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설교]
사도행전 2장 22-36절
사도행전 1장을 보면 교회의 사명을 위하여 성령을 받으리라 하시고 사람이 중요하기에 성령행전이라고 하지 않고 사도행전이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했습니다. 2장은 오순절 성령강림을 통해 방언이 임했습니다. 제가 삼 년 전 암을 말씀드릴 때가 바로 사도행전 2장 성령 충만 제목으로 베드로가 설교할 때였습니다. 오늘은 성령의 설교에 대해서 다섯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잘 들리게 합니다.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는 그의 첫 공식적인 설교인데 하나님의 약속과 성취, 그리스도의 죽음, 부활 ,승천을 다루면서 어떻게 유대인들이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는지 이 말을 들으라고 합니다. 성령의 설교는 오직 예수님에 대한 것으로 성령 충만을 받으면 예수님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습니다. 오늘은 이스라엘 사람에게 들으라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고 성경에 박식한 이스라엘이, 성령의 역사에는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13절에 보면 성령 충만은 조롱을 받는 것인데, 조롱을 받아도 베드로처럼 성령의 설교를 하게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잘 살게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삶을 통해서 이 주제를 설명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처럼 사는 것보다 더 잘 사는 삶이란 없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라고 시작했는데 성령의 설교는 상대방이 아는 것으로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멸시받는 나사렛 동네에서 목수의 아들로 자라셨지만 하나님께서 예수님으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베풀게 하셨다고 증언을 하셨습니다.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이라는 세 단어로 결합한 이 표현은 예수님의 사역에만 쓰였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하나님에 대한 예수님의 증언이었고 또한 예수님에 대한 하나님의 증언이었습니다. 이것을 효과적으로 베드로가 성령으로 또 증언했습니다. 권능의 본질은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는 것이며 기사의 효력은 놀라움을 계속 만들어내는 것이고 표적의 목적은 보이는 것보다는 영적 진리에 있습니다. 저 또한 나사렛 예수처럼 무시 받을 조건을 가졌지만, 심판처럼 온 암 사건이 구원의 권세가 되어 그리스도의 신비를 보이게 해달라고 기도를 요청했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외적인 형통보다 내적인 깨달음이 더욱 중요합니다. 암이 나아서 기적이라기보다 암을 잘 해석하여 영적 진리인 말씀의 표적을 보여주셨습니다.
셋째, 잘 죽게 합니다.
예수님처럼 권능과 기사와 표적으로 잘 산다고 하나님의 능력을 세상이 인정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근본 하나님과 본체이신 성자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에 모든 것을 아시고도 하나님의 정하신 뜻대로 돌아가셨습니다. 베드로는 이 일을 성령께서 도와주신다고 성령의 설교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면서도 죽어야 할 일이 많은데 잘 사는 것은 잘 죽는 것입니다. 죽은 자도 살리는 능력을 가진 예수님이 세상을 위해 하신 일은 십자가를 지시는 것입니다. 진정한 권능은 자기의 대단함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고 인내하고 희생하며 죽어지는 것입니다. 무능한 부모, 완악한 남편, 권위적 상사에게 잘 죽으면 다른 사람이 그 죽는 것을 보고 거기에서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보니까 그것이 가장 잘 죽고 잘 사는 길입니다. 성령이 임하지 않으면 못 죽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죽어주신 성령의 설교가 날마다 필요합니다. 자신을 깨닫는 것이 가장 죽는 길인 것 같습니다. 압살롬이 반역했을 때 다윗이 그저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는데, 저는 그것이 최고의 기도라는 것을 항암을 하면서 체험했습니다.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잘 듣고, 잘 살고, 잘 죽는 이유는 오직 예수님 때문입니다.
넷째, 다시 살아나게 하십니다.
이 땅에서 가장 큰 고통은 사망입니다. 사망의 덫에서 풀릴 사람은 아무도 없고 풀어 살리실 분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사망에 대한 승리 선언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부활을 다윗의 부활 신앙으로 연결합니다. 다윗의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다.를 인용하면서 이길 수도 질 수도 없는 아들과의 전쟁에서 항상 자기 앞에 계신 주를 보았다고 쓴 것입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 자체가 상급임을 고백하는 다시 살아나는 고백입니다. 베드로 역시 부족해도 때마다 주를 바라보았습니다. 믿음의 주,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항상 바라보면 다시 살아나게 될 줄 믿습니다. 27절에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에서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봤습니다. 베드로가 목격한 부활의 주인은 다윗이 미리 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똑같았습니다. 미리 보는 죽음과 약속과 부활을 위해 즉 미리 깨달은 성경으로 이 모든 것을 깨닫고 설교하고 전하는 것은 얼마나 성령의 설교인지 모릅니다. 다윗이 알았고 베드로가 알았고 내가 알아서 내 속의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시고 우리가 다 이 일의 증인입니다. 내 모든 사건도 성경에 있었고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것입니다. 해 아래 새것은 없습니다. 이것을 미리 봐야 하는 것이 성령의 설교 핵심입니다.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은 결국 다시 사는 부활입니다. 우리도 그렇다면 다시 살아나서 증인이 되어 예수님이 나를 위해 돌아가시고 사흘 만에 살아나시고 구원자가 되셨다고 외쳐야 합니다. 일흔두 살 되신 목자였고 지금은 성도님이신 집사님이 이혼하고 오셨는데 노숙자처럼 있는 남편과 14년 만에 다시 합쳤다고 합니다. 바로 이것이 말씀이 잘 들리니까 잘 사셨고 잘 죽으시더니 다시 살아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주님은 어떤 곳에서도 내 앞에 내 옆에 계십니다.
다섯째, 높아지게 합니다.
베드로는 시편 110편 1절을 인용해서 부활하신 주님을 하나님이 구세주로 통치자로 오른손으로 높이셨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삶을 삼위 하나님이신 성부, 성자, 성령님이 찬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강림과 성령설교의 핵심입니다. 다윗이 시편 110편을 인생 후반부에 썼는데 다윗도 갖은 고난을 다 겪고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알아본 것처럼, 우리도 죽어지고 십자가를 겪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야가 될 수 없습니다. 내가 메시아를 알아보면 생명의 역사가 시작되고, 보고 듣는 자마다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저절로 이런 나를 높이십니다. 우리 인생도 육이 무너지고 영이 세워지는 것은 인생 최고의 축복이고 높아짐입니다. 우리 모두 성령 받아서 성령의 말씀만 전하게 될 때 우리 말과 삶에 군더더기가 없어지고 집, 교회, 나라에 성령의 역사가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