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한 예배
창세기 22장 2-8절
‘미신’은 나는 변하지 않고 신을 변화시켜서 원하는 것을 얻는 것입니다. 신을 변화시키려니 그 간절함과 정성이 대단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간절한 예배를 받기 원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이 아닌 내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미신처럼 믿기 때문에 겉으로는 간절해 보여도 아무 영향력이 없는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자식을 번제로 드릴 때 간절한 예배가 드려집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러 가면서(2) 경배(worship-예배)하고 돌아오리라고 합니다(5). 예배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것이기에 ‘가라사대’ 말씀에 순종해서 자식을 번제로 드리는 것이 진정한 예배입니다. 번제는 배를 갈라서 피를 흘리고 태워서 드리는 제사입니다. 사랑하는 자식을 피 흘림과 고통이 있는 번제로 드리려니 어찌 간절함이 없겠습니까. 잘 되도 못 되도 안타까운 자식 때문에 간절한 예배가 드려지고, 나의 예배가 간절해지도록 자식이 수고를 합니다. 인생의 목적이던 자식을 내려놓음으로써 예배가 인생의 목적이 되고 하나님이 받으시는 간절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간절한 예배는 정성스럽게 준비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 부지런히 떠날 준비를 합니다. 나이 많은 아브라함이 직접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며 정성스럽게 준비하고, 예배를 사모함으로 삼일이 걸려서 하나님의 지시하신 곳으로 갑니다(3-4). 자식의 시험으로 힘이 들수록 사모함과 정성으로 예배를 준비합니다. 헌금도 정성스럽게 준비하고, 먼 거리도 마다하지 않고 모여서 자원함으로 헌신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나무를 쪼개듯이 나의 시간과 재물과 마음과 뜻을 쪼개어 예배를 준비해야 합니다. 구약의 아브라함과 다윗이 예배를 통해 복을 받은 것처럼 정성스럽게 준비하고 예배드리러 오는 길이 복이 있는 시온의 대로(시84:5)입니다.
간절한 예배에는 신중함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 떠난 것처럼 예배와 기도와 묵상은 즉시 서둘러서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나 깨달은 것을 적용하고 실천할 때는 신중하게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합니다. 20시간 거리인 모리아산을 삼일 길에 가면서, 눈을 들어 그곳을 바라보며(4) 자식을 내려놓는 적용이 어떤 것인지 수많은 선택과 갈등 속에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합니다. 미신으로 예배를 드리면 자식의 성공과 실패에 따라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게 됩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뜻을 물으며 간절한 예배가 생활화 될 때 자식이 어떠하든지 하나님이 책임지실 것을 믿고 말씀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간절한 예배를 위해 방해세력을 분별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사환과 함께 가지 않고 기다리게 합니다. 이삭을 번제로 드리는 결정적일 때 막을 수 있기 때문에 방해세력을 분별하고 끊어냅니다. 번제할 어린양이 어디 있느냐고 묻는 이삭의 물음에 창자가 끊어지지만, 구원을 위한 담대함으로 동정심도 정도 끊어냅니다(5-6). 스스로 불태워질 나무를 이삭에게 지우고 가는 것이 잔인해 보여도(7) 자식이 하나님께 드려진다면, 자식이 예수님을 믿는 길이라면 아프고 무섭고 힘들어도 순종해야 합니다. 무슨 일을 당하든지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실 것을 믿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8). 하나님께서 친히 제물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나와 내 자식을 사랑하십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를 방치하지 않으시고 죽게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예배를 방해하는 낙심과 열심과 인본주의를 끊어내고, 고난을 통해서라도 자식이 구원받기만을 바라는 것이 간절한 예배의 결론입니다.
“아브라함이 가로되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창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