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마음]
진재혁 목사
누가복음 15:20-24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시는 눈이 어떨까요? 우리를 보시는 하나님의 눈과 아버지의 마음을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그 마음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잘 아는 탕자의 비유입니다. 돌아온 탕자를 향한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보여주십니다. 이 아버지는 어떤 아버지입니까?
첫째, 기다리시는 아버지( A waiting Father)입니다.
20절에 보면 성경은 돌아오는 아들이 아버지를 보고 달려가라고 말하고 있지 않고, 오히려 아버지가 아들을 먼저 보았다고 합니다. 언제, 어디서 올 줄 모르는 아버지가 아들을 먼저 보고 달려갈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집 떠난 탕자를 보며 그곳을 향해서 온종일 돌아올 그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다리는 아버지의 눈에는 그 아들을 향해 바라보고 찾고 있었기에, 피골이 상접한 모습으로 가까이 있어도 알아보기 힘든 탕자의 모습임에도 아버지는 볼 수 있었고 측은히 여겨 달려갈 수 있었습니다. 바로 우리를 향해서 우리가 어떤 상태에 있든 어떤 모습이든, 어디에 있든지, 내가 여기 있다고, 기다리시고 찾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을 성경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둘째, 우리를 향해 달려오시는 아버지(The running Father)입니다.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춥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보는 순간 그 본 자리에서 바로 일어나자마자 아들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합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향해 걸어오는 속도보다 아버지가 아들을 향해 뛰어가는 속도가 훨씬 더 빠릅니다. 그의 눈에는 다른 것들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바로 그 아들을 향해서 뛰어오고 있는 그 아버지의 눈에 우리가 있고, 우리를 향해 그렇게 달려오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셋째, 우리를 회복시키시는 아버지입니다.
탕자는 아버지를 보는 순간 아마 그는 무릎을 꿇고 아버지를 향해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를 향해 죄를 지었으니.'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입을 열어서 아버지의 아자를 하기도 전에 아버지의 입술이 그의 입을 막아버립니다. 그 아버지의 마음에는 아들의 어떤 말도 관심이 없습니다. 어떤 모습도 어떤 상태도 어떤 이유도 어떤 질문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버지 앞에 무릎 꿇는 아들을 향해 아버지는 종들을 불러 가장 좋은 옷을 가져오라고 합니다. 아들을 상징하는 가락지를 끼워줍니다. 불편한 돼지를 치느라 상처 입고 더러운 그의 발에 신을 신겨줍니다.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서 잔치를 벌입니다. 탕자는 잔치의 중앙 아버지 옆에 앉아 함께 온 모든 사람들 앞에서 내 아들이 죽었다 살았고 잃었다 찾았다고 내 아들이라고 공동체 가운데서 회복시켜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25절에 첫째 아들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형은 동생이 살아서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노하여 들어가기를 꺼렸습니다. 이 큰아들은 여러 해 명을 어김이 없었던 착한 아들이자 열심히 봉사하고 수고하고 큐티 안 빼먹고 제대로 신앙생활 하는 것 같이 보였던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큰아들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아버지의 마음, 즉 동생을 측은히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을 놓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버지는 탕자와 마찬가지로 집 안의 탕자 큰아들에게도 측은한 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나와 세상을 향한 그 한 영혼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오늘 집 밖에 나간 탕자와 집 안에 있는 탕자를 향한 그 마음을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이 마음이 아버지가 우리를 향해 달려오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자기의 모든 것들을 다 내려놓으시고, 십자가에 피 흘리시게 합니다. 그 마음이 우리를 회복시키는 집으로 오라고 부르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보게 하며, 그 마음이 주님 없이 이 세상 가운데 소망이 없는 그 영혼들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나를 향해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마음, 오늘 그 마음 앞에 나아가는 여러분과 제가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