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편지]
행 23:25~35
이번 부활절에도 많은 편지가 전도 대상자들에게 발송되었습니다. 우리 역시 누군가의 편지와 눈물로 이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성령의 편지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첫째, 발신자와 수신자가 있습니다.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기로 맹세한 사십 명의 암살단으로 인해, 오히려 완벽한 준비가 되어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랴로 호송되는 가운데 있습니다. 그런데 천부장 루시아는 그냥 호송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바울이 가는 곳에 미리 편지를 보냅니다. 편지는 누가 쓴 편지인지가 중요합니다. 여러분들은 이미 누군가에게 큰 영향력을 미치는 이름(엄마,아빠,누나,오빠,동생 등)을 가지고 있으며, 그 이름만으로도 전하는 말에 큰 힘을 가졌기에 집안에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돈을 주고 로마 시민권을 산 천부장 루시아는 로마 시민임이 너무 자랑스러워 자기 이름 앞에 로마식 이름인 글라우디오를 붙였습니다. 우리도 천국 시민권을 받았기에 나는 이런 죄패로 인해 예수를 만나고 천국 시민권을 받았다라는 이름을 붙여야 합니다. 그러면 그 이름으로 성령의 편지를 보낼 수 있습니다. 편지를 받는 수신자는 총독 벨릭스인데 본래 노예 출신으로 그를 지배하고 있던 사고방식과 정신세계도 노예 정신과 노예근성이었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편지를 보내야 할 수신자는 이 땅에서 죄의 노예로 살아가는 벨릭스 같은 사람입니다. 겉보기에는 성공했고 돈이 있고 좋은 신분으로 살아도 천국 시민이 아닌 노예로 살아가는 내 옆에 많은 지체 그가 바로 내 편지를 받을 수신자입니다. 세속사에서 구원을 위한 구속사로 넘어가는 것이 구원인데 돈과 지위가 있었던 벨릭스는 끝내 구속사로 넘어가지 못했습니다. 구속사로 넘어가 구원받은 우리가 보내는 편지가 성령의 편지이며, 세상의 종노릇하고 있는 사람을 찾아가는 편지입니다.
둘째, 고발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은 바울이 자기 민족의 자존심과 정체성을 빼앗아 갔다고 여겨 고발했지만,천부장이 총독에게 쓴 편지의 핵심은 바울이 무죄라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를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하여 무죄라는 것을 밝히는 것이 성령의 편지입니다. 예수님과 위대한 결혼을 한 우리는 정죄하는 고발에 넘어지면 안 됩니다. 성도가 당하는 고발은 성도를 일깨워 거룩하게 하려는 성령의 고발입니다. 예수님은 무죄이지만 내가 죄인이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고 그의 무죄함과 나의 죄인 됨을 전하는 것이 바로 성령의 편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끝까지 죄인이라고 여기는 바울을 로마 법정을 통해 무죄라 선언해주십니다. 이 이야기를 우리에게 적용하자면 내 인생을 망친 것 같은 그 사람, 나를 속이고 배신한 그 사람은 나의 죄를 알게 하기 위해서 수고한 사람이기 때문에 무죄입니다. 내가 죄인임을 적어 내려가는 것이 성령의 편지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누구에게도 사과할 수 있어야 하며, 이 땅에서 원수 같은 아내와 남편과 그 모든 사람의 무죄를 증언하는 성령의 편지를 쓰면서 살아야 합니다. 먼 훗날 저 천국 법정에 섰을 때 그 편지를 보며 하나님께서 내 눈물을 닦아주시면서 '너는 무죄다' 이렇게 판결을 하실 것입니다.
셋째, 호송을 잘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성령의 편지입니다. 발신자는 예수님이시고 수신자는 내 주변의 불신자들입니다.편지의 내용은 성도인 내 삶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편지니 어떤 경우라도 죽지 않고 살아내는 것과 이 편지를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것이 사명입니다. 바울도 로마 황제에게 전달되는 편지였기에 사명이 끝나기 전까지 죽지 않았고 환경과 시간에 맞게 전략을 달리하며 호송되었습니다. 십자가는 지혜이고 지혜는 타이밍이기에 편지를 보낼 때는 전략이 있어야 하며 때가 중요합니다. 지혜는 환경과 상황을 알 때 생겨납니다. 이미 여러 상황을 겪은 수많은 나눔과 전략과 전술이 행해지는 기획실인 목장에 가서 물을 때 호송을 잘 할 수 있습니다.헤롯 대왕은 바닷가에 헤롯 궁을 지어놓고 그 안에 인공바다를 만들어 놓았는데, 바울을 그곳에 머물게 하였습니다. 바울이 죄수가 아니기 때문에 감옥이 아닌 헤롯 궁에 머물게 하였으며, 평생을 쉬지 않고 달려온 바울에게 2년의 안식년을 가지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입니다.
공동체 고백입니다.지난주에 받은 감동적인 편지 내용입니다. 90세를 바라보는 편찮으신 친정엄마의 소원에 따라 수요 예배에 모시고 왔습니다. 엄마는 목사님과 사진까지 찍으시고 큐티 책을 사려했으나 둘 다 현금이 없어 짜증을 내며 골라놓은 책을 놓고 와버렸습니다. 그런데 큐티 책을 계산했으니 꼭 찾아가 달라는 교회 직원분의 문자를 받고 노인네가 안쓰러워서 그냥 주시나 하고 별 감동도 없이 들고 왔습니다. 그다음 날 저녁에 교회 직원분이 주일에 행사가 있는데 택배로 보내면 혹시 날짜를 놓칠 것 같아 직접 문 앞에 두고 간다고 하시면서 목사님 책 두 권(날마다 큐티하는 여자와 위대한 결혼)과 저희 엄마가 드시기 좋은 간이 든 작은 상자를 집 앞에 두고 갔습니다. 아무도 제 결혼생활 사정을 몰라 짜증과 화만 늘어 자녀와도 소통이 되지 않았는데 그 상자를 보는 순간 소름이 돋았습니다. 그 책들이 우연이 온 게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 앞, 주일에 혼자 예배를 왔는데 설교 제목이 그 책 제목과 같아서 놀라고 자신이 성경을 잘 모르지만, 아브라함과 사라의 이야기가 너무 와닿았고 남편이 세 가정 살림 차린 제 이야기와 같았습니다. 남편이 용서도 안 되고 남편 닮은 자식을 보며 미움만 커지고 너무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교회를 다니다 말다 했는데 7년 만에 교회에 처음 왔고, 말씀과 찬양을 들으면서 너무 오랜만에 눈물도 흘리며 입을 열어 기도해보았습니다. '저와 같은 가정의 사람도 두집 살림도 아닌 세집 살림하는 남편을 둔 사람도 돌아올 수 있을까요? 제가 더 용기를 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계속 방문해서 예배를 드리고 싶어요.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라는 내용의 편지였습니다. 당연히 돌아올 수 있습니다. 좋은 교회 직원분이 아마 목자님 같으신데 성령의 편지가 되어 찾아가 주셨습니다. 그 90세 노모인 어머니의 기도를 들으시고 한 번의 방문으로 따님의 발걸음을 인도하셨습니다. 저는 이 한 분 때문에 전도대회를 했다고 생각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성령의 편지는 좋은 발신자, 수신자가 있어야 하며, 고발이 아닙니다. 원수 같은 그에 대해 나는 유죄고 당신은 무죄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호송을 잘해야 하고, 전달할 전략이 필요합니다. 결국 우리는 십자가의 전달자가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