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폴로 소식 6. 「폭풍우 속에서도......」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 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니라 ......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로마서 14:7 - 9,17)
아침에 말씀을 묵상하면서 지난 7월의 경험을 통해 이 본문을 조금은 이해하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6월 중순부터 본격적인 우기가 시작되어 석 달 간 건기의 따가운 태양으로 지친 대지가 다시 살아나는 듯해서 매일 비가 내려도 매번 반가웠는데, 지난 7월 13일 밤의 태풍은 더는 반가운 빗소리라고만 할 수 없게 했습니다. 저녁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밤부터는 정전이 되고, 그렇게 키가 큰 나무들이 거세게 휘몰아치는 폭풍우를 견디지 못해 끊임없이 창에 부딪혔습니다. 잠자리에 누웠으나 온 집의 창문이 덜컹대고 벽에 세게 부딪히는 소리에 몇 번이나 일어나 새로 닫기를 거듭, 드디어 새벽 2시 경부터는 의민이의 방 천장에서 비가 방으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머리맡에 떨어지는 비에 놀라 잠에서 깨어난 딸을 우리 방으로 옮겨 매트를 깔고 자게하고 방바닥에 양동이를 받혀놓고, 양동이의 물이 넘치지 않기를 기도했습니다. 가장 높은 곳의 창에는 실금이 그어지고 비는 결코 멈출 것 같지 않은 기세로 쏟아 부어졌습니다. 지금껏 본 적이 없었던 비, 사선으로 굵게 때려 온 방을 물바다로 만들 것 같은 비속에서, 문득 선교훈련을 받던 중에 풍토병으로 주님 곁으로 가서 오히려 온 교회를 선교의 열정으로 불타게 했던 한 선교사가 떠올랐습니다. 남편에게 회개할 것이 있으면 회개하자고 했습니다. 그 말에 남편은 웃음을 지었지만, 진심으로 떠오르는 죄들을 놓고 회개를 하고, 이 태풍으로 지붕을 제대로 얹지도 못하고 사는 이들에게 큰 피해가 없도록 기도했습니다.
그러다가 선잠이 들었는데 아침 일찍 아이들 학교가 휴교한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비가 그치고 다시 해가 비치기 시작한 동네는, 뽑혀지고 부러진 큰 나무들로 다닐 수가 없게 되었고, 오전 내내 남편과 아이들은 도로에 넘어져 있는 나무들을 치우고, 저는 집 안의 비가 들어온 이곳저곳을 치웠습니다. 아쉽게도 필리핀 전역에 몇 십 명의 인명피해가 있었고, 안티폴로 곳곳에 고목이 뽑혀져 며칠 간 복구 작업을 했습니다. 그로인해 삼일 간 정전이 되고, 통신은 두절되고, 하루 동안은 수돗물이 안 나왔습니다. 섬나라에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났습니다.
그렇게 서서히 태풍의 영향에서 벗어나 모든 것이 복구된 것을 감사하며 생활의 리듬을 찾고 있던 중에 차를 고치러 간 남편으로부터 급하게 전화가 왔습니다. 교통경찰의 수신호를 받아 수리 가게 앞에서 좌회전 하던 중, 중앙차선을 넘어 달려오던 오토바이가 차에 부딪혀서 운전자가 넘어져서 다리를 약간 다쳤다는 것이었습니다. 천천히 운전하던 중이라 남편은 아무 이상이 없었고 차는 앞 번호판만 망가졌는데, 가이드를 해주던 교통경찰은 그 자리에서 사라졌습니다. 오후 2시 이후부터 밤까지 경찰서와 병원을 오가며 각종 검사와 치료와 사실진술들을 하는데 저희가 다니는 학교의 현지인 직원 두 분이 오셔서 현지어로 대화를 해줬습니다. 그래서 치료비와 오토바이 수리비와 얼마간의 생활비를 저희가 지불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했습니다. 다친 분에게는 그렇게 된 것을 유감으로 생각하고 미안한 마음으로 허깅하고 축복하며 집으로 왔습니다. 쌍방에 많이 안 다친 것이 감사하고, 하루에 문제가 해결되도록 많은 선교사님들이 도와주신 것이 감사했는데도 마음 한 켠이 무거웠습니다.
