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백성]
행 18:5~11
성령의 백성은'수많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는 의미로 믿는 사람에게 최고의 존칭입니다.하나님 나라의 근본을 이루기 때문입니다.성령의 권면을 받은 사람들은 택자(擇者)로 성령의 백성이 됩니다.오늘 성령의 백성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첫째,주 안에서 보고 싶은 지체입니다.
쫓겨나듯 홀로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온 바울에게, 간절히 기다렸던 실라와 디모데가 드디어 도착했습니다(5절).그들은 바울이 아덴에서 실패하고 조롱을 받고 떠났다는 소문을 들었을 것입니다.그럼에도 빌립보와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믿음의 소식을 전했고,바울은 힘을 내어 복음을 담대히 전하게 되었습니다.그들은 그교회들에서 보내준 선교후원금도 가지고 왔습니다.그 덕분에 텐트를 만드는 일을 하며 주말 사역만 하다가 오롯이 선교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바울에게 실라와 디모데는 천군만마 같은 존재였습니다.바울과 실라,디모데,브리스길라와 아굴라,데살로니가 성도들,빌립보 성도들 모두 성령의 백성이며,이들이 바라보고 있던 것은 단 한 가지'구원'입니다.함께 구원을 바라볼 공동체가 있으면 성령의 백성이고 보고 싶은 지체가 되는 줄 믿습니다.
둘째,말씀에 붙잡히게 해줍니다.
실라와 디모데의 격려로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예수는 그리스도'라고 밝히 증언할 수 있었습니다(5절). '붙잡혀'즉'쉬네코'는미완료 과거 수동태로'둘러싸임을 당하다', '거대한 상황에 사로잡히다','질병이 그 사람을 통제하거나 억누르는 것이나 커다란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상황'을 묘사합니다.이와 같이 말씀에 붙잡힌다는 것은 억누름을 당하고 두려움을 동반하는 것으로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가라는 뜻입니다.그렇다면 왜 '붙잡혔다'라고 표현을 했을까요? 그것은 우리 힘으로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기 때문에 오직 말씀이 우리를 붙잡아 주어야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그래서 바울은 아덴에서와 달리 고린도에서는 말씀에 붙잡힌 능력으로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증거하지 않고'예수는 그리스도다'라고 밝히 증언했습니다.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힐 수 있겠습니까?말씀의 구조 안에 있어야 합니다.한결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그 말씀을 듣고 순종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움직이고 살아가는 공동체 안에 거해야 합니다.
셋째,대적과 비방도 받아내야 합니다.
바울은 아덴에서와 달리 고린도에서는 말씀에 붙잡혀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예수는 그리스도라'고 밝히 증언하니,유대인들이 바로 그 말을 비방하기 시작합니다(6절).그냥 비방한 게 아니라 대적하고 비방했습니다. '대적하다'라는 말은 단순한 반대를 넘어 조직적인 형태를 갖추어 체계적으로 저항하고 대립하는 의미까지 포함합니다.이렇게 기다려도 가까이 오지 않는 유대인들을 향해 바울은 옷을 털면서 분명히 말합니다.그들의 완악함에 대해 자신은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고,이제 그들의 불순종은 전적으로 그들 자신의 책임이라고 밝힙니다.옷을 터는 것은 강력한 표현으로 그들에게 임할 심판을 외쳤습니다.성령의 백성은 이렇게 비방과 대적을 받을 때, 대항하지 않고 옷을 털며 그 상황을 피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그럴 때 복음이 다른 곳으로 옮겨갑니다(7절).바울은 사역의 장소를 유대인 회당으로부터 이방인 디도 유스도의 집으로 옮겼는데, 물리적으로는 회당 바로 옆입니다.바로 옆에 붙어서 사니 서로 보기 싫어도 봐야 했을 것입니다. 또한 회당장 그리스보와 그의 온 가족이 예수님을 영접하게 됩니다(8절).이렇게 복음은 말씀을 거부하는 유대인에게서 이방인에게로, 다시 유대인에게 전해진 것입니다.더 나아가 수많은 고린도 사람들이 믿고 세례까지 받았습니다.이렇게 인생이 해석된 로마의 명문가 유스도의 집에서 고린도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그리고 유스도와 그리스보는 나중에 바울이 너무 보고 싶어 하고 문안하고 싶어 하는 사람으로 로마서,고린도전서에 기록되었고,고린도교회에서 바울에게 유일하게 세례를 받은 두 사람의 인물로 기록되었습니다.
넷째,하나님이 함께하십니다.
바울은 디모데와 실라,유스도,그리스보를 만났고,수많은 고린도 사람들이 바울의 말을 듣고 세례를 받았습니다.그런데도 바울에게는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가만히 있을 때는 모르겠는데 말씀만 전하면 핍박과 고난과 비방과 대적이 계속되니,말씀을 전할 때마다 두려웠습니다.하지만 하나님께서 밤중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떠는 바울에게 환상 가운데 나타나서 위로하십니다(9-10절).바울과 함께하신다고 하시고 더 나아가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니라하십니다.이 성은 어떤 성입니까?도저히 가망이 없어 보이는 고린도,경험해 본 중 최고로 음란하고 악하고 돈 많고 학식 있는 바로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다고 하십니다.이곳에 하나님의 백성,하나님의 교회가 있다는 겁니다.내가 살인자요 훼방자요 포악자라는 것을 말하면서 예수를 전해야 하니 두려웠습니다.믿는 자는 회사에서,사회에서 너무 적은 숫자입니다.동성애와 양심적 병역거부가 틀렸다고 하면 여기저기서 들고 일어나니 말하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지 생각해 보면 당시 바울의 심정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그러나 구원을 위해서라면 말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한 집사님께서 아내가 숨겨왔던 외도 사실을 듣게 되었는데, 배신감보다는 자신의 죄를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사건으로 아내는 여자 목장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말씀 듣는 구조 속에 있을 때 구체적으로 도움을 받고 죄를 고백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알고, 말씀에 붙잡혀 성령의 백성으로 자리매김 하여 걸어갈 수 있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