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직행]
행 16:11~15
마게도냐의 한 영혼의 외침에 한마음이 되어 바울과 우리가 드로아 아시아 떠나기를 힘쓰니 이번에는 직행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면 이 직행이 어떻게 어디로 향하는지 오늘 본문을 통해 성령의 직행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첫째, 순풍도 허락하십니다.
드로아에서 마게도냐로 가장 빨리 가려면 배로 에게해를 떠나야 했습니다. 당시의 배는 순전히 바람을 이용한 돛단배였기 때문에 바람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며 역풍이냐 순풍이냐에 모든 것이 걸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항해는 남동풍의 순풍으로 단 이틀 걸렸다는 것인데, 이것은 당시 항로로 보면 기적입니다. 그래서 누가는 이것을 직행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거절은 싫고 내 인생에는 순풍만 있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돈, 성공, 쾌락, 건강의 멋진 항구로 거침없이 가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그곳에는 영생이 없습니다. 그러니 그런 행복의 항구로 직행하게 하는 순풍은 구원의 관점에서 보면 거절 받는 역풍이 오히려 순풍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사명의 돛을 달아야 순풍입니다. 그러므로 이 순풍에 또 걱정되시는 주님은 지나쳐야 할 세 곳을 알려 주십니다. 드로아는 트로이 목마로 유명한 트로이입니다. 총각인 트로이 왕자와 눈이 맞은 유부녀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나 때문에 스파르타왕이 그리스 연합군을 동원해서 트로이를 침략하여 전쟁을 치른 곳입니다. 그래서 드로아는 직행하면서도 지나쳐야 하는 곳입니다. 이어서 사모드라게로 직행했는데 그곳은 교통의 요지이고 12개의 위대한 신들의 사원이 있는 곳입니다. 이곳도 잠시 하룻 밤 머물고 역시 떠납니다. 그리고 이틀 만에 네압볼리로 갑니다. 네압볼리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로마의 길, 에그나티아가 시작되는 지점이지만 또 지나칩니다. 이 모든 아름다운 항구를 사도바울이 지나갔다는 것이 그 도시로서는 슬픈 일입니다. 그러니 내가 아름다워서 바울 사도를 지나치게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정하신 목적지가 마게도냐임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게도냐의 첫 성이 빌립보이기 때문에 빌립보에 도착할 때까지 직행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순풍에 돛단 듯이 직행하려면 이렇게 지나쳐야 할 곳들이 분별되어야 하며, 성령의 거절도 많이 맛보아야 합니다. 좋아 보이는 명분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설 수 없으며, 열심과 노력이 순종을 능가해서도 안 됩니다. 또한 말씀을 앞세워 순종할 때 성령의 직행을 할 수 있으며 여기서 우리가 즉, 공동체가 너무 중요합니다.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없으면 떠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정해주신 사명의 자리에 수일을 유해야 합니다.
누가는 빌립보가 당시 세상의 중심지였던 로마의 식민지라고 소개합니다. 그리고 바울이 로마를 가장 충성스럽게 대표하고 있는 빌립보에 와서 보니 로마로 가서전도해야겠다고 생각하게된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복음을 전했다는 기록은 없이 수일을 유했다고 합니다.
어디를 가든 외국이라는 느낌을 받지 못했는데 빌립보에 들어가니까 완전히 다른 문화권이라는 것을 느껴서 빌립보, 로마에 전하려면 여기를 이해해야 하겠다는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의 삶 속에 들어오셔서 우리와 함께 웃고 울고 고통당하고 하시면서 같이 사셨기 때문에 그분의 말씀이 우리에게 들리는 것입니다. 다른 문화권에서는 수일을 유하는 시간이 필요한데. 여기서 수일을 유하다 라는 것이 디아트리보입니다. 맡겨주신 사명의 자리에 딱 앉아서 윤이 나도록 비비고 문지르는 것입니다. 어떤 자리든 주께서 맡기신 자리면 떠나지 않고 잘 지키며 유하는 것이 도리어 시간을 아끼는 직행의 비결이 됩니다.
셋째, 기도하니까 말씀이 들리는 한 사람의 마음을 열어주십니다.
바울은 무엇보다도 간절히 기도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수일을 기다리면서 연구를 해보니 빌립보에는 유대인이 많지 않아서 회당이 없는 것입니다. 회당설립이 불가능한 곳에서는 유대인들은 손을 씻고 정결례를 행해야 하므로 기도처를 늘 강가에 마련해서 모이고는 했습니다. 마침 그곳에 여인 몇 사람이 모여 앉아있는데 그들에게 드디어 처음으로 바울은 입을 열어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 사람의 문화를 이해하고 수일을 유하는 과정을 거쳐 그들의 눈높이와 언어, 문화, 사람의 귀에 들리도록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항상 구원을 생각하면 연구해야 합니다. 우리의 약재료가 이때 빛을 발하는 것이며, 눈물을 겪은 자만이 그 사람의 마음을 열 수 있습니다. 바울이 전하는 이 말씀을 루디아가 계속 듣고 또 들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여자들은 그렇게 편안하게 이야기를 해주는데도 안 들리는 것을 보면 믿음은 선물입니다. 결국 그 루디아 한 사람이 성령의 직행의 종착점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을 어떻게 만나게 하셨는가 하면 여전한 방식으로 안식일에 예배드리러 나온 여자인 것입니다. 말씀이 들리니까 마음을 여셨고 바울의 말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루디아는 생각하지 못한 한 사람입니다.
넷째, 동역자를 허락하십니다.
말씀이 들리면 마음이 열리고 마음이 열리면 집이 열립니다. 그런데 이렇게 마음이 열리니까 루디아와 그 집에 속한 모든 사람이 세례를 받고 구원을 받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집안 식구 전체가 믿으니 루디아가 바울 일행을 자기 집에 머물도록 강권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바울과 함께 주 믿는 자가 되었기 때문에 바울이 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복음을 전하는 그 사명에 참여하는 동역자가 되겠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성령의 직행은 곤고한 한 영혼이 말씀을 듣고 마음이 열리고 집이 열려서 말씀의 동역자로 세워지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참 놀라운 것은 사도바울이 그렇게 가고 싶어 했던 아시아에 살던 루디아를 유럽에서 만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거절하심에 순종하며 구원을 위해 십자가를 지고 가다 보면 만날 사람을 다 이렇게 만나게 하십니다. 말씀이 들려서 집을 열고 성도들을 맞이한다면 우리 집이 라합처럼 가나안의 길목을 열고 유럽의 포문을 열고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는 교회가 되고, 빌립보 교회가 되며 이 가정에 속한 모든 이들이 세례를 받고 구원의 기쁨에 들어간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이 땅에서 내 자녀 때문이 아니라 다른 자녀를 위해 힘쓰면 보고픈 얼굴들을 만나게 될 날이 오게 될 줄 믿습니다. 바다에서의 순풍에 이어서 만남에서의 순풍을 하나님께서허락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