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양심]
행 22:30~23:5
요즘 양심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들교회의 한 청년이 어릴 때부터 모은 돈과 회사에 들어가서 모은 전 재산 2000만 원을 보이스피싱으로 모두 잃었다고 합니다. 또한 최근 러시아의 푸틴부터 양심에 화인 맞은 사람들이 참 많은것 같습니다. 이럴 때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성령의 양심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오늘은 성령의 양심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구원 때문에 주목하는 양심입니다.
천부장은 바울이 왜 이렇게 유대인들의 미움을 받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진상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의 최고 의결기관인 산헤드린 공회를 소집합니다. 회심한 바울은 스데반을 죽인 사건으로 인해 늘 회개하지만, 회심 전에는 스데반을 죽인 공로를 인정받아 공회원 소속으로 활동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같은 공회원이었던 자신의 동료들 앞에 유능하고 권세 있는 바울의 예전 모습이 아니라 죄인의 모습으로 서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1절에 그들을 주목하여 봅니다. 주목하여는 내 눈을 고정시켜 진지하게 유의해서 보다라는 뜻입니다. 죄인의 모습으로 공회 앞에 선 자기 모습이 부끄러웠을 법도 하지만, 오히려 구원 때문에 당당히 그들을 주목하여 봅니다. 바울처럼 십자가를 버리지 않고 붙들고, 십자가를 밝히 보이는 사람들은 죄로 인해 죽어있던 양심이 바르게 작동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구원을 향하여 주목하며 하나님이 기뻐할 만한 선한 일을 할 힘과 능력을 공급받는데, 이것이 바로 성령의 양심입니다.좀전에 보이스피싱 당한 청년의 아버지가 우리교회 마을지기입니다. 딸의 구원을 주목해서 아이들을 불러놓고 말했습니다. 그 내용은 첫째, 자기일에 몰두하는 딸에게간접 경험이 중요하니 다른 사람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것. 둘째, 큰 헌금으로 남을 도왔다 여기고 아빠가 십분의 일을 줄 테니 다시 시작하자.이 또한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 십일조를 하고 앞으로 온전한 십일조하면 좋겠다. 셋째, 너를 따돌린 선임 직원을 같이 욕했었는데 그저 욕만 해준걸 아빠가 회개한다. 우리 함께 정신 차리라고 주신 사건이니 말씀으로 해석하자. 입니다. 상한 마음을 누가 해결해 줄수 있겠습니까? 그 청년은 목장에 나가기 시작해 마음을 추스리고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을 바르게 섬길 수 있는 양심입니다.
바울은 그들을 주목하며 그를 죽이려는 원수 같은 공회원들에게 형제들아하며 친근하게 부릅니다. 이것이 구원의 언어입니다. 그리고 주목해서 보면서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다고 합니다. 양심은 같은 생각, 공통적인 깨달음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양심은 우리 속에 있는 어떤 하나의 기준으로 내 속에서 옳은 일과 그른 일을 분별하고, 그릇된 일에는 책임감과 불편함을 느끼게 해줍니다. 본문에 나오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다는 말은 나는 내 속의 양심의 기준을 따라 아무 잘못 없이 하나님을 섬겼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한 일을 행했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양심으로는 하나님을 결코 바르게 섬길 수 없습니다. 오늘 바울이 말한 선한 양심, 착한 양심의 기준은 우리 속에서 찾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한 양심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에 두는 양심이어야 합니다. 나를 주목했을 때 내가 얼마나 부패하고 타락한 존재인지 깨닫고, 그 기준을 죄가 가득한 내 속의 양심이 아닌 밖에 두는 것이 성령의 양심입니다. 여기서 범사에 하나님을 섬겼노라의 섬긴다라는 단어는 시민으로 합당하게 행한다라는 뜻입니다. 성령의 시민은 이 땅에서도 합당하게 행해야 하는데,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는 모든 면에서 주님과 함께 보고 함께 알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섬겼다는 것입니다. 선한 양심은 관계의 문제입니다. doing의 문제가 아니고 being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이 세상에서 관계가 안 된다는 것은 하나님과 함께 보고 함께 아는 그 선한 양심을 모르거나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보고 듣는 것이 양심입니다. 내 양심이 아니라 성령의 양심으로 이곳까지 왔기 때문에, 바울은 공회 앞에서도 당당히 범사에 선한 양심을 따라 내 아버지 하나님을 섬겼노라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 그가 아닌 나를 치는 양심입니다.
산헤드린 공회의 의장이었던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범사에 하나님을 섬긴다는 바울의 말을 듣고 격노해서 그의 입을 치라 명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제일 잘 섬긴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마음에는 관심이 없으면서 모든 판단 기준을 율법으로 삼습니다. 입을 치는 것이 당시 최고의 인격 모독인데, 이 최고의 모독을 주님이 미리 당하셨습니다. 우리가 권력을 갖고 있을 때, 듣기 싫은 말을 하면 화를 내면서 상대의 입을 다물게 합니다. 우리는 내 양심과 내 기준으로 남의 입을 칩니다. 모든 판단 기준이 내 자신이기 때문에 듣기 싫습니다. 바울은 이런 아나니아를 향해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 선포합니다. 회칠한 담은 흙으로 담을 대충 쌓고 석회를 발라 완벽한 담처럼 보이도록 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가리킵니다. 거짓으로 만들어 놓은 이중적인 담은 나도 남도 하나님께 못 가게 만드는데, 바울이 산헤드린 공회의 대제사장보고 당신은 회칠한 담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최고 직분인 대제사장을 네가 어떻게 욕하느냐 하며 바울을 비난합니다. 그런데 이때 바울은 출애굽기 22장 28절 너는 재판장을 모독하지 말며 백성의 지도자를 저주하지 말지니라를 인용하여 자기 잘못을 금세 시인합니다. 이렇게 회칠한 담을 무너뜨리려면 그 입을 치는 게 아니라 내 입을 쳐야 합니다. 성령의 양심은 내 잘못을 시인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래서 안 믿는 사람과 믿는 사람 중에서는 믿는 사람이 무조건 잘못한 것이고, 믿는 사람 중에서도 믿음이더 많은사람이 무조건 잘못한 것입니다. 이제는 더 못 참아, 내가 어떻게 더 참아가 아니라, 천국 갈 때까지 우리는 내가 회칠한 담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의 양심은 실수를 인정할 뿐 아니라 그 실수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일임을 깨닫고 나를 치며 거기서 돌아서는 것입니다.
말씀 맺습니다. 성령의 양심은 구원을 위해 주목하는 양심입니다. 주님과의 관계가 바르게 되는 관계의 양심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바르게 섬길 수 있습니다. 또한 그가 아닌 나를 치는 양심입니다. 나를 객관적으로 보면 부패한 나를 보고 돌이킬 수 있습니다. 성도님 모두 주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갖고 관계의 영성을 회복하시고 내 입을 치며 성령의 양심으로 살아가시길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