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의 결단
창세기 24장 49-61절
결혼생활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주된 요인이 계획적인지 무계획적인지, 주관적인지 객관적인지 하는 성격의 차이라고 합니다.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서 같이 산다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그렇다고 나와 다른 사람하고는 결혼을 하지 말아야 할까요? 결혼은 옳고 그름으로 결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혼의 결단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을 때 하는 것입니다. 리브가가 이삭의 배필임을 확신한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이 가족들에게 결단을 촉구합니다(49). 종의 확신과 진실성 있는 진술을 듣고 라반과 브두엘도 수긍합니다.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옳고 그름을 말할 수 없다고, 리브가를 데려가서 여호와의 명대로 하라고 합니다(50-51). 결혼에서 중요한 것은 조건, 용모, 습관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입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자녀의 혼사에 하나님의 사인이 없다고 반대하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결혼 후에도 조건을 트집 잡아서 이혼을 종용합니다. 믿음이 아니라 조건으로 반대를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갖다 붙이는 것은 자녀를 하나님 나라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결혼을 결단하기까지 진행이 합리적이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종이 당시 관습대로 리브가 가족에게 예물과 결혼대금을 지불합니다(52-53). 자신을 위해서는 식사 한 끼도 하지 않은 종이 영적 후사를 이어갈 리브가를 위해서는 아낌없이 재물을 내어놓습니다. 결혼의 결단을 하려면 재물에 대한 가치관이 뚜렷해야 합니다. 재물은 자신을 위해서는 절제하고 모아서 영적 후사를 얻는 일에 아낌없이 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목적을 이루기까지 과정도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엘리에셀이 상대방의 눈높이로 내려가 예의를 갖추고 최선의 도리를 한 것처럼, 믿음의 결혼을 위해 현실적인 준비를 하고 합리적으로 진행해야 합니다. 자녀의 불신결혼을 반대해도 부모의 삶이 따라주지 않으면 올바른 말도 안 들립니다. 입으로만 믿음을 부르짖으면서 세상을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에 자녀가 현실을 무시한 충동적인 선택을 하게 됩니다. 결혼의 목적은 땅과 후사입니다. 하나님 나라와 영적 후사를 위한 결혼이 인간의 죄로 오염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와 영적 후사를 위해서 결혼의 과정마다 지혜가 필요하고 동의를 구하고 설득을 시키며 기다려야 합니다.
결혼의 결단을 하기 위해 지체치 말아야 합니다. 가족의 허락을 얻은 종은 지체치 않고 돌아가겠다고 합니다. 라반과 가족들이 열흘을 쉬다 가라고 만류하지만 주인의 명령에 충성하며 돌아가게 해달라고 합니다(54-56).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까지 깊이 생각하고 갈등해야 하지만 결정한 후에는 지체치 말고 순종해야 합니다. 엘리에셀과 한 마음이 된 리브가도 지체치 않고 가겠다고 합니다(57-58). 생면부지의 종과 함께 생면부지의 이삭을 만나러 가겠다고 믿음의 결단을 합니다. 부모가 결혼을 결정한 것 같지만 마지막 결정은 리브가가 하는 것입니다. 진정 주의 일이라면 부모, 형제도 떠날 수 있습니다. 간다고 서운해 하는 것이 아니라 라반도 리브가를 축복합니다. 라반이 믿음이 부족해도 천만인의 어미로 약속의 후사를 이어가라고 확실한 축복을 했습니다(59-60). 믿음으로 결혼을 결단할 때 우리의 중보자 되시는 예수님께서 중보하심으로 부모의 마음도 바꿔주시고 축복을 받게 하실 것입니다. 리브가가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종을 따라갑니다(61). 영적 후사를 위해 지체치 않고 순종한 리브가였기에 천만인의 어미가 될 자격이 있습니다.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신랑 되시는 예수님을 따라나설 때 천만인의 어미로 많은 사람을 살리고 영적 후사를 얻게 하십니다. 예배와 목장과 양육에서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것인지를 묻고 순종하는 것이 믿음의 결단을 하는 방법입니다.
“라반과 브두엘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우리는 가부를 말할 수 없노라” 창24: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