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
열왕기상21:1~16
아합은 어떤 사람보다도 모든 것을 허락받은 환경입니다. 그러나 주제를 모르고, 자신이 하나님의 대리자로 하나님인 줄 알고 여호와께서 금하신 것을 계속 넘보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나봇의 포도원이 바로 금하신 것인데, 이 금하신 것에 반응하는 여러 인간군상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첫째, 탐내는 아합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은 하나님이 뿌려주시는 싹트는 열매들이라는 의미로 비옥한 약속의 땅이었습니다. 아합은 나봇에게 이 포도원을 달라고 합니다. 아람과 두 번의 전쟁에 승리하고 삼 년 동안 전쟁이 없으니 승승장구해 보입니다. 그러나 심판의 경고에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 없이 악인의 형통으로 치닫게 되니까, 폭정을 일삼으며 사치와 자기과시로 모든 것을 일부러 잊고자 합니다. 외부적으로 그릇된 긍휼로 벤하닷을 살려준 아합이 이번에는 내부적으로 악을 행하게 됩니다. 아합은 사마리아궁 외에 이스르엘에 상아궁이라는 별궁을 지어 거주했는데 거기 가까이 있던 나봇의 포도원이 탐이 났습니다. 지금 심판이 코앞에 와있는데 별장 타령, 정원 타령하고 있습니다. 톨스토이의 [인생론]에는 한 나그네가 늑대를 만나 도망가다가 우물에 빠졌으나 다행히 삐죽 튀어나온 나뭇가지에 걸렸는데, 거기 꿀이 있어 따먹으며 보니까 나무뿌리 쪽에서 생쥐 한 마리가 그것을 갉아먹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인생은 나무 밑동이 잘린 것과 같습니다. 시드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그러니 누구의 책망이라도 잘 받아들이고 고치려고 하는 것이 심판을 예비하는 모습입니다. 이렇게 교회 오고, 목장 오고, 말씀 묵상하는 것이 심판을 예비하는 최고의 비결입니다.
둘째, 거절하는 나봇
나봇은 아합왕이 그의 땅을 탐내자, 내 조상의 유산이고, 하나님이 금하신다.라고 아주 심플하게 말씀에 따라서 거절합니다. 고대 근동 사회에서 평민이 왕의 요구를 거절한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아야 할 일입니다. 나봇이 이 거래를 받아들인다면 대단한 유익을 누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봇은 이 좋은 제안을 거절합니다. 여호와께서 금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정복전쟁 때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전쟁을 하나님의 구원하심과 인도하심을 통해 이기고 그 땅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땅은 허락하신 약속의 땅, 약속의 기업이라 불렸고, 그 궁극적인 소유권은 땅을 차지하게 하신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그러므로 양도와 매도, 착취가 금지되었기에 나봇이 거절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는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포도원을 애굽의 삶과 산업을 상징하는 채소밭으로 바꾸려는 아합의 행동은 하나님을 전혀 신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또, 이스라엘 왕인 아합의 사명은 백성들을 하나님의 뜻대로 이끄는 것인데 아합은 직분에 충실하지 못하고 죄의 유혹에 빠져 자기 권세를 가지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다하고자 했습니다. 아람과의 전쟁이 끝났다면, 전쟁을 거친 백성들을 추스르고 복구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이길 수 없는 전쟁을 하나님께서 이기게 해주셨는데 상아궁을 짓는 것이 말이 안 됩니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니까 자기밖에 없고, 자기에게 명령하는 사람이 없으니 저절로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 탈취하는 이세벨
아합이 영적이지 못해서 회피하고 드러누우면 이세벨이 짠하고 해결사로 등장합니다. 이세벨이 늘 해결해주니까 아합은 자기와 직면하지 않습니다. 18장에서 갈멜산에서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옴을 보고 여호와가 참된 하나님이심을 알았는데 이세벨이 엘리야를 죽이겠다는 한마디에 와르르 무너졌습니다. 나봇의 포도원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마음을 접었는데 또다시 이세벨의 등장으로 최악의 상황이 됩니다. 이세벨은 거절을 허락으로 바꿀 수 있는 계략과 권세가 있습니다. 이것이 비극입니다. 아합은 나봇의 말을 가감하면서 이세벨에게 거짓으로 일러바칩니다. 이에 이세벨은 율법대로 격식을 갖추기 위해 불량자 거짓 증인을 세우고, 누구나 볼 수 있도록 높이 앉혀서 정공법으로 나봇을 죽이고 포도원을 빼앗아주겠다고 합니다. 이세벨이 이방여인임에도 자기의 목표를 위해서 이렇게 철저히 성경을 이용합니다.
넷째, 동조하는 장로와 귀족
장로 귀족 중 한 사람도 반대하지 않고 이세벨이 시키는 대로 나봇을 죽인 후, 아합이 아닌 이세벨에게 보고합니다. 나봇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 막강한 권력을 가진 아합왕의 제안까지 거절한 경건한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성읍의 지도자들과 이웃들은 이세벨에게 복종하여 나봇을 죽이는 데 다 가담했습니다. 나봇만이 아니라 그 식구들까지 다 몰살시켰습니다. 그러니 이세벨이 얼마나 엄청난 해결사입니까? 그러나 훗날 이 자리에서 그 죄 때문에 아합의 자녀들 70명이 처참한 심판을 받게 됩니다. 현재의 고난은 잠깐이요, 장차 올 영광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오래전, 제가 이 본문을 큐티할 때의 적용입니다. 시집살이와 병원 살이 총 십 이 년 만에 처음으로 살림집을 구해 이사했습니다. 이젠 나에게도 자유가 생겼다고 했는데 남편이 어디 외출할 생각 말고 언제나 집에서 기다리면서 아이들을 맞으라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나는 언제까지 자유가 없어야 하는가 생각했지만, 그날 큐티를 하며 남편의 구원이 땅이고 기업이기 때문에 구원을 위해 남편의 명령을 듣는 것이 죽어지는 순교구나 하면서 적용하기로 했습니다. 남편에게 순종하며 집에서 아이들 밥해주고 맞이하는 적용을 하다 보니 결국 남편도 구원되고, 이 적용이 세계적인 잡지에 실려 전 세계인에게 읽혔습니다.
내게 유익이 많아도 하나님이 팔지 말라고 금하시니 심플하게 적용하는 것이 순교하는 일입니다. 나봇과 그의 가정은 죽임당한 어린양처럼 이 땅에서 설명할 길이 없지만, 하나님은 너무너무 귀하게 나봇의 포도원이라고 찬란하게 기록해주셨습니다. 그것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