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아버지, 우리들교회 대구광주채플 위해 기도드립니다.
경상도와 전라도에 있는 지역의 성도님들을 위해 지교회를 세우지 않는 우리들교회에서 두 지방에 채플을 만드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동안 지방에서 서울이나 판교에 있는 예배당으로 주일아침마다 올라오는 것이 많이 힘들고 수고로우셨던 지체들을 위해 세워진 교회라고 들었사오니, 누구나 와서 말씀듣고 찬양하고 기도하며 성도간의 교제와 나눔이 풍성한 거처가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예수이름의 권세와 능력이 있고 성령의 충만함으로 서로 사랑할 때에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된다고 말씀하셨사오니, 오직 성령의 권능을 받고 대구지역과 광주지역에 복음이 편만히 전해질 때에, 뿌리깊은 우리나라 지역감정이 해소되고 사상과 이념간의 좌우대립도 화해모드로 바뀌게 될줄 믿습니다. 새로운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창조하기 위한 영적인 연대가 이루어지게 역사하여 주옵소서.
주님께서 지역교회와 늘 항상 함께 하여 주시고, 빚지고 환란당하고 원통한 자들이 모여 주 하나님을 예배하고 간절히 기도할때에 성령하나님~ 그 심령심령마다 찾아가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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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아버지, 재작년에 오렌지카운티에 있는 한 한인교회에 다녀오고 나서, 저는 또다른 여행을 계획했었습니다. 인천과 동두천, 그리고 워싱턴에 가려고 시도했었습니다.
한번 해외여행을 다녀오니 자신감(?)이 생겨서인지 마음이 좀 들떠서 그랬는지, 워싱턴에도 가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남편한테 또 여행경비를 내어달라고 할수가 없어서, 현대카드로 2천만원을 대출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대출이라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받아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생각해보면 내 마음을 주님께 드린것이 아니었고, 내 인생의 운전자를 바꾸지도 않았기에 온전한 믿음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믿음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주님 아시지요?
아무튼지간에 한번 고삐가 풀려버리니 마음을 제어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때의 저는 그냥 고통과 고난에 익숙해져서 조롱과 멸시를 억지로 참아내느라 에너지를 소진하고 있었지, 복음으로 다른 사람을 변화시킬만큼의 영적 실력은 갖추고 있지 못했었던 것 같은데, 그래도 열정이 있긴 했었습니다. 하지만, 김양재담임목사님과 베델교회담임목사님의 설교말씀에 많이 의존해 있었기에, 언제 어떻게 삼겹줄이 끊어질런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착각속에서도 이건 내힘이 아닌데, 하면서 의심과 걱정, 궁금함을 버리지 못하고 있던 저였습니다.
그러면서 나중에 해석하기로는, 저라는 사람은 워낙 어렸을때부터 엄마 아바타로 살아냈고 그것이 병이 나고도 지속되었기에, 저는 예전교회 독신목사님을 저의 잃어버린 어머니를 대신하는 아바타로 자연스럽게, 그렇지만 살아내기 위해 절박하게 붙들었던 것이구나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하였기에 김양재목사님과 개인적인 친분도 없고, 개인적으로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어도, 저의 세번째 어머니로 아바타를 삼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이유는 피투성이라도 살아내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서 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병이 있었더라도 그 수많은 욕심들을 버리고 가지치기하면 병도 낫고 편안하게 살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때는 아직, 어려서부터 표현되지 못했던 우울과 좌절, 절망, 그리고 어머니로부터 들었던 칭찬과 저주를 넘나드는 말솜씨에 놀아났던 감정들이 저의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었지만, 저도 어머니못지 않게 시기질투, 탐욕, 교만등등의 로마서 죄악들이 많이 있었기에, 그러한 허물들을 먼저 밝히 보고 버리면 그만큼 가벼워지고 평안이 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엄마보다 나이가 젊었어도 엄마보다는 학력이 대졸이고, 도시에서 보고 들은 것도 훨씬 많습니다. 