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사로잡으라]
열왕기상 20장 1-21절
칠천 배의 응답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단을 사로잡아야 합니다.사단은 사로잡지 않으면 사로잡힙니다. 날마다 눈을 뜨나 감으나 무조건 사단을 사로잡으려면,
첫째, 작은 유혹에도 경계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왕 아합의 계속되는 우상숭배에도 하나님은 하나님이 여호와인 줄 알게 하시려고 아람 왕 벤하닷이 쳐들어오게 하셨습니다. 벤하닷이 은금과 처들과 자녀들이 내것이라고 협박을 합니다. 이 나라의 경제력도 왕권도 인재도 뺏겠다는 것입니다. 아합에게 이런 요구가 온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는데 아합이 너무나 말을 안 듣고 믿는 엘리야를 너무 우습게 여기니까 다 빼앗아 가는 더 강한 세상 세력을 붙이셨습니다. 이런 요구를 듣는다면 우연은 없는 것을 알고 내가 왜 이런 요구를 받는지 자기 자신부터 살펴야 합니다. 아합은 하나님의 말씀은 목을 곧게 하여 따르지 않으면서 벤하닷의 잔혹한 명령에는 내 주 왕이여 하면서 너무도 쉽게 타협하고 굴복하고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렇게 은금과 아내와 자녀들을 준다고 하면서 슬쩍 넘어가려고 했는데 처음부터 아합과 이스라엘의 모든 것을 빼앗아가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쳐들어온 벤하닷은 아합이 겁을 먹고 있다고 판단이 되자 이제는 신하들의 집까지 확대하겠다며 마음 놓고 북이스라엘을 요리하겠다는 본심을 드러냈습니다. 작은 것을 양보하면 큰 것까지 단계별로 요구하는 것이 사단의 속성입니다. 유혹은 단번에 유혹이라고 느낄 만큼 큰 것으로 다가오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작은 것 한 번만 양보하라는 사단의 달콤한 속삭임에 때로는 알지 못하여 때로는 알면서도 단호하게 대처하는 게 싫고 귀찮아서 하나씩 하나씩 양보한 결과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일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쯤이야 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유혹이 시작된 것입니다.
둘째, 사단은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벤하닷이 쳐들어온 것은 이스라엘의 우상숭배 범죄에 대한 결과입니다. 아합은 벤하닷의 요구가 감당할 수 없을 지경이 되니 책임을 회피하고 이제는 신하들과 백성들에게 결정을 미루면서 무책임함을 보여줍니다. 모든 장로와 백성들은 조금도 타협하지 말고 결사 항전하라고 합니다. 주변 나라와 동맹을 맺게 되면 당연히 우상숭배와 이방의 관습을 따르게 되어 하나님 나라의 의무 중 가장 대표적인 이방인의 관습을 따르지 말 것을 준수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래서 이 일은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아합도 깨달아야 되는 것입니다. 관용과 화합의 정신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믿음을 지키려니 힘든 시대를 살 수밖에 없습니다. 인내와 오래 참음이 결론입니다. 구원을 위해 참는 것은 타협하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동기를 생각하고 왜 이 일이 일어났나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장로와 백성들의 이런 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합은 제 마음대로 절충안을 제시합니다. 오직 벤하닷의 반감을 사지 않고 전쟁을 피해보려고 애쓰는 너무나도 비참한 치졸한 지도자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면 제대로 된 결정을 할 수 없습니다. 중재를 했지만 효과가 없자 아합은 더 이상 협상의 여지가 없음을 깨닫고 장로들의 말을 들은 효과가 있는지 갑자기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안다며 처음으로 소리를 지릅니다.
셋째, 하나님이 여호와인 줄 알아야 합니다.
아합이 비굴하게 있다가 처음으로 소리 한 번 지른지 한 구절이 지나지 않아서 금세 선지자가 도와주려고 왔습니다. 이스라엘이 제사장 나라로 세워져야 하므로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이 급히 개입하십니다. 이게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너는 내가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시는 말씀 가운데는 아람과 북이스라엘 간의 전쟁을 보는 하나님의 시각이 나타나는데 이 전쟁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전능하심을 드러내 보이겠노라 하시는 전적인 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여호와인 줄 알게 하기 위해 전쟁이 오고 가는 것입니다. 이혼해야 하고 죽어야 하고 떠나야 한다는 시각이 있을 때 이 사건을 내가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 하는 사건이라고 해석해주는 무명의 선지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악인의 형통은 의인을 유익하게 하기 위한 수단이며 역할이 끝나면 용도 폐기됩니다. 악인이 모아 쌓아서 부유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에게 주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내 옆의 원수들이 형통한 이유는 우리의 죄가 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악인이 제아무리 교묘하게 악행을 저질러도 악인은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스스로 하나님의 섭리를 돕습니다. 이세벨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지금 내 옆에서 잘 살고 못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하나님이 여호와인 줄 아는 것이 가장 사단을 사로잡는 비결입니다.
넷째, 사단은 화친하러 나올지라도 싸우러 나올지라도 무조건 사로잡아야 합니다.
아합이 너무 급해지니까 선지자를 통해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묻는 상황이 되어서야 아합이 말씀을 듣습니다. 아합과 군사들은 말씀을 듣고 나갔으니 최고의 전술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날마다 큐티하고 공동체에 물어보는 것은 최선의 결정을 가져오는 구조입니다. 목자가 형편없고 말씀도 못 깨닫는다고 할지라도 여러분이 목장에 가서 물어보는 그 태도에 하나님은 기름을 부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물어본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어보고 나가니 그 강한 아람에게 틈이 있었습니다. 적은 수의 북이스라엘 군사가 십만이 넘는 군사를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동행하셨기 때문입니다. 불순종하는 사람은 사단을 사로잡지 못합니다. 사단과의 전쟁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나 안 들었나가 승패를 좌우합니다. 날마다 내가 묵상한 하나님의 말씀이 사단을 사로잡을 수 있는 최대의 비결인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우리들교회를 하나님께서 이기는 싸움을 싸우게 하셔서 수많은 사단을 사로잡는 병사들이 여기 모여 있습니다. 사로잡혀갔다가도 지금 다시 살아나 사로잡는 군사들이 되어 앉아있습니다.
가장 무서운 사단은 항상 내 속에 있습니다. 내 마음을 내가 어찌할 수 없습니다. 전쟁이 쉽지 않습니다. 슬픈 마음 있는 자, 몸과 영혼 병든 자는 예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다른 게 없습니다. 이것이 사단을 사로잡는 비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