 비자를 발급받기에는 좀 더 수월한데, 실제적인 언어를 익히는 데에는 이 과정이 더 적합해서, 앞으로도 석 달은 더 이 프로그램으로만 언어를 익히고, 그 후에는 대학 언어 과정과 병행해서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지난 번과 같은 방식으로 석 달은 비자가 더 연장이 되었습니다. 언어를 익히는 데에 집중력과 즐거움을 유지할 수 있도록 계속 손을 모아주시기 바랍니다.
아이들은 잘 지내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이곳 언어를 배워와서는 식사 시간에 저희들과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아이들은 저희만큼 성조를 깐깐하게 교정을 받지 않아서 더 쉽게 여기는 것 같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감사한 것은 의민이의 체중이 늘면서 건강이 회복 되어, 요즘은 점심을 먹고는 일주일에 사흘은 여학생 여섯 명이 빈 교실에 모여 자신들의 진로와 이 땅과 학교를 위해 함께 손을 모으는 시간도 갖는다고 합니다. 모두들 염려와 사랑으로 손을 모아주신 덕분입니다. 그 힘이 저희가 기쁨으로 생활을 하며, 아버지께서 맡기신 일을 앞으로 감당해 갈 동력임을 늘 기억해주시기를 소망합니다. 6월 중순에는 의민이에게 레슨을 해주시는 현지인 선생님(국립음대 소속)이 이곳 음악인들과 저희 멤버들을 초청해서 음대 강당에서 의민이와 아빠가 한 시간 연주를 해주도록 요청을 했습니다. 언어를 익힌 후에 이곳 음악인들과의 만남을 가지게 될 줄 알았는데, 앞당겨 질 것 같습니다. 이 시간이, 이 나라 음악인들과의 좋은 만남이 되고, 앞으로의 길과 선하게 연결되는 계기가 되고,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는 연주회가 되도록 손을 모아주시기 바랍니다.
석 달 간의 이야기를 쓰다 보니 길어졌네요. 이제부터 시작되는 여름을 건강하게 지내시기를, 그리고 늘 그분의 임재 가운데 머무르시도록, 저희도 마음을 쏟겠습니다. 그럼, 다음 이야기를 들려드릴 때까지 평안하십시요!
2012년 6월, 약속의 새 땅에서 신반석, 샤론, 의민, 의림, 의현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