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게 축복하게 하라
창세기26:34~27:4
배우 이광기 씨가 신종플루로 세상을 떠난 아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에 “우리 아이가 원래 하나님의 아들이었고 이제 하늘나라의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과 사랑을 전해주러 갔다” 고 썼다고 합니다. 이것이 축복하는 부모, 축복받는 자녀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복의 근원이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축복을 할 수도, 받을 수도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삭의 어떤 모습 때문에 자녀인 에서가 축복을 받지 못했을까요?
이삭은 아들 에서를 불신결혼시켰습니다(34-35). 에서와 결혼한 이방 가나안 여인들은 부모에게 불순종하고 항거함으로 이삭 부부를 심히 근심하게 했습니다. 불신결혼에는 가정불화가 따라오고, 이것은 불신앙으로 이어집니다. 1차적으로 불신결혼은 에서의 선택이지만, 문제아는 없고 문제부모만 있기에 이삭이 불신결혼시킨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삭은 에서를 편애했고, 브엘세바를 떠나 그랄에 거하면서 자식들을 가나안 문화에 물들게 했으며,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 아내를 누이라 속임으로 자녀들에게 본이 되는 인생을 살지 못했습니다(창25장). 이삭이 삶으로 본을 보이지 못했기에 아들 에서가 신앙을 버리고 불신결혼한 것입니다. 부모의 믿음과 삶이 하나가 되지 못할 때 자녀들은 신앙생활에 회의를 느낍니다. 내가 생명을 바쳐서 신앙교육할 때 자녀들이 하나님께 돌아올 것입니다.
결국 이삭의 영안이 어두워졌습니다. ① 자녀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합니다(1). 성경은 에서의 불신결혼부터 야곱이 도망한 37년간을 침묵합니다.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낳고 13년간 하나님과 교제가 끊어졌듯, 이삭도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었습니다. 야곱은 37년 동안 결혼도 못하고 돈도 못 벌고 먹을 것도 안 가져다 주는데, 에서는 믿음이 하나도 없어도 성실하고 별미를 해다 바치니 객관적으로 보지를 못하고, 부러 하나님의 뜻을 잊으려 하며 장자권을 상속할 음모를 꾸밉니다. ② 이삭이 죽음을 두려워합니다(2). 아브라함은 나이 많아 범사에 복을 받고(창24:1) 결국은 이스마엘도 끊어냈는데 이삭은 믿음이 다운되어 “자식 때문에 못 죽는다” 하며 에서를 끊어내지 못합니다. ③ 철저한 자기 본위를 보여줍니다(3-4). 자식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철저하게 “나” 를 외치는 이삭입니다. 자식이 수능 잘 못 보면 속상한 것이 자식을 위하는 것 같지만, 내 자존심 때문인 것입니다. “공부 해서 남 주냐” 라면서 자식을 공부시키지만, 그 이면에는 “나를 위해서 공부해라” 하는 것이 부모된 우리의 욕심입니다. ④ 이 모든 것의 끝에 ‘별미’ 가 있습니다(4). 우리가 각자 너무 사랑하는 별미가 있으면, 그것이 다 우리의 눈을 가립니다. 중독에 빠져서 그것을 사랑이라고 착각하며 해 주려는 축복은 오히려 저주입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유일한 별미는 오직 우리의 믿음뿐입니다.
외적인 고난이 있을 때는 이삭의 믿음이 너무 좋았지만, 복을 받고 환경이 편안하니 영적으로 다운됩니다. 별 인생이 없어서 믿는 우리도 늘 자녀들에게 별미를 원하며 “~만 하면 ~ 해줄게” 하지만, 천국은 똑똑하고 내 맘에 드는 자녀가 가는 게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갑니다. 잘난 에서는 영적으로 심각한 것이 없어서 환경을 떠나지 못했지만, 천덕꾸러기로 무시받던 야곱이 하나님을 믿어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최고의 부모는 좋은 환경을 주는 부모가 아니라, 삶으로 신앙을 보여주며 회개하는 부모입니다. 우리들교회 성도 여러분들이 이러한 부모와 자녀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삭이 나이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맏아들 에서를 불러 가로되 내 아들아 하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나의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다가 먹게 하여 나로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 (창2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