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목장에서 예배를 잘 다니고 있냐고 묻기에, 지난 4월 중순 수요예배를 끝으로 더는 가지 않는다고 답했다.기억을 거슬러 보면, 당시 바빌론에서 예루살렘으로의 사역이라는 거창한 제목 뒤에 숨은 실상은 처참했다. 80%는 콘서트식 찬양이었고, 15%는 간증이었으며, 사역 말씀은 고작 5%뿐이었다. 7시 반 시작부터 8시까지는 찬양 콘서트, 8시 20분까지는 간증, 그리고 남은 시간은 중구난방식 자기 이야기를 말씀에 억지로 끼워 맞춘 적용이 전부였다. 준비되지 않고 무늬만 사역자인 그가 그 짧은 30분조차 말씀이 아닌 신변잡기와 자기중심적 성경 해석으로 채웠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위험한 시도이다. 정말 처참함 그 자체였다. 과연 하나님이 이 예배를 들으실까?경건해야 할 교회에 경박함만 가득하다. 성경은 분별 있는 비판을 문제 삼지 않는다. 오히려 거짓 사역자를 철저히 분별하라고 경고한다.CCM 찬양이 없으면 사역이 불가능한가? 화려한 음향과 조명이 없으면 사역이 어색한가? 담임목사를 팔지 않으면 사역이 어려운가? 바울처럼 값없이 사역하는 야성은 어디로 갔는가? 이것이 늘 익숙하게 급여를 받기 위한 직업적 사역이라면, 차라리 월급 줄 테니 다른 일을 알아보라 말하고 싶다. 사람의 인정이 아닌 주님의 인정만을 구하는 사역, 콘서트가 아닌 오직 말씀 중심의 사역으로 서기를 기도한다.콘서트홀 같은 사역이 그렇게 좋다면 잠실 운동장을 빌려서 하라. 왜 고등학생들이 뛰어놀 운동장과 체육관을 빼앗아가며 그 짓을 하는가. 돈을 받는 자보다 돈을 준 자가 더 나쁜 법이다. 휘문고 학생들에게 체육관과 운동장을 돌려주길 바란다. 나는 과거 교회를 위해 카펫을 나르고 주차 봉사를 하며 섬겼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가장 중요한 것은 행사와 운영이 아니라 말씀이라는 생각이 든다. 교회가 말씀보다 형식과 분위기에 의존한다면, 그것은 본질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말씀의 뿌리가 이토록 약한 이유는 이 교회의 구조적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말씀 중심이 아니라 '죄 고백'이 권력의 서열을 나누는 구조다. 그러면서 "죄를 지으면 은혜가 있다"고 설교하고있다. 어떻게 이런자가 목사가 되었고 우리들교회 이름으로 설교를 하는지 너무 부끄럽다. 말씀보다 죄 고백이 앞서고, 복음보다 경험이 중심이 될 때 신앙은 쉽게 왜곡된다.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회개의 목적은 죄 자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복음과 은혜로 나아가는 데 있다. 로마서 5장 20절은 인간의 죄가 아무리 깊어도 하나님의 은혜가 이를 덮고도 남는다는 뜻이지, 죄를 정당화하는 면죄부가 아니다. 어떻게 성경을 저렇게 해석하는가. 이것이 우리들교회 무늬만 사역자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선별 과정에 있어 말씀중심이 아닌 죄고백이 우선이기에 나타난 현상이다. 말씀 공부보다 죄 고백이 먼저가 되고, 성경 말씀을 억지스럽게 큐티로 엮어내는 현실이 처참하다. 담임목사의 권위를 팔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사역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수요예배라는 이름이 CCM 찬양에 의존되어 진행되는것이라면 이름을 수요 콘서트로 부르는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월급쟁이 무늬만 사역자보다 콘서트 사회자를 세워도 말씀 전달에 문제가 없을것이다. 형식적으로 옷을 찢는 위선을 멈추고, 이제는 진정으로 마음을 찢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