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큰 시험
창세기 22장 1-3절
학창시절 교과서를 외울 정도로 공부를 열심히 해서 시험을 잘보고 장학금까지 받은 집사님이 있습니다. 졸업 후 입사시험도 잘 봐서 좋은 회사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살다보니 자기 힘으로 해결이 안 되는 시험을 만났습니다. 바로 자식 시험입니다. 가장 큰 시험인 자식 시험을 통해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 우리들교회에 왔습니다.
수많은 시험 후에 가장 큰 시험이 옵니다. 아브라함이 수많은 사건을 겪고 나서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십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시고 지금까지 인도하시고 보호하신 ‘그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부르십니다(1). 기근을 피해 세상으로 가고 거짓말과 치졸함을 보였던 아브라함이지만 실패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더 굳게 붙잡고 실수할 때마다 하나님을 의지해서 일어났습니다. 아브라함 자신은 점점 작아지고 하나님만 커지는 믿음을 갖게 되었기에 그의 믿음을 자랑하시려고 감당할 만한 시험을 허락하십니다. 실수하고 거짓말하는 인생이라도 나의 모든 삶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낼 때 가장 큰 시험으로 더 크신 하나님을 증거하게 하십니다.
가장 큰 시험을 당할 때 준비된 대답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힘든 명령을 주시려고 ‘아브라함아’ 친근하게 부르십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니 아브라함은 즉시 ‘내가 여기 있나이다’ 대답합니다(1). 하나님의 부르심을 피하고 눈도 못 마주치는 모습이 아니라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소서. 나를 써주소서’ 하고 대답합니다.
독자 아들을 죽이라는 가장 큰 시험을 주십니다. 아브라함은 어떤 시험을 주실 지도 모르고 ‘내가 여기 있나이다’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전 생애를 통해 가장 어렵고 끔찍한 시험이 왔습니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십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시기에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라고 하시며 하나님께서도 아브라함을 그렇게 사랑하신다고, 목숨보다 더 사랑한다고 강조하십니다(2). 독자 이삭을 드리는 시험을 통해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의 십자가를 예표하신 것입니다. 이삭을 데리고 가서 번제로 드리라는 것은 명령이라기보다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도록 권고하신 것입니다. 십자가는 홀로 지고 가는 것이기에 사라와 의논할 수도 없고 아브라함 혼자 감당해야 할 시험입니다. 그냥 드리는 것이 아니라 온 몸을 자르고 불에 태우는 번제로, 상상할 수 없는 고통으로 자식의 시험을 치르게 하십니다. 인간의 이해와 상식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명령에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곳으로 갑니다. 성실하고 정직한 태도로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완전히 태워서 드릴 의지로 번제에 쓸 나무를 가지고 떠납니다(3). 죽은 자와 같았던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데려가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자녀를 내려놓는 것이 너무 큰 아픔이어도 하나님의 것이기에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리지 않고 세상 성공의 제물로 바친다면 부모도 자녀도 지옥을 살게 됩니다. 자식이 상급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상급이고 위로임을 전 세계에 보여줄 사명이 아브라함에게 있습니다.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자녀를 데리고 하나님께서 친히 선별해주신 모리아산으로, 장차 예루살렘 성전이 들어서고 골고다 언덕이 세워질 곳으로 가야 합니다. 가장 귀한 자녀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그곳이 성전이 되고, 내가 성전이 되고, 집안이 성전이 됩니다. 이 땅에서 어떤 역할을 하든지 하나님만이 상급이고 위로인 것을 나타낼 때 나의 직업과 직분과 모든 것이 사명이 되어 열매 맺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창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