그런데 잠 들기 전에 함께 기도하다가 둘이 같은 소리로 회개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무엇보다 복음을 모르는 가난한 나라의 선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경우에도 그들의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하는데 근래 몇 차례, 갑자기 현지인에게 가방을 뺏기거나 셀폰을 뺏긴 한국인, 미국인들을 가까이에서 접하면서 느꼈던 마음이 떠올랐습니다. 내일을 대비하지 않고, 경제적으로 어려우면서도 파티와 즐거움을 추구하며 낭비하고, 생활은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의 독특한 특성을 이해하기 어려워했지, 400년간 스페인의 식민지로 미래가 없는 삶을 살며 스페인의 문화를 답습하며, 가능한 한 어려워도 웃고 즐기며 나름대로 극복하려 하는 삶의 태도를 긍휼한 마음으로 보지 못한 것을 회개했습니다. 정치인들의 뿌리 깊은 부패가 국민들의 삶을 더 어둡게 하는 구조적인 열악함이 이들의 아픔인데......그리고 처음 조선에 와서 선교사역을 할 때 집에 돌을 던지는 사람들이나 대놓고 박해를 하는 많은 경우에도 참고, 생명을 걸고 주님의 마음으로 우리를 복음으로 섬겨준 선교사님들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우리에게도 그러한 영혼에 대한 참 사랑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어려움을 통해 여기에 우리가 있는 목적을 다시금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오늘까지 열흘이 지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음 날 바로 차의 고장 원인을 찾아 고치게 해주셔서 평안히 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삼일에 걸친 공사로 지붕이 고쳐져서 비속에서도 안전히 잠들게 되었고, 이 상황을 다 지켜보신 선교사님과 지체들을 통해 많은 위로를 주셨습니다. 7월의 맹훈련과 함께 이제 5개월을 넘겨가며, 진정성을 묻는 훈련들을 통해 우리를 빚어 가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아이들은 오늘 단기 선교 선생님들과 함께한 2주의 여름캠프를 끝내고 진짜 여름 방학이 시작됩니다. 정전이 되어도 반딧불을 잡아 방 가득 뿌려놓고 즐거워하고, 촛불 속에서도 이 나라에서만 느끼는 밤을 기쁘게 누리며 지내는 아이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이것이 기도의 힘임을 믿습니다.
한국은 입추가 며칠 안 남았네요. 가만히 있어도 석 달이 지나면 계절이 바뀌어지면서 새 마음을 품기 쉽게 되어지는 고국의 축복을 이곳에서 느낍니다.
마지막 복더위 속에서도, 사나 죽으나 우리의 유일한 위로이신 주님 안에서 늘 평안하시길 저희도 기도하겠습니다.
감사제목:
1. 어떠한 폭풍 속에서도 하나님을 굳게 의뢰하게 하시고, 훈련의 목적을 확인시켜 주신 것.
2. 지붕과 차를 고쳐주셔서 일상의 평안 속에 언어훈련에 매진하게 하신 것.
3. 많은 동아시아 친구들과 선교사님들과 영어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게 하신 것.
4. 아이들이 한 학기동안 영육 간에 건강하게 자라고, 학업에 풍성한 열매를 주신 것.
간구의 제목:
1. 여러 몸살을 겪고 있는 사랑하는 교회들이 이때에 민감하게 함께 하나님의 음성 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교회가 되도록.
2. 여름방학 중에 아이들이 영육 간에 충전이 되어서 새 학기에도 아름다운 결실을 맺도록.
3. 두 분 어머니의 영육 간의 건강과 주님으로 인한 기쁨이 충만하시도록.
4. 영어훈련을 마친 후, 다음 스텝에 온 가족이 가장 합당한 하나님의 인도를 받도 록.
5. 동아시아의 복음을 모르는 영혼들을 위해 그리스도의 종으로 잘 준비되도록.
6. 필리핀의 새 정치인들이 정직을 회복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국민들을 섬기도 록.
2010. 7. 30 신현동, 박귀주, 의민, 의림, 의현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