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도 축복하소서
창세기27:30~41
세상 사람들은 축복의 주체이신 하나님을 버리면서도 복 받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시대의 지성인이라고 일컫는 리처드 도킨스나, 오늘 본문의 에서같은 똑똑한 사람들이 이런 무신론자들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에서는 “내게도 축복하소서” 라고 애타게 구합니다. 진정한 축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진정한 축복을 받으려면 내가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30-33). 속임수를 쓴 야곱이 축복을 받고 나가자마자 에서가 들어와(30), 이삭에게 정중하게 음식을 드리며 축복을 청합니다(31). 그러나 아무리 예의를 갖추어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합당치 않다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합당할 수 없습니다. 이삭이 “너는 누구냐” 고 묻자 에서는 자신이 기업을 얻을 맏아들이라고 대답합니다(32). 그러나 말로만 장자권을 외치고 신앙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삭이 야곱이 자신을 속인 것을 알고 심히 떨었습니다(33). 별미 좋아하다가 에서에게 축복할 뻔했는데, 하나님이 정확하게 야곱에게 축복하게 하신 것을 이삭이 깨닫고 두려워하며 돌이켰습니다. 야곱이 영적 후사라는 것을 인정하고, 자기의 죄를 보는 영적 눈이 떠졌습니다. 그러나 에서는 이 기가 막힌 사건이 인정이 안 되고 해석을 하지 못합니다.
축복받지 못한 에서가 불신자의 눈물을 흘립니다. ① 후회의 눈물을 흘립니다(34-35). 장자권과는 상관없이 살았던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질투심이 폭발해 잃어버린 기회만 억울해하고 후회하며 방성대곡합니다. 이삭 역시 뿌리깊은 편애로 인해 해서는 안 될 말을 하면서 에서와 야곱의 형제간 반목을 부추깁니다. 그러나 에서는 후회만 하고 결코 회개하지 않습니다. 속은 에서가 자기 죄를 보지 못하기에 속인 야곱보다 하나님 앞에 더 악합니다. ② 원망의 눈물을 흘립니다(36-37). ‘속이는 자’ 야곱이 나를 속였다면서, 남은 복이 없냐며 통곡합니다. 하나님의 신령한 복을 물질적인 개념으로밖에 생각을 못해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았음에도(창25:31), 계속해서 야곱에게 책임을 전가합니다. 우리도 에서처럼 돈 준다고 하면, 골프 약속 잡히면, 망령되게 예배를 팔아먹고 하나님을 팔아먹습니다. 이삭이 에서인 줄 알고 모든 축복을 야곱에게 주었기에 에서를 위해 빌 복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자녀를, 배우자를, 식구를 너무 사랑해도 천국 가게 할 수 없기에, 가장 최고의 사랑은 그들로 예수 믿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에서는 돌이키지 않고 남 탓만 하며 원망의 눈물을 흘립니다. ③ 증오의 눈물을 흘립니다(39-41). 에서의 자손들이 야곱의 자손들에게 저항하면 잠깐은 해방되지만 영원히 그 저주를 벗어나지 못하리라는 예언이 실제 역사 속에서도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 없는 에서의 잘됨과 똑똑함은 결국 영원한 멸망임을 보여주십니다. 에서가 마음에 품은 미움은 결국 야곱을 죽이리라는 행동으로까지 발전합니다(41). 어떤 말도 들리지 않는 에서가 야곱을 맹렬하게 증오했지만 야곱이 부족해도 하나님 장중에 있었기에 해함을 받지 않았습니다.
“내게도 축복하소서”의 축복을 받으려면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자녀들에게 내 죄를 보며 회개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축복의 지름길입니다. 내가 잘못 선택해 놓고 이를 갈며 후회와 원망, 증오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면 돌이켜 회개해야 합니다. 입으로만 신앙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오늘 “너는 누구냐” 는 하나님의 질문에 내가 누구인지 알며, 다른 사람 위해서 흘리는 애통의 눈물을 흘림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우리들교회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에서가 그 아비의 말을 듣고 방성대곡하며 아비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 하소서 (창27: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