미디어를 봤어도, 책을 읽고 사람들을 만났어도 엄마에 비해서는 압도적으로 많은 지적이고 문화적인 체험들을 한것이 맞습니다. 그러니 엄마보다 욕심이 훨씬 많습니다. 그것을 시마다 때마다 인정하고 돌이키는 것이 괴로웠지만, 돌이킬때마다의 은혜가 조금씩 있었기에, 지금까지 건강을 되찾아오며 살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부모자식이라고 해도 붕어빵은 아니고, 각자의 은사는 하나님 안에서 다른 것이니까요. 우리는 그저 각자의 인생안에서 하나님을 만나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준비된 것도 없이 2차 외국여행을 계획하고는 실행에 옮기려고 했었습니다. 어렸을때 선생님과 친구들이 너는 좀 당돌하다, 대범한 데가 있다, 라는 소리를 들은적이 있는데, 날개를 펼쳐본 경험이 별로 없어서 그렇지 막상 날아보니 자유롭고 좋았던 것 같습니다. 혼자서 가방하나 달랑 들고 어디든 가리라, 그렇지만 예수님이 함께 동행하는 여행이어야 한다는 것이 지금의 저의 생각입니다. 너무 무모하면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얼바인에 한달가량을 머물고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LA공항에 갔을때, 저는 이미 모든 에너지가 고갈이 되어있는 상태였습니다. 비행기를 기다리며 공항에 캐리어를 끌고 왔다갔다 하는데, 저의 영혼이 들락날락하는듯 정신이 몽롱해지기도 하고 멍해지기도 하면서, 여러인종이 섞인 여행객들이 비현실적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비상상황임을 직감했습니다. 정신을 차리려고 바짝 긴장하긴 했지만, 그때 왜 기도를 안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경험이 전에도 있었고 여기까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다고 자부(?)했기때문에, 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고 여겼던 것 같습니다. 위기감을 느꼈어도 실제로는 응급상황까지는 아니었기에, 그런대로 버티다가 인천공항에 도착했고 새벽녘에 택시를 타고 무사히 집에 왔습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깜깜한 새벽에 탔던 택시안에서 젊은 기사한테 전도를 했습니다. 아주 열심히. 택시가 한시간은 걸렸는데 이런저런 인생이야기를 하면서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그 정신에 전도를 하면 얼마나 전해졌을까 싶지만, 하나님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복음을 전하려는 사람을 멸시받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운전기사가 속으로는 어떤 마음이었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 모르지만, 택시에서 내릴때에 기사가 공손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후로도 판교로 택시타고 주일예배를 드리러 갈때면 운전사한테 주보를 전하면서 전도를 했습니다. 우리들교회에 와보시라고, 예수님을 믿으시라고, 저도 예수님 믿어서 병도 낫고 편안해 졌다고, 그렇게 내 작은 입을 열어 꽤 오랫동안 전도를 했습니다.
그럼에도 제 안에 진심어린 마음을 발견하기까지는 아주 오랜시간이 걸렸습니다. 아니 제 안의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마음을 알아차리면 그때그때 주님께 고백하거나 기도제목을 쓰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새부대가 되게 해주세요, 간구해야만 했습니다. 그과정을 통해 시나브로 은혜가 부어졌던 것 같습니다. 자비하시고 인자가 무궁하신 하나님아버지는 흔들어 넘치도록 지혜도 새마음도 부어주시는 좋으신 아바아버지 이시니까요.
아무튼, 다시 돌아가 워싱턴 얘기를 하면, 의욕과 열정은 있었어도 방법이 잘못되고 계획적이지 못했기에, 결국은 여행이 취소가 되었습니다. 남편은 남편대로 제가 마치 사채라도 빌려쓴 사람처럼 걱정이 되었다면서 공동명의로 되어있던 아파트를 천만원이 넘는 돈을 들이면서까지, 자신의 단독명의로 바꾸었고, 여자목장에서는 목자님과 지체들이 어서빨리 대출을 원상복귀하라고 난리였습니다. 지금생각해봐도 저에게 딱 맞는 권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목장이 끝나자마자 저는 그날로 대출을 도로 갚는 적용을 했습니다.
