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견고함]
사도행전15:36-41
초대교회인 안디옥교회가 할례와 율법 문제로 유대교회와 이방인교회로 분열될 뻔 한 위기를 성령의 결정으로 넘겼습니다. 그 후에 큰 갈등상황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 갈등이 오히려 교회와 우리 성도를 견고케 합니다. 오늘은 성령의 견고함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1. 끊임없는 형제의식의 돌봄입니다.
세계 최초로 선교사를 파송하여 많은 이방인을 전도하고 여러 교회를 세운 안디옥교회가 율법주의자들의 공격으로 그 기초부터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본문 41절의 견고하게 하다는 뜻은 흔들리는 것을 움직이지 않도록 고정시키다라는 의미입니다. 안디옥교회가 이방인 할례 문제로 위태롭게 흔들렸지만, 이를 멈추게 한 지지대는 유다와 실라가 전한 예루살렘교회의 위로와 권면의 말씀입니다.
바울이 안디옥 교회에 돌아온 후 오래지안아, 1차전도 여행 때 말씀을 전했던 형제들을 다시 가서 돌아보자고 제안했는데, 이는 바울이 하나님의 일에 계속 쉬지 않고 매진하였음을 보여줍니다. 바울의 2차 선교여행은 이렇게 소박한 생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의 핍박으로 시험당하는 안디옥, 루스디아, 이고니온에 있는 교회에 예루살렘교회에서 보낸 편지를 빨리 갖다 주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성공적인 사역자인 바울은 늘 구원에 초점을 맞추어 형제들을 돌아보고자 합니다. 이런 형제의식이 사람을 견고하게 합니다. 바울이 제안하는 이 방문은 성령의 결정으로, 일부 자기열심인 유대인들이 이방인을 괴롭히려 했던 죄에서 돌이켜서,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다시 이방인에게로 향하는 교회의 적용을 바울이 대표로 하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의 결정을 하면 주시는 축복이 바로 이 형제의식의 축복입니다.
2. 사람을 의지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바나바는 1차 선교 여행 때 밤빌리아 버가에서 험준한 토로스산맥을 넘는 것을 포기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마가 요한을 2차 선교여행에 데리고 가려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가 중도포기 후 되돌아 간 것은 자신들을 배신한 것뿐만 아니라 이방 선교 사명도 배신한 것이라며 동행을 반대합니다.
하지만 데리고 가는의 의미를 원어로 살펴보면 바울은 사명을 위한 지속적 행위로 여겼지만, 바나바는 단회적인 일시적 행위로 해석하고 계속하여 지속적으로 말했다는 뜻입니다. 이는 그의 조카인 마가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고 싶은 인본적인 감정에 관심이 치우쳐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나바는 자신의 체면을 더 중요시하여 마가를 데리고 가자고 끈질기게 요구했지만, 바울은 신뢰감이 없는 사람과 반복적으로 부딪히는 부담감을 피하고 싶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이방 선교팀 사역을 했던 두 사람의 갈등은 이미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생긴 갈등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13절에서 바울은 안디옥에 온 베드로가 이방인과 함께 식사하다가 유대주의자들이 오자 그들을 두려워하여 이방인과 안 어울린 척했는데, 그때 바나바도 그 외식에 유혹되었다고 했습니다. 또한 갈라디아서
2장20절에서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라고 합니다. 이런 믿음과 주님에 대한 사랑으로 바울은 베드로를 책망할 수 있었고, 같이 이방 선교를 다녀온 바나바에게도 직접적인 책망은 없지만 불편한 마음은 있었을 것입니다. 구속사적으로 본다면 이 다툼의 사건은 특별히 이방 선교를 이어가야 하는 바울에게는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것으로 바울이 사람을 전혀 의지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일어난 사건입니다.
바나바로 인해 바울이 예루살렘교회에 들어올 수 있었고, 안디옥교회 사역과 1차 선교 여행도 할 수 있었기에, 외로운 바울에게는 바나바가 저절로 의지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좋은 성품으로 칭찬과 존경을 받았지만 드러나는 심각한 죄가 없어 보이는 바나바는 성품의 한계와 약점이 이방교회를 돌보자고 하는 사명 대신 혈육과 고향을 선택해 조카 마가를 데리고 고향 구브로로 먼저 떠나는 것으로 들어납니다. 이 사건으로 바나바나 바울이 사람을 의지하던 마음을 돌이켜 온전히 하나님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게 하셨습니다. 사람을 의지할 수 없게 되는 것이 성령께서 견고하게 하시는 성령의 견고입니다.
3. 주의 은혜에 맡기는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의 다툼이 교회들을 견고케 하는 일이 되었고, 세계적인 견고함이 되어 세계적인 선교로 나갔습니다. 사도행전 저자인 누가는 형제들이 주의 은혜에 부탁한 사람도 바울이고, 이 사건 이후 바나바는 사도행전에서 사라지면서 바울의 결정이 옳은 것임을 들어냅니다.
이렇게 구원의 일과 인본적인 일은 날마다 대결합니다. 정에 약한 바나바는 바울과 심히 다툰 후 전도여행을 같이 가지도 않고 물어보지도 않고 먼저 마가를 데리고 떠나버리며 감정적으로 움직입니다. 바나바는 여기까지 바울을 돕는 부르심의 사역으로 쓰임 받은 것이고, 바울의 그릇에 바나바와 베드로가 담아질 수 없어서 이렇게 저절로 되게 하신 것 같습니다.
한편 예루살렘교회의 편지를 갖고 안디옥교회에 오는 과정에서 실라는 바울에게 많은 은혜를 받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로마 시민권자이고 예루살렘교회의 인정받는 지도자인 그는 안정된 자리를 내려놓고 바울과 동행합니다. 바울은 홀로 선교 사명을 감당할 수 없기에 바나바가 떠난 자리에 실라를 택합니다. 이렇듯 주님의 일은 하나님 뜻대로만 하면 사람을 준비시키시고 허락하십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성령의 견고함은 끊임없는 형제의식의 돌봄으로, 사람을 의지하지 못하게 하셔, 주의 은혜에 맡기는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의 다툼이 성령의 견고함으로 세계적 선교로 나타나듯 나에게 어떤 사건이 와도 요동함이 없고, 많은 다툼과 갈라섬도 우리를 견고케하기 위함임을 믿고가는 한 주 되시기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