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따르려거든]
박성근 목사
막 8:27~35
1944년 6월 나치의 수용소 감방에서 쓴 본회퍼 목사님의 나는 누구인가의 시 마지막 부분에 하나님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라고 고백을 하는데, 저는 인생이 나의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마음대로 안 되는 인생의 쓴맛을 보게 되니 점점 나는 주님의 것이라는 고백이 되고, 주님을 따라가는 것이 어떤 것보다 중요하고 가치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오늘 예배를 통해 힘든 그 한 분이 성령의 황홀을 경험하며 예수님을 따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려거든
첫째,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온갖 기적을 베푸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신앙고백을 원하신 장소는 바로 가이사랴 빌립보입니다. 이곳은 헤롯이 가이사 아구스도 황제에게 흰 대리석 신전을 지어 바친 우상이 들끓는 곳이며 헤롯의 아들 중 빌립에게 분배되어 로마 황제에게 바쳐진 명품도시,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는 곳입니다. 그런 곳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29절)'라고 물으시니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29절)'라고 대답합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자신의 고백이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이는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물고기 잡으러 가고, 성령을 받기까지 시간이 걸린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그래도 하나님은 이 고백을 받으시고 입으로 한 그 고백 때문에 베드로를 신실하게 인도하셨습니다. 우리가 베드로처럼 신앙고백을 제대로 했어도 여전히 십자가도 싫고 입으로 하는 고백도, 삶으로 하는 고백도 다 어렵습니다. 가이사랴 빌립보처럼 모든 것이 갖춰진 환경의 불신결혼을 하려고 할 때, 또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줄 불법을 제의받았을 때 여러분은 주님이 그리스도라고 답할 수 있겠습니까? 신앙고백이 확실하면 자녀교육에 대한 지혜가 생기고, 할 말과 안 할 말, 만나야 할 사람과 안 만나야 할 사람이 분별 되며 돈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알게 됩니다.
둘째,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확실했지만, 예수님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하십니다(30절). 어떤 환경에서도 예수님을 전하는 인생이 되어야 하는데 아직 제자들이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신앙고백이 확실치 않으면 세상의 기복 종교와 다를 바 없습니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을 알고 경계하며 오직 하나님 이름만이 드러나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일을 생각해야 합니다.
신앙고백이 확실하니까 이제 고난의 말씀을 주십니다. 많은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해야 한다고 하십니다(31절). 그런데 베드로가 인간적인 열심과 충성으로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에요'라고 확신에 넘쳐 말하니, 예수님은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확신을 갖고'사탄아(33절)'라고 꾸짖으십니다. 여러분은 베드로의 확신과 예수님의 확신, 어느 쪽이 더 좋아 보입니까? 예수 믿는 사람도 실패하고 떨어질 수도 있고 망할 수도, 암에 걸릴 수도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환경에서 3일 후에 살아나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31절). 예수님은 죽음에서 부활을 말씀하시며 우리의 구원을 위해 암이 와도, 떨어져도 살아날 거라고 말씀하시는데, 베드로는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고, 사랑하는 자에게 절대 고난을 주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순종보다 자기 확신이 앞서서 장담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의 일을 생각하게 하는 베드로에게 사탄이라고, 내 뒤로 물러가라(33절)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수제자 베드로에게만 사탄이라고 하셨습니다. 양육을 받고 알아듣는 사람에게 쓴소리도 하십니다. 여러분도 공동체에서 쓴소리를 듣는다면 베드로 수준이라고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넷째,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34절)이 제자도입니다. 자기 부인은 가출하고 바람피우고 때리고 욕하는 남편과 부인 앞에서, 말 안 듣고 병든 자녀 앞에서 나의 죄 됨과 누추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내 문제를 알고 어디서든 '고마워, 미안해'를 할 수 있는 권세입니다. 이 세대의 자기 부인은 '예수 믿으세요'라고 말하기 전에 내 죄를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화이며 큐티입니다. 주님 때문에 목숨을 잃고자 하면 영원히 살지만, 자기 목숨만 살리려 하면 영육 간 모두 잃는다고 합니다(35절). 언젠가 죽는다는 것을 알고 예비하는 것이 가장 큰 지혜이며, 목숨을 얻는 길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구원을 위해 사는 제자도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일은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는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입니다. 존 스토트 목사님의 저서「제자도」에는 제자의 마지막 특징이 죽음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죽으셔야 할 그곳, 예루살렘으로 스스로 올라가시며 그동안 가르친 십자가와 부활을 삶으로 실천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는 자입니다.
우리들교회에서도 십자가를 지고 죽는 적용을 통해 살아나는 가정을 매주 경험합니다. 하지만 십자가를 지기도 어렵고, 죽는 것도 내 마음대로 안 되기에 오늘도 큐티하고 말씀을 들으며 목장에서 듣고, 묻는 것이 십자가를 질 수 있는 비결입니다.
저도 죄를 인정하는 것이 죽을 만큼 힘이 듭니다. 아내가 저 때문에 힘들다는 나눔을 했더니 어떤 분이 잘 나가는 아내 잘 섬기며 살라고,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무슨 고난이 있냐고 하시는데, 순간 인정이 안 됐습니다. 저도 학교, 직장, 결혼, 사역, 어떤 것 하나 제때 된 것 없고, 되는 일이 없어 고달픈 인생을 살았습니다. 특히 어머니의 아들로 산다는 것 자체가 고난입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제가 고난이 없다는 말이 또한 너무 맞는 말입니다. 맞는 말이니까 제 죄를 인정하는 것이 죽을 만큼 힘든 것 같습니다. 제가 저의 죄를 잘 보기를 여러분 기도해주세요.
예수님을 따르려면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해야 하고 준비 되어야 합니다. 또한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생각해야 합니다. 베드로의 확신과 주님의 확신을 분별하고 자기를 부인하며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변하지 않는 가족의 구원을 위해 내가 죽어야 할 예루살렘이 어디인지 깨달아 그곳으로 올라가는 믿음의 실천을 하는 우리들 공동체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