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만남]
행10-23-29
성령의 소개를 거쳐 오늘은 성령의 만남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나라를 생각해야 하기에 가장 먼저 온라인 예배를 드렸고, 가장 마지막에 조심해서 현장 예배를 드리려고 했습니다. 판교에서만 드리기로 했으나 코로나 확진자가 점점 더 늘어나 신청자도 극소수만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도 결국 여러분 모두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한 조치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성령의 만남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1. 성령의 만남은 의외의 만남입니다.
지난주 고넬료에게서 하인 둘과 부하 한 사람이 베드로에게 말씀을 들으려고 모셔가려고 왔습니다. 그런데 그 하인들이 자기 주인인 고넬료를 칭찬하는 성령의 소개를 너무 잘하니 베드로가 감동해서 가기로 했습니다. 고넬료 집에 가보니 고넬료의 친척과 가까운 형제들이 베드로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빌립이 개인적으로 이방인 에디오피아 내시를 광야에서 전도했다면, 이는 이방인 공동체를 전도하고 이방인 선교가 시작되는 역사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어떤 형제, 친척, 친구, 이름도 없이 불렸지만 이천 년 넘게 성경에 기록되는 영광의 주인공들이 되었습니다. 이 생각지 못한 사람들을 증인의 사명으로 부르시고 쓰십니다. 끝까지 성경에 이름이 안 나왔지만, 하늘의 상이 클 것입니다. 구속사의 복음으로 같이 갈 사람은 의외의 사람입니다.
2. 사모하며 기다리는 사람이 만납니다.
드디어 사도 베드로와 이방인 백부장 고넬료가 만납니다. 간절히 기다렸을 뿐만 아니라 많은 친척과 친구들을 모아 함께 기다렸습니다. 이런 사모함이 인생에서 참 축복인 것 같습니다. 고넬료가 발 앞에 엎드렸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일어난 일로말씀에 꿇어 엎드린 것입니다. 겸손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발견함이 없이 행하는 겸손이라면, 진정한 겸손이 아니라 위선이고 위장된 교만에 불과합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그러한 위선자였습니다. 우리 인생은 죄를 모릅니다. 내 옆 사람에게 죄를 알게 해주는 것은 '네 죄를 봐라'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고난이 와도 그냥 내가 잘살아내는 것밖에는 보여줄 게 없습니다. 그래서 나에게 고난이 오는 것이 축복입니다. 내가 죄인인 것을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려고, 각자 집안에 보내셔서 죽었다 깨어나도 못할 적용을 하게끔 만들어 주셨습니다. 고넬료는 정말 세밀하게 치밀하게 배려하며 사모하며 만남을 준비했습니다. 모든 예배와 사람과의 만남도 이렇게 준비하면 주님이 만나러 오실 것 같습니다.
3. 자기주제를 아는 사람이 만납니다.
고넬료가 베드로 발 앞에 엎드려 절을 하니까 베드로가 '나는 신이 아니고나도사람이다!'라고즉시 외칩니다. 그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한계를 분명히 인정했습니다. 베드로의 모습은 마태복음의 베드로와 달리 성화되어 있는 것으로 성숙한 모습입니다. 성숙이라는 것은 자기 자신의 한계를 아는 것입니다. 부부간이나 목장에서 한계를 알면 눈물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내 자리가 어디인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자리에서 사람의 자리로 내려와야 합니다. 높은 자리는 영원히 살 자리가 아니고 내려와야 할 자리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환호의 자리가 독임에도 우리는 얼마나 박수에 목말라 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자기 주제를 잘 아는 사람들이 모이면 건강한 교회가 되기 쉽습니다. 모든 직장생활도 자기 주제를 몰라서 문제가 생기는데, 자기 주제를 잘 알면 결혼생활도 파탄이 안 납니다.
4.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법 위의 상위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실 때 원주민들의 문화인 우상숭배를 철저히 금하고 진멸하라고 신명기에서도 이야기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 들어갔다는 것은 조롱과 수치를 자초한 것을 의미했습니다. 유대인으로서의 특권을 다 내려놓고 간 것입니다. 베드로가고넬료의 초청을 아무 반감 없이 받아들이고이곳까지간것은 그 부정한 짐승을 본 환상과 관련해이를하나님의 초청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선 곳에 모든 장벽이 무너집니다. 모든 법 위에 하나님의 법은 상위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은 우리를 다 유익하게 해줍니다. 사람의 법은 그때밖에 모르지만, 믿는 자는 먼 데를 내다보아야 됩니다.
이런 성령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이분이 새 가족으로큐티 기도회의 이번 주 기도 제목에 사연을 올렸습니다. 4월 총선 전날에,어느 사거리에서제가 탄 택시에서접촉사고가 있었습니다.택시 기사 아저씨께서 길에 잘 정차된 차와 충돌했는데 얼핏 봐도 심해 보였습니다.그런데 앞 차에서 젊은 부부가 아이를 데리고 내리더니 아이 엄마가 머리 숙여 인사하시는 기사분에게 웃으면서 '저희는 괜찮아요.' 하면서 책 한 권을 선물했습니다. 바로 그 책이 큐티인이었습니다. 기사분께는 '우리들교회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우리 목사님 설교 다섯 개만 들어보세요.'말하고는바람과 같이 사라졌습니다. 요즘 보기 드문 젊은 부부라 인상적이었고, 기사님께 여쭤봐저는교회 홈페이지 안의 모든 소식을 찬찬히 다 둘러보았습니다. 그리고 마침 지난 주일에 새 신자 등록이 있어서 교회에 등록했습니다. 저는 오래도록 신앙을 떠나 살았던 사람이지만, 그 젊은 부부의 행동과 아이 엄마가 했던 이야기가 제가 말씀을 듣도록 인도해 주었습니다.주님과의 만남은 이렇게 기쁘게 주님 때문에 조그만 것 하나라도 희생을 해야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열매가 맺혔습니다. 항상 사랑하며 주님의 시선을 느끼며 삽시다. 우리가 사랑하면 사랑하는 사람의 시선도 느껴집니다. 모든 게 자발적으로 됩니다. 여러분, 이런 성령의 만남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