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태훈 목사
창 20:1~7, 11~13, 17~18
오늘은 3월 7일 월요일 큐티 본문인 아브라함의 반복되는 실수에 대해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아브라함은 연약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택자인 그를 붙들고 일으키시며 회복시키십니다. 택자의 인생에 임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인생에 대해 생각해보기를 원합니다.
첫째, 택자임에도 불구하고 실수를 반복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예배드리던 헤브론을 떠나 남쪽 지역인 네게브 땅으로 옮겨갑니다. 그리고 천국을 상징하는 가나안 땅을 떠나 세상을 상징하는 애굽으로 점점 내려가다 가나안 땅 남쪽 접경에 있는 블레셋 왕의 도시 그랄로 갔습니다. 믿음도 초창기보다 성장했고, 초라한 나그네의 모습으로 오신 주님도 극진히 대접했고, 소돔을 위하여 목숨 걸고 기도했고, 내년에 사라가 약속의 자녀 이삭을 낳으리라는 말씀도 받았을 만큼 육적으로 풍족했던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묻지 않고 그랄로 떠난 것은 마음에 기근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영적 기근은 자기연민과 피해 의식으로 원망, 우울, 냉소와 허무가 잠식해 말씀은 사라지고 정체성과 사명을 잊게 합니다. 치졸한 모습으로 나락에 빠진 아브라함의 모습이 마치 내 자신을 보는 것 같아 눈물이 났습니다. 저는 공동체에 남아 있길 원하는 아내의 바람과 공동체를 좀 더 섬긴 후에 유학을 권하시는 담임 목사님 권면을 뒤로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제 열심과 욕심의 열매로 우수한 성적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미국의 유수한 신학교 세 군데에서 박사과정 입학 허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조산으로 태어난 둘째가 뇌성마비 장애를 얻으면서 귀국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택자인 내 인생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앞이 캄캄했지만, 주님은 우리 가정을 헤브론 같은 공동체와 목장으로 다시 옮겨 주셨습니다. 부부목장에 처음 참석한 날, 아내에게 사과받고 싶다는 제 나눔에 아내는 순종하는 마음으로 제게 사과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내의 사과에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며 응수할 정도로 영적 기근이 심각한 상태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약한 저희 가정은 공동체의 기도와 사랑의 섬김으로 살아났습니다.
둘째, 실수에도 불구하고 자비를 더하십니다.
본문 20장 2절에 택자인 아브라함의 실수와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라를 데려가는 두 사건이 나오는데, 택자인 아브라함이 죄를 범하자마자 하나님이 죄를 즉시 다루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책망하는 것이 아니라 아비멜렉의 꿈에 나타나 책망하시며 그가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이 일을 행했음을 인정해 주시지만, 그의 의로움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의 죄를 막아 주셨음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겨자씨만한 믿음을 보시고 약속을 믿고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약속의 땅으로 간 택자의 편에 서 주십니다. 그리고 믿는 아브라함은 거짓말하고 아내를 팔았지만, 의롭고 선한 나는 하나님을 믿을 필요가 없어라고 생각하는 아비멜렉의 모습을 통해 성령의 양심이 아닌 인간의 양심의 한계를 봅니다. 사라를 통해 약속의 자녀 이삭이 태어나고 그로 인해 예수님이 오셔야 하는 구원의 일이기에 하나님의 보호와 자비가 임해 아브라함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사라를 지켜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나보다 더 내 연약함과 비천함을 아시는 주님을 믿고 기다릴 때, 하나님은 그 밤에 아비멜렉을 찾아가시고, 사라 같은 나의 자녀, 남편, 아내, 부모, 지체를 지켜 주십니다. 아브라함처럼 치졸한 실수를 반복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을 늘 기억하여 하나님의 일인 구원의 일에 온 힘을 다 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셋째, 숨김에도 불구하고 죄를 고백하게 하십니다.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책망하는 그 수치의 자리에서 그는 거짓말을 한 자신의 연약함ㆍ 사라가 실제 이복누이인 사실ㆍ근친 결혼한 상처ㆍ 믿음이 없어 아내에게 거짓말을 강요한 이기적인 남편이라며 자기 죄를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시는 이유는 이렇게 그 자비를 믿고 숨겨진 죄를 고백하고 회개케 하기 위함이고 이는 우리에게 베푸시는 최고의 은혜입니다. 7세기 사막의 교부이자 동방교회의 영성가인 니느웨의 이삭은 '자기 죄를 아는 사람은 죽은 자를 일으키는 자보다 더 위대하다. 자기 죄를 위해 한 시간을 진실로 울부짖는 사람은 온 세상을 가르치는 자보다 더 위대하다. 자기 약함을 아는 사람은 천사를 볼 수 있는 자보다 더 위대하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런 아브라함의 고백을 보며 화려한 스펙을 가진 부모님 밑에서 감정의 교류나 마음의 소통 없이 착한 아들로 살아왔던 제 끝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와 자비를 믿지 못하는 제 불신앙과 믿음 없음을 묵상했습니다. 이런 저를 깨뜨리기 위해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지만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는 상한 갈대 같은 아들을 저희 가정에 보내주셨습니다. 아내와 함께 아들을 돌보면서 제 불안과 두려움이 날로 작아짐을 경험하고 세상 인정과 칭찬이 아무것도 아니며 주님을 의지해 오늘 하루 살아가는 것을 배워갑니다.
넷째, 무너짐에도 불구하고 사명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하나님이 아비멜렉 꿈에서 치졸한 실수를 한 아브라함을 선지자라 부르십니다. 선지자는 오늘 본문에 처음 등장하는데, 내 죄 때문에 아파하고 슬퍼하며 주님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는 아브라함에게 사용하셨습니다. 그에게 선지자 사명을 다시 주시며, 회복의 길을 알려 주십니다. 아브라함은 구제불능인 자신을 선지자라 불러주시는 그 사랑에 힘입어 아비멜렉을 위해 기도했고, 하나님은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사 출산으로 응답하십니다. 오스왈드 챔버스의 저서 <지극히 높으신 분을 위해>는 우리가 실패를 경험했을 때 중보기도를 통해 어떻게 사명을 회복할 수 있는지 알려줍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이 사명을 회복하자 그다음 장에서 이삭이 태어납니다.
오늘의 공동체 고백은 미국에 사는 여집사님의 목장 나눔입니다. 무너질 뻔한 가정 위기에서 목장 예배에 참석하면서 자신이 가해자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남편의 구원을 위한 중보기도에는 관심 없는 자신을 가증하다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죄가 깨달아졌고, 공동체 처방대로 적용하면서 가정이 살아나고 있다고 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 모두 인간의 연약함과 비천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자비를 믿고 숨겨왔던 내 죄를 빛 가운데로 드러내기 원합니다. 죄 고백으로 내 마음이 자유롭게 되고 회칠한 담이 무너지고 다시 사명을 붙잡고 감당함으로써, 특별히 아브라함처럼 남들을 위해 기도하는 인생이 되는 회복의 은혜를 누리는 모든 성도님이 되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