이 모든 소란에도 불구하고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하늘소망이고 소원이기에 그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 언젠가는 someday 워싱턴에도 가보고, 홀로코스트 박물관을 둘러볼 기회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주여, 미국공항에 참으로 여러 인종들이 있었을텐데 저의 귀신들린 영혼에 엎친데덮친격으로 이슬람을 비롯한 잡신들이 또 들러붙었을 것이었습니다. 미국을 다녀와서 주일예배나 수요예배때 악한 영들이 이리저리 옮겨다니기도 하고, 저를 사로잡고 있는 것을 경험했기때문입니다. 그러던 것이 작년 어머니와의 관계개선(?)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어머니가 우리들교회를 다녀가신 후에는, 저를 사로잡고 있었던 영들이 차례차례 모조리 떠나갔습니다. 이전에 축사로도 나갔던 영들이 있었겠지만, 순종과 회개와 용서, 사랑을 구하는 기도외에는 악한 영이 온전히는 떠나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하오니 주님, 이제 후로는 날마다 중보기도와 말씀보기를 게을리 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말씀은 그 자체로 빛인것을 알기에 그 뜻을 다 헤아리지는 못해도, 꾸준히 성경을 읽겠습니다. 여러목사님들의 설교말씀을 듣고 있는데, 신학공부가 저절로 되니 이또한 감사가 됩니다. 주여, 우리에게 있는 악하고 더러운 영들이 떠나가게 하여 주시고, 탐욕과 쾌락의 중독들이 사라지게 하여 주옵소서.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이 우리의 영혼을 말씀그대로 사로잡는 역사가 있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요즘 서초동에 있는 교회의 설교말씀을 들을때면 예전교회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들었을때가 기억나곤 합니다. 바알에게 무릎꿇지 않는 7천명의 기도용사를 열왕기서에서 읽고, 그것을 위해 아침금식을 여러날 하면서, 기도했던 적이 있었기때문입니다. 70명도 안되는데 7천명을 기도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때는 잘 모르고 관심도 사실 없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기도하실때 백조가 올지어다, 라고 기도하시면 웬 백조하면서 의심부터 했습니다. 그런면에서는 어머니도 마찬가지여서, 뭔 작은 교회에서 그렇게 엄청난 액수의 물질기도를 하냐면서 투덜투덜 하셨습니다.
그리고 소망교회 목사님께서는 결혼을 안하셨기때문인지, 이사야서 54장 말씀 앞부분을 좋아하셨습니다. 소망이 되는 말씀이라고 하셨습니다.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산고를 겪지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이는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아멘, 과연 그렇습니다. 영적후사를 낳는 일에 남녀의 구분이 없듯이 출산여부도 상관이 없기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과 똑같은 말씀이 갈라디아서에 나온다는 것을 얼마전에 알았습니다. 인터넷에 보니 그랬습니다. 김진홍목사님께서는 갈라디아서는 자유에 대한 말씀이라고 하셨는데, 이 이사야서 54장 말씀이 사라와 하갈을 이야기할때 나오는 것을 보면, 여인의 잉태와 해산이 영적후사와 연결되는 말씀으로 이해되기도 합니다. 좀더 묵상해 봐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한달전 쯤으로 기억되는데, 유투브에 '원포이스라엘' 이라는 유투브를 통해 찬양을 들었습니다. 그날 들었던 찬양은 유대인들이 이사야서 말씀을 가사로 만들어서 부르는 노래였습니다. 약간 잔잔하면서도 서글프고 아린느낌이 드는 곡의 노래였습니다. 그래서 이사야서를 몇장 찾아 읽게되었는데, 60장 마지막 구절에 메모를 해놓은 것이 있었습니다. 밑줄이 그어진 말씀은 60장 22절 말씀이었습니다. '그 작은 자가 천명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 그리고는 볼펜으로 '2013. 10. 2. 소망교회 주시는 말씀'이라고 쓰여져 있었습니다. 어제 주일날 사랑의교회 목사님께서도 이 구절을 인용하시는 것을 잠깐 들었습니다.
모든 우연이 필연은 아니겠지만, 주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신다, 하셨으니 점점 더 이러하게 저러하게 작든크든 여러 퍼즐들이 맞춰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게 묵상해 보게 됩니다.
주여 날마다 주 뜻대로 말씀을 지켜행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사랑합니다. 감사하고 고마우신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