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깨달음]
사도행전 10:30-35
말씀을 통해 온전히 순종하고자 하면 내가 직접 본질을 보고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을 다 들었지만 스스로 깨달아 순종하는 그런 성령의 깨달음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첫째,하나님이 들으시는 기도와 구제를 해야 합니다.
유대인의 법을 어기면서까지 이방인의 집을 찾아간 베드로는 자기를 왜 초청했는지 잘 알고 있었지만, 먼저 오라고한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고넬료는 베드로에게 그동안 자기에게 일어났던 일을 자세히 보고합니다.
기독교 역사상 너무나 중요한 일이었기에 성경에서 이렇게 몇 번씩 반복 기술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방인의 선교가 그만큼 어렵고 힘든 일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로마의 백부장이 겸손하게 기다린 것이 나흘이라고 합니다(31절). 그리고 '구 시'면 현재 시간으로, 오후 세 시인데 로마군대 백부장이 어떻게 그 시간에 기도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원어로 '집'은, '오이코스'로 우리가 생각하는 집을 넘어서 우리가 있는 곳을 의미하기 때문에 직장이나 가정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기도 시간을 지킬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고넬료가 그랬다는 것 입니다. 어디서나 때에 맞추어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고넬료에게 기도중 나타난 환상에서, 하나님 영광이 반사된 빛나는 옷을 입고 선 천사를 보았고, 이 천사가 고넬료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다고 칭찬을 해주었습니다. 그렇지만 베드로에게 보인 환상은 온갖 부정한 짐승들의 환상을 보여주시면서 먹으라고 했습니다.이렇게 환상도 수준에 따라 다르게 보여주십니다. 베드로는 우리가 보기에도 징그러운 환상이니 절대 안 먹겠다고 했지만, 고넬료는 들으시는 기도를 하고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구제를 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고넬료에게는 칭찬을 넘치도록 해주시지만, 반대로 베드로에게는 차별하시는 것 같아서 기분이 안 좋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인간의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세상 사람들 생각 이상으로 수준이 높았습니다. 왜냐하면, 베드로가 지은 많은 죄가 사역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을 맡기시고,어떤 말씀을 하셔도,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알고 시작하니 못 먹겠다고 하였다가도 결국 베드로는 말씀에 복종하여 모든 것을 성령님의 구원사역으로 해석하게 되었습니다.
둘째,주께서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는 사람이 깨닫습니다.
고넬료는 비록 이방인이었지만 어떤 유대인보다도 말씀을 사모하는 열정이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를 만나 말씀을 듣기도 전인데도 베드로에게 어찌 이런 공손한 태도를 보일 수 있었을까요? 이게 너무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가 군인이라는 것을 생각해보았습니다. 군인으로 훈련받은 것이 너무 도움이 되었을 것 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군인도 보통 군인이 아니고 로마의 정예부대 백부장이니까 특수훈련이나 유격훈련 등 모든 훈련을 다 받았을 것입니다. 제가 늘 결혼주례사에서,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의 언어를 써야 한다.'고 강조하는데 그 복종이라는 말이 헬라어로'휘포타소'라는 군사용어입니다. 군인은 상관의 명령에 절대복종해야하며 명을 듣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죽을 수도 있습니다. 때문에복종하려면 무조건 깨어있어야 하고 어떤 변명도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고넬료는 정예부대의 군인이니까 특별히 복종이 몸에 뱄을 것입니다. 복종의 언어를 쓰는 것이 힘든 이유는 그 시간이 다 길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달린 그 여섯 시간이평생이구나 하는 사람이 있고여섯 시간 밖에 안 되냐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군사훈련을 못 받은 사람은 복종하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기다린다'는 영어 단어'wait'로'waiter'와 연관이 됩니다. 웨이터는 기다리는 사람으로서 시중드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백부장 아니라 천부장이라도 복종은 낮은 자리에서 시중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리 군인으로 훈련된 것이 믿음 생활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몸이 기억하는 절대복종의 훈련은 고넬료가 하나님 만나는 데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군인은 작전을 수행할 때는 오직 상관의 명령을 들어야 합니다. 세상 법 중에서 무서운 것이 군법인데 그 군법 위에 주께서 명하신 법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고넬로는 듣고자 하였고 그것이 깨닫는 비결이었습니다. 처음부터 다 알아서 머리에서부터 가슴으로 복종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오직 복종입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여러 많은 고난이 있겠지만, 군사훈련처럼 힘든 훈련을 받아보는 것도 주께서 주신 모든 명을 듣고자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셋째,외모를 보지 않아야 합니다.
본문 34절을 직역하면'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분이 아니다'가 됩니다. 이는 하나님은 겉모습만을 보고 편애하거나 배척하지 않으시는 공정하신 분이라는 것 입니다. 어떤 종족 누구라도 하나님이 원하시면 그를 구원하시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고넬료 같은 이방인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를 행하는 모든 족속의 사람들을 구원하기 원하셔서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구원은 인종이나 민족의 차별 없이 예수를 믿음으로서 누구든지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로마서 10:9)고 하신 말씀을 말로만 들었다가 실제로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실제로 사건을 경험해보아야 깨닫는다는 것입니다. 날마다 누구든지 구원을 얻는다고 말만 하는데, 부도나 가출 등의 사건을 직면해야 실제의 깨달음으로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무서워해서 떠는 자가 아닌 참 신으로 인정하고 경외하는 자라야 외모로 사람을 보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에 보면 고넬료가 하나님을 향한 경외와 의를 행하는 것은 일시적이 아니라 지속적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행하는 것은 단순히 행하는 것이 아니라 게으름의 반대 개념으로 땀 흘려 힘써 꾸준히 일하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외형적인 모습만 보고 하나님의 백성인지의 여부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과 외모와 상관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주님의 백성으로 받으시는 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외모를 보지 않는 차별 없는 진정한 성령의 깨달음입니다.
끝으로, 진정한 성령의 깨달음을 얻는 한 주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