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작별
창세기 23장 1-3절
국어사전에 보면 이별(離別)은 ‘서로 갈리어 떨어지는 것’이고, 작별(作別)은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는 것’입니다. 이삭을 바치는 가장 큰 시험을 치르고 큰 복을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데려가십니다. 그러나 잠시 후면 다시 만날 것이기에 사라의 죽음은 아름다운 작별입니다.
아름다운 작별을 하기 위해서 구속사의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사라가 127세를 살고 헤브론(기럇아르바)에서 죽었습니다(1-3). 사라는 성경에서 죽을 때의 나이가 언급된 유일한 여성입니다. 옛 랍비들은 향년 127세에서 100은 많은 나이, 20은 아름다움, 7은 흠 없음을 뜻한다고 했습니다. 사라가 많은 나이에도 아름답고 흠이 없는 것은 구속사의 시각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영적 후사를 낳기 위해 이스마엘을 내어 쫓으라고 했던 사라가 하나님의 약속을 상기시키는 헤브론에서 죽음으로써 구속사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사라는 고난의 생애를 살았습니다. 사라는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의 딸, 즉 이복누이였습니다. 당시 근친결혼이 관행이었다 해도 이복오빠와 결혼한 사라의 삶은 수치로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결혼 이후에도 사라의 삶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기복적으로 보면 아버지가 월신을 섬기는 우상숭배자였으니 아버지 복도 없고, 두 번이나 자신을 팔아먹으려고 한 남편을 만나서 남편 복도 없습니다. 90세에 얻은 이삭은 번제로 드려지는데도 가만히 있고, 그 아들이 결혼하는 것도 못보고 죽었으니 자식 복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라가 남편 순복의 선을 행했기에 아름다운 작별을 할 수 있었습니다. 고난을 받아도 그리스도가 하신 것처럼 순복하는 것이 가장 아름답고 칭찬받을 일입니다. 아내로서 남편에게 순복함으로 자기를 단장하는 것이 최고의 단장이기에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 같이 하라고 하셨습니다(벧전2:20-3:6). 사라가 하갈을 첩으로 들이는 실수를 했지만 아브라함이 갈대아우르를 떠날 때나, 조카 롯을 데려올 때나, 자신을 팔아넘기려 할 때도 순복했습니다. 그러다 결정적으로 이스마엘을 내어 쫓으라는 한 마디를 했을 때 아브라함도 그동안의 선한 일을 보고(벧전2:12) 사라의 말을 들었습니다. 남편 순복의 선을 행함으로써 영적 후사를 낳는 열국의 어미가 된 것입니다.
최고의 선한 일은 남편을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아내로서 떠나지 말아야 할 1순위는 남편입니다. 하갈은 아들 이스마엘이 능력이 있으니까 아브라함을 떠나고 애굽 여인과 결혼을 시켰습니다. 그렇게 세상 성공을 가져다준다고 좋은 부모가 아닙니다. 치졸하고 이기적인 남편이라도, 사라처럼 떠나지 않고 순복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최고의 자녀 교육이고 최고의 부모입니다.
남편 순복을 행할 때 두려움을 극복하고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사라가 이스마엘을 내어 쫓으라고 한 것은 가장 큰 믿음의 결정이었습니다. 자신이 하갈을 들여서 생긴 결과이지만 구원의 지혜로 단호하게 쫓아냈습니다. 아브라함과 함께 수많은 일을 겪고 그 남편에게 순복하면서 어떤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않는(벧전3:6) 담대함이 사라에게 생겼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행복하게 살아서가 아니라 힘든 인생을 함께 했다는 것만으로도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전리품을 나눠주는 최고의 부부가 되었습니다. 내가 순복하는 것이 십자가 짐 같은 고난이라도 나의 순복으로 도를 순종치 않는 사람이 돌아온다면 두려움을 이기고 담대할 수 있습니다. 끝까지 구원을 위해 순복하고 이 땅을 떠날 때, 가장 빛나는 졸업장을 받고 아름다운 작별을 할 수 있습니다.
“사라가 일백 이십 칠세를 살았으니 이것이 곧 사라의 향년이라” 창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