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권면]
행 18:1~4
지난주 집으로 오신 분들은 이제는 인생을 해석하는 성령의 권면을 들으셔서 해결이 되셔야 합니다. 누군가의 권면이 들리려면 배가 부를 때는 잘 안 들립니다. 그러면 언제 성령의 권면이 들릴까요?
첫째,실패와 외로움이 있을 때 권면이 들립니다.
그 후에는 아덴의 사역이 실패로 돌아간 후를 말합니다. 지금의 아테네인 아덴은,지성의 요람으로세계적인 철학자들이 즐비한 도시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세상은 소크라테스는 알아도 바울은 모릅니다.그래서 바울의 말을 인용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바울의 말을 왜 들었을까요?그냥 또 하나의 새로운 것이 궁금했을 뿐입니다. 바울은 아덴 사람의 언어로 창조주 하나님으로 시작해서 삼위 하나님을 자연계시를 통한 지식으로 호소했지, 예수 그리스도의 죄 사함의 복음으로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직접 언급하는 대신 정하신 사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바울은 아덴의 우상숭배로 인해 성령의 격분으로 애타게 성령의 알리심을 전했는데, 그 열매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완전히 벽에 부딪힌 것입니다. 지금까지 때리고 맞고 옥에 갇힌 그 어떤 곳보다도 자괴감을 느끼게 한 제일 힘든 곳이었습니다. 후에 아덴에서 한 실패가 결국 고린도 교회를 세우고 권하는데 큰 역할을 했지만, 바울에게 있어 아덴은 그만큼 외롭고 처절한 실패를 경험하게 했던 장소였습니다.
둘째,음란해도 권면이 들립니다.
바울은 아덴을 떠나 아가야 지방의 수도 고린도에 도착했습니다. 고린도는 동서로 바다가 열려 있고 남북으로 도로가 있어 로마와 아시아를 연결하는 길목 역할을 했기 때문에, 수많은 배와 무역품,장사꾼,돈과 경제가 한 곳으로 모인 상업의 중심지로 성장한 아주 오래된 도시였습니다. 지금까지 거쳐 온 모든 도시들의 화려한 모습을 총망라한 복합적인 도시였습니다.그리고 도시 중 최고로 음란하고 사치하고 방탕하고 성적으로 매우 타락한 이곳에 바울은 실패자로 혼자 입성했습니다. 사람은 악하고 음란하기에 자기의 이해타산에 따라 변합니다. 하나님에 대해 올바른 관계를 갖지 못하면 사람에 대해서도 아덴 아니라 그 누구도 바른 시각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종교적 범죄인 불경건과 도덕적 범죄인 불의는 분리할 수 없는 죄의 본질입니다. 불경건이 불신자들이 짓는 죄라면, 불의한 죄는 주로 성도들이 짓는 죄입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모르니까 그 자체가 불경건이기 때문에, 불신자에게는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에 우리의 거룩을 요구하시는데 그것은 순종입니다. 순종하기 싫으니까 신자이든불신자이든차별 없이 진노는 임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진노는 내어 버려 두는 진노입니다. 세상적으로 잘 먹고 잘사는데 망하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으니까 갈 길이 음란밖에 없습니다. 꼭 성적인 음란만 이야기하는 건 아닙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서는 미워하는 자도 아니고 사랑하는 자도 아닌 잊혀진 자라고 하십니다. 롬1:25-27절에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의 예로 동성애를 언급했는데, 그들의 사랑이 조물주보다 더 위에 있어 경배하기 때문에, 그들은 어떤 이야기도 안 들리고 돌이키지 않습니다. 음란의 끝은 동성애입니다.아덴에서 모든 것을 갖춘 사람들의 쾌락의 끝은 동성애이고, 그것은 하나님 자리에 있기 때문에 돌이키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셋째,같은 실패를 겪은 한 사람의 권면이 들립니다.
홀로 고린도에 온 바울에게 하나님께서 아굴라 라는 한 지체를 보내십니다. 서로 통하는데 출신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고난입니다. 아굴라는 로마에 잘살아 보려고 갔다가 재산 몰수당하고 살점을 떼어내는 것 같은 고통으로 바울처럼 쫓겨났습니다. 아픔이 있는 그들은, 떠날 수밖에 없었던 같은 고난을 겪었다는 점에서 뭔가 더 깊이 통했을 것 같습니다. 바울은 이런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집에서 유숙하며 그들과 함께 일하고 함께 지냅니다. 우리도 같은 고난을 겪은 지체들과 함께할 때, 주께로 인도하는 성령의 권면이 들립니다. 바로 우리들 교회 목장이 그 역할을 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굴라가 로마를 떠날 때 아내 브리스길라도 함께 떠났습니다. 브리스길라는 로마의 귀족 브리스 가(家) 가문의 여자로 대단한 신분이었지만, 흉년이 들어 모든 것을 빼앗긴 식민지 노예인 자기 남편을 따라 고린도로 함께 떠납니다. 브리스길라의 떠남,그것 하나로 아굴라를 성령의 권면을 받게 하는 자리까지 인도하게 된 것입니다. 남편을 세워 주기 위해 로마를 떠났던 아내가 2000년 동안 인류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의 언어를 사용할 때 종속되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더 높이 평가해주시고 존귀하게 여겨 주십니다. 그저 아내의 자리를 끝까지 지키고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이 돌아오지 않는 내 남편을 성령의 권면을 따르게 하는 비결입니다. 브리스길라의 이런 헌신으로 주님은 그녀를 별처럼 빛나게 하셨습니다. 흉년의 때,떠남의 때에 남편과 아내의 역할에 순종하며 함께 하는 것,이것이 귀합니다. 돈이 아닌, 때에 순종해야 하고,특별히 흉년의 때,떠남의 때에 순종해야 합니다.
넷째,생업을 같이 함으로 사명의 권면이 들립니다.
바울은 천막을 만드는 원재료가 굉장히 발달하고,천막 만드는 기술자들이 많은 다소 지역 사람이었기에, 텐트 메이커로 아굴라 부부와 생업을 같이 합니다. 같이 살면서 성령의 권면을 한다고 내 삶의 터전을 뛰쳐나가면 안 됩니다. 때를 지키고 각자의 자리를 지키면서 복음을 전해야 그 복음에 생명이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며 힘든 상황에서 통하는 사람을 만나면 여기가 좋사오니 하며 쉬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가끔 통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하시는 이유는, 그 만남을 통해 힘을 공급받아 사명으로 나가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런 구속사를 모르고, 이혼하는 것은원칙과 위배되는 악의 한 종류일 뿐,어떤 합리화도 통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구속사로 큐티를 하셔야 됩니다. 성령께서 사람을 통해 권면하시는 목적은 우리를 사명의 자리로 세우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전도의 미련한 것을 연습해야 하는데, 이것이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훈련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 아닌 거룩입니다.
말씀 맺습니다. 성령의 권면은 실패와 외로움 속에서 들립니다.그리고 음란해도 성령의 권면이 들립니다. 같은 실패를 겪은 한 사람의 권면과 생업을 같이 함으로 사명의 권면이 우리에게 들립니다. 내 주변에 있는모든 이들이 성령의 권면을 받아들여 천국에 입성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