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선지자]
열왕기상 22:13-28
이번 주는 광복절이 있는 주일입니다. 지난주 삼 년간 전쟁이 없다가 사탄의 전략에 휘말려 안 해도 될 전쟁을 일으키려는 아합을 보았습니다.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모두 믿는데도 아합의 드러나지 않는 야망과 악을 보지 못하며 사백 명의 선지자도 전쟁하라고 합니다. 속지 않으시는 하나님은 아합의 악을 아시기에 막으시는데, 누가 이 대단하고 무서운 아합을 위해서 전쟁을 막겠습니까? 오늘은 참 선지자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첫째, 여호와의 말씀만 전합니다.
아합이 보낸 사신은 무조건 다른 선지자처럼 길하게 해달라고 미가야에게 압력을 넣었습니다. 이 사신은 길르앗 라못을 탈환함으로 정치, 경제, 여호사밧과의 군사동맹의 이익 등을 얻을 수 있으니 얼마나 길하냐 하면서 지지하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아무리 좋아도 내일 일을 모르는데 많은 사람은 너무도 길한 것을 사모합니다. 850개의 바알 신을 섬기는 것은 종류가 다 달라도 바알이 소유라는 뜻이 있기에 끝없이 결국 돈 신을 사모한다는 것입니다. 한 절에 여호와가 두 번이나 나오면서 미가야는 여호와가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만 내가 말하리라고 합니다. 흉한 일도 길한 일도 아닌 여호와의 말씀만 전하겠다고 합니다. 말씀에 자기 생각을 종속시켜야 하는데, 말씀이 자기 생각에 종속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생각에 왕에게 길한 예언을 해달라고 했지만, 그 길한 예언은 도리어 아합을 죽음으로 이르는 흉한 예언이 됩니다. 내 생각을 버리고 항상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은 가장 확실한 길이지만, 가장 쉽고도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지식적인 말씀이 아니라 끊임없이 구원의 관점으로 내 인생과 우리 가정과 회사와 나라를 해석하는 것이 우리들교회의 묵상입니다. 아합이 선지자들의 예언을 따른 것이 단순히 그의 미련함에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자기애적인 범죄 성향에서 자발적으로 나온 악임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아합은 아람과 전쟁에서 이기고 난 후 자신이 능력이 있어서 이겼다고 착각하다가 이게 사실이 되어 굳어져 버렸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악한 의도라도 죽음의 길을 마지막까지 피할 수 있도록 또 듣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을 절마다 보게 됩니다.
둘째, 끝까지 사랑의 흉한 예언을 해야 합니다.
양들이 목자 없는 양 같이 흩어졌는데 이스라엘이 평안히 돌아온다는 것은 아합이 전사한다는 뜻이고 도리어 그 죽음으로 인해서 백성들이 평안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방인과의 전쟁에서 주님은 아합이 예뻐서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위상을 보여주시기 위해 계속 승리를 안겨주셨는데, 어리석은 아합이 그것을 자기 것으로 착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더 보실 수 없어서 나라는 지켜주시되 아합을 폐할 수밖에 없는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않는 주인이 있으니 그것이 괴로움입니다. 남편에게 숨지기 직전에 제가 복음을 전함으로 가장 사랑의 흉한 예언을 해줌으로 그것이 그 사람에게 가장 길한 것이 되게 하셨습니다. 마지막이라도 죽기 몇 시간 전이라도 이렇게 들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이 본문을 보면 하나님의 말이라도 안 듣는 아합 왕이 있습니다. 엘리야, 하나님의 선지자, 미가야, 여호사밧 등 하나님의 사람이 계속 선물로 주어졌고 그 한 사람이 내 옆에서 850대 1로 이겼는데도 아합은 일시적으로는 인정을 한 적이 있지만, 유지가 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복음이 흉한 예언입니다.
셋째, 거짓말하는 영을 분별합니다.
누가 나가서 아합을 죽게 할꼬를 하나님께서 아합을 죽게 하려는 의도로 오해될 수 있지만, 하나님은 그런 의도를 가지고 거짓말도 인간을 시험하지도 않으십니다. 거짓에 넘어갈 아합의 마음 상태를 이미 아시고 결과론적 입장에서 이같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기에 끝까지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거짓의 영이 악인을 멸망시키는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오늘 이야기를 합니다. 결국은 아무리 하나님이 하시려 해도 아합 자신이 사단에게 넘어간 것입니다. 사람이 구원받지 않고 죽는 것은 결국 낮고 천한 육신과 이 세상이 다인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하는 자, 꼬이는 자를 어김없이 거기에 합당한 자로 구성을 해주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연단도 하시고 채찍질도 하시면서 돌아오라고 하는데,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는 하나님께 잊힌 자라고 합니다. 아합이 전쟁 없이 삼 년 동안 있다가 죽으니 이 땅에서 편안한 게 좋은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슴 아파서 이 사람 저 사람 계속 보내시는 것입니다. 너무 사랑하니까 욕먹고 죽임을 당하면서도 보내십니다. 이 세상 모든 인류, 하나님은 일본도 사랑하시고 북한도 사랑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심장을 가지고 모든 것을 해석하셔야 합니다.
넷째, 말씀이 이루어질 때까지 고생의 떡과 물을 각오해야 합니다.
시드기야는 자신과 다른 예언을 하는 미가야에 대해 분노하면서 뺨을 내리쳤습니다. 그런데 미가야는 그 모욕을 참으면서 계속 여호와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밝히 드러내는 일에만 전념하는 미가야와 거짓말을 하는 시드기야의 모습이 대조됩니다. 아합은 흉한 예언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미가야 선지자를 옥에 가두기로 결정했습니다. 마지막에 복음 제시할 때도 거절하며 전하는 사람을 이렇게 감옥에 가두는 사람도 있습니다. 결국 참선지자는 말씀이 이루어질 때까지 감옥에 갇혀서 고생의 떡과 고생의 물을 먹어야 합니다. 억지로가 아니라 주님 때문에 절제와 배려와 참음이 저절로 될 때까지 사랑하면 이 모든 것이 자발적인 마음이 들게 됩니다. 다 각자 감옥에 갇혀 있어도 말씀 때문에 갇혀 있으면 하나님이 일하시니 기쁘게 고생의 떡과 물을 먹어야 합니다. 미가야는 자신이 증거한 예언의 말씀이 맞는지 틀리는지 지켜보라고 모든 사람들이 이 말을 다 들으라고 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에 역행한 아합은 평안히 돌아오겠다는 자신의 의지와 소망과는 상관없이 주검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오늘 참선지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번 주 큐티페스티벌에 초등학교 다니는 두 자매가 참석했는데, 부모님이 이혼 판결을 앞두고 있답니다. 아빠는 교회에 안 나오고 우리들교회에 다니는 엄마에게 등록비를 받으라고 엄마는 아빠에게 받아서 가라고 했답니다. 아빠는 등록비를 주면서 다시 엄마에게 얘기해 보고 안 주면 그 돈을 쓰라고 하셨답니다. 그런데 자기들의 용돈으로 두 자매가 수련회비를 내고, 엄마가 수련회비를 주셨다면서 아빠가 주신 돈을 도로 드렸다고 합니다. 가족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적용하는 이 아이들은 참 선지자 미가야가 맞습니다. 보잘것없는 성도로서의 삶을 목숨을 걸고 여전한 방식으로 사는 것이 참 선지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