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여호와께 복 받은 자
창세기 26장 26-33절
얼마 전 미국의 한 침례교 목사가 강단에서 오바마 대통령을 향해 저주 설교를 퍼부었다고 합니다. 그가 낙태와 동성애를 지지한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죄와 죄인을 구별하지 않고 옳고 그름을 가리면 세상을 설득시키지 못합니다.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의 모습은 어떠해야 할까요?
세상을 설득시켜야 합니다. 아비멜렉에게 쫓겨난 것처럼 보였던 이삭에게 아비멜렉이 군대장관까지 데리고 찾아왔습니다. 주님 때문에 떠났기에 아무 변명도 하지 않고 열심히 우물을 파고 있었더니 세상에서 인정을 해 주는 일이 생겼습니다. 자존심이 상해도, 지금 다 말하지 못해도 하나님 때문에 선택한 길이라면 인정받을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26). 이삭이 그들에게 왜 찾아왔느냐고 물은 것처럼, 나를 인정해 준다고 무조건 감지덕지할 것이 아니라 과거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며 단호할 때는 단호해야 합니다(27). 아비멜렉은 어디서든 계속 우물을 파고 그것을 온전히 기쁘게 여기는 이삭에게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분명히 보았다고 말합니다. 영적 진실성의 결과로 나타나는 인내가 최고의 목록입니다(28). 치졸하고 연약하지만 그동안 잘 참고 인내한 이삭에게 아비멜렉은 ‘우리를 해하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이처럼 목적이 분명한 사람에게는 저절로 권위가 생깁니다(29). 온전히 인내를 이루며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보일 때 세상을 설득시킬 수 있습니다.
세상을 인정하면 안 됩니다(29). 세상은 설득시켜야 할 대상이지 함께 가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해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죄를 시인하지 못하는 세상 왕 아비멜렉은 믿음의 동역자가 될 수 없습니다. 나를 인정해 준다고, 나를 사랑해 준다고 나의 동역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것을 분별하지 못해 결혼 생활과 사회생활에서 숱한 배신을 당합니다.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 세상을 설득시킬 인격을 갖추고, 옳고 그름이 아닌 생명의 선택을 할 때 세상을 설득시킬 수 있습니다.
세상을 감동시켜야 합니다(30). 이삭이 자신을 괴롭힌 그랄 왕에게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이상한 소리만 하고 사과도 하지 않는 아비멜렉에게 더 이상 기대하지 않고 대접하는 것이 감동을 주는 일입니다. 즐거울 때 생성되는 엔돌핀보다 5,000배나 강력한 다이돌핀은 감동을 받았을 때 생성되는 감동 호르몬이라고 합니다. 인간은 자존적 교만이 있어서 자기 죄를 직면하지 못하기에 자신의 부족을 솔직하게 시인할 때 최고의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최고의 감정은 회개입니다. 그러나 그랄 왕이 평생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블레셋 족속으로 남은 것처럼, 아무리 옆에서 감동을 줘도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31-32). 사람이 살려면 물이 있어야 하듯이 우리의 현실적 문제는 중요합니다. 흉년에 브엘세바로 올라온 이삭이 아비멜렉과 언약을 체결하고 화평을 선언한 그 날에 판 우물에서 물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적 문제를 먼저 해결하신 후에 우리의 육적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그래서 흉년의 땅에 갔다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계속 우물을 파야 합니다. 세상을 설득하고 감동을 주게 되면 반드시 현실적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자손 대대로 브엘세바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하십니다(33). 흉년의 땅에서 터진 샘물을 간증하며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누리는 여러분이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날에 이삭의 종들이 자기들의 판 우물에 대하여 이삭에게 와서 고하여 가로되 우리가 물을 얻었나이다 하매 그가 그 이름을 세바라 한지라 그러므로 그 성읍 이름이 오늘까지 브엘세바더라" (창 26:3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