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히 분별치 못하고
창세기27:18~30
수많은 사람이 속았다고, 당했다고 합니다. 너무나 좋은 사람처럼 보여 결혼했는데 막상 살아보니 폭력과 부채, 외도의 문제가 심각한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나를 속인다고 해도 속은 내가 문제가 많음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이삭과 야곱의 모습을 통해 속임을 어떻게 분별해야 하는지 봅니다.
속이고자 하는 사람이 있으면 분별하기가 어렵습니다(18-19). 야곱은 자신이 맏아들 에서라고 적극적으로 거짓말을 하며 축복을 탈취하고자 합니다. ‘맏아들(바카르)’은 예배의 복을 뜻하는 ‘바라크’ 의 철자 한자를 앞뒤로 바꾼 것입니다. 차자로 태어난 상처 때문에 어떻게 하면 장자권을 빼앗을까 비교하고 시기하며, 염소 고기를 자신이 사냥한 고기라고 거짓말하며 축복을 달라고 합니다. 에서는 영적 직분에 관심이 하나도 없는데, 방법이 틀리긴 했지만 야곱은 영적 장자권을 이렇게 사모합니다. 야곱이 이삭을 속이기로 작정한 이상, 분별하기가 어렵습니다. 속고 속이는 세상에서 사는 우리도 분별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이삭이 분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잡았는지 논리적으로 시험하자, 야곱은 하나님께서 순적히 만나게 하셨다고 합니다(20). 시치미를 떼고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었습니다. 점차 강도가 센 거짓말을 합니다. 이삭이 촉각의 시험을 하면서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임을 확인하고(22), 정말 에서냐고 묻자 야곱은 눈도 깜짝하지 않고 “바로 접니다”라고 더 큰 거짓말을 합니다(24). 야곱이 말을 줄여 신속하게 음식을 대접하고 포도주를 대접함으로 최선을 다해 온몸으로 거짓을 행합니다(25). 이삭이 마지막으로 냄새를 맡으며 시험합니다(26-27). 우리도 외모로 차별하며 먹고 마시는 것을 축복의 개념으로 여기기에, 그것이 우리의 별미가 되어 이삭처럼 영적으로 분별을 못합니다. 시험이 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내 속의 욕심이 분별을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삭이 능히 분별하지 못했습니다(23). 외모를 취하는 편애가 부부간의 단절을 가져왔고, 결국 영적 분별을 막습니다. 에스라의 일차 포로 귀환 때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떠나는 이스라엘 백성 중 레위가 한 사람도 없었지만(스8:15), 나무 패고 물 긷는 느디님 자손은 220명이나 떠났습니다. 신학을 하고 직분이 있다고 분별을 잘 하는 것이 아니라 느디님처럼 겸손한 사람이 분별을 잘 해 명철한 레위인을 소개했습니다(스8:17-18). “내가 속았다” 며 옳고 그름을 따질 것이 아니라, 내 속의 별미를 좋아하는 마음을 회개하며 낮아질 때 비로소 사람을 분별하게 됩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외모로 차별한 만큼 다른 사람도 나를 차별합니다. 내 곁에 사람이 없는 이유는 내 삶으로 감동을 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축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27-30). 거짓말 한번 하지 않는 의로운 에서보다, 죄 많고 거짓말의 대가인 야곱을 통해 하나님의 구속사를 이루십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목적이 확실해야 하나, 오늘 본문은 그 과정이 잘못되었음을 말씀해 주십니다. 저주와 축복이 하나님께 있기에, 저주는 하나님께 맡기고 내 죄만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혀주시고 축복하십니다. 부모가 편애하고 속임수를 가르쳤기에 이삭의 가정은 불행한 가정이 되었지만, 하나님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그 고통 중에서도 주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환경에 순종하면서 내 욕심을 내려놓으면 능히 분별하게 하실 것입니다. 속은 것 때문에 예수님을 알게 되면 그것이 최고의 축복입니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겸손함으로 능히 분별하는 우리들교회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손이 형 에서의 손과 같이 털이 있으므로 능히 분별치 못하고 축복하였더라 (창2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