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하심
창세기 25장 22-34절
부모가 어린 동생만 편애한다는 이유로 집에 불을 질러 부모를 숨지게 한 20대가 구속되었습니다. 야곱과 에서의 분쟁처럼 형제간에도 물고 뜯는 것이 타락한 인간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서로 경쟁을 해도 장자인 에서가 물러나고 야곱을 택하셨다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닙니다. 경솔한 에서와 간교한 야곱, 둘 다 악하고 연약하지만 하나님은 야곱을 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은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는 것입니다. 어렵게 잉태한 아이들이 태 속에서부터 싸우니 이삭이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긴다고 하십니다. 내가 기도했어도 해산 기한이 차서 낳아보니 고통을 주는 자녀가 나올 수 있습니다(22-24). 붉고 전신이 갖옷 같은 에서가 큰 자로 태어나고, 경쟁심 많고 교활한 야곱이 어린 자로 태어납니다(25-26). 에서가 남자답고 멋있어도 하나님의 섭리는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는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태중에서부터 야곱을 택하셨기 때문에 이것은 행위로 택한 것이 아닙니다(롬9:11-12). 우리에게는 큰 자와 작은 자, 강한 자와 약한 자, 순서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약한 자를 사용하십니다. 약한 나로 강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이해하지 못해서 문제 부모가 됩니다. 이삭은 익숙한 사냥꾼인 에서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종용히 장막에 거하는 야곱을 사랑합니다. 부모가 각자의 유익에 따라 자녀를 사랑합니다(27-28). 하나님의 주권과 상관없이 부모의 자유의지로 자식을 판단하면서 편애의 비극이 시작됩니다. 부모의 욕심을 이루려고 자녀를 행위로 판단하기 때문에 열등감과 경쟁심을 부추겨서 문제아를 만듭니다.
장자권을 중히 여겨야 합니다. 에서는 먹고 마시는 것이 인생의 목적인 호탕한 사람입니다(29-30). 죽을 쑤면서 기회를 노리던 야곱은 에서의 약점인 배고픔을 이용해서 장자의 명분을 요구합니다(31). 장자권은 육적으로는 재산과 재판권을 행사하는 권리이고,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고 하나님의 기업을 이어받는 축복권입니다. 그런데 에서는 ‘내가 죽게 생겼는데 장자권이 뭐가 유익하겠느냐’고 하찮게 여깁니다(32). 물질에 정신이 팔려서 육의 선택을 하고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서 속히 가버립니다.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기고 하나님의 택하심을 멸시합니다(34). 야곱도 이때는 육적인 장자권만 사모했기에 하나님의 섭리를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적 술수로 장자권을 얻었습니다(33). 이후에 기다림과 인내의 험악한 인생을 통해서 인격적인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알기 위해서 죄에 대한 인식이 필요합니다. 내가 죄인임을 알아야 약한 자를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인정할 수 있습니다. 좋은 자녀, 나쁜 자녀는 없습니다. 각자 역할이 있을 뿐입니다. 힘들고 연약한 자녀일수록 하나님의 택하심이 있음을 믿고, 하나님 나라의 장자권을 귀히 여기는 우리들의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에서가 가로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야곱이 가로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창25:3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