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
창세기 21장 22-34절
최근 기업의 입사면접에는 수직적 사고의 논리 문제보다 수평적 사고를 요구하는 창의성의 문제가 제시된다고 합니다. 사회생활에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능력은 논리나 기교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큐티를 통해 말씀의 자극을 수용하고, 말씀을 학습해서 지식이 생기고, 경건의 연습을 통해 다른 사람을 살리는 기능을 갖고, 그것을 삶에 적용하여 습관으로 형성되면 인생의 태도가 달라지고 가치관이 달라집니다. 이렇게 성경적 지식과 기능과 태도를 갖추는 것이 사회생활을 잘하는 비결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다른 이들에게 보이는 사람이 사회생활을 잘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내어 쫓은 ‘때에’ 아비멜렉이 찾아옵니다. 육적인 형통을 내려놓고 나니 세상 왕 아비멜렉이 찾아와서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라고 인정합니다(22). 아브라함이 거짓말을 하고, 100세가 되어서야 이삭을 낳고, 잘난 아들 이스마엘을 내어 쫓아도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형통의 개념이 거듭나서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 되시는 것이 가장 큰 위로임을 보여주게 됐습니다.
내공이 쌓여야 합니다.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인정하지만 3대에 걸쳐 거짓되이 행치 말라(23)고 아브라함의 치명적 약점인 거짓말을 지적합니다. 지나간 실수를 들추는 것이 당황스러울 텐데도 아브라함은 ‘내가 맹세하리라’하고 완전히 해결된 모습을 보입니다(24). 언제나 내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사회생활에서 승리하는 내공입니다.
사회생활을 잘하기 위해서 담대함이 필요합니다. 잘못을 인정한 아브라함은 자기 죄를 보는 담대함, 겸손한 담대함이 생겼습니다. 아비멜렉의 종들이 우물을 늑탈한 일을 말하지 않다가, 믿음의 관계를 맺기 위해서 드러내고 책망합니다(25-26). 당시 우물은 생명과 직결된 것이기에 양보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생명인 구원과 관계된 일에는 양보가 없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우물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떠나와서 하나님 때문에 판 우물입니다. 하나님 때문에 판 우물, 하나님 때문에 적용하고 간증한 것을 함부로 늑탈해서는 안 됩니다. 물리적 늑탈이 아니라 지체의 오픈을 인간적으로 해석하고 가십으로 삼는 것이 늑탈입니다.
물질을 잘 사용해야 합니다. 구원은 값이 치러져야 하기에 아브라함이 양과 소를 취해 우물의 값을 치릅니다(27). 아비멜렉을 책망하고 아브라함이 강자가 되었지만 물질을 양보함으로 문제를 해결합니다. 일곱 암양 새끼로 안 내도 되는 값을 치러서 소유권을 확정하고, 에셀나무를 심어 영생하시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릅니다(28-34). 이때 값을 치렀기에 후에 자손들이 기억하고 찾아오는 아브라함의 우물로 남았습니다. 지금은 보이는 것이 없어도 내가 욕심을 내려놓고 물질을 양보하며 구원의 에셀나무를 심을 때 자손대대로 영생하시는 하나님을 부르게 됩니다. 모래사막에서 자라는 에셀나무처럼 척박한 환경에서도 구원의 값을 치르며, 영생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주는 우리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창2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