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루만지시는 주님]
왕상 19:1-8
택자는 비록 지금 당장 죽고 싶을 때에도 주님은 어루만지시면서 일어나서 먹으라고 하십니다. 택자를 언제 어루만져 주시는지 보겠습니다.
1. 믿음으로 행한 일의 결과가 참담할 때도 어루만지십니다.
갈멜산 대결에서 여호와가 하나님이 되시고 불로 제단을 사르시고 바알 선지자 850명을 백성과 함께 죽였습니다. 그 후에 큰 비를 주시고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해서 허리를 동이고 아합의 마차 앞에서 달려갔습니다. 엘리야는 바알선지자들과의 대결에서 바알우상의 허상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야 개혁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뿌리 깊은 북이스라엘의 우상숭배는 그렇게 쉽게 무너질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세벨은 엘리야가 보여준 이 강한 능력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엘리야 체포령을 내렸습니다. 진짜 바알선지자의 괴수는 이세벨인 것입니다. 모든 것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강퍅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세벨은 이 땅에서 도저히 그 나라를 볼 수가 없는 대표적인 모델입니다. 육이 가득 차서 무너지지 않고 영이 보이지 않습니다. 오직 성령의 사역만이 강퍅한 마음을 부수고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고난과는 상관없는 하나님 자리에 있는 바알 우상은 포스트 모더니즘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둘만 좋으면 되고 우리 집만 잘되면 된다는 이세벨 부부의 포스트 모더니즘의 가치관으로 인해 결국 나라까지 망했습니다. 엘리야의 믿음으로 행한 일의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참담함을 느끼는 것은 나도 모르는 숨은 죄 때문입니다.
2. 이 세상 형편이 하나님보다 더 커 보일 때도 어루만지십니다.
엘리야가 이 참담한 형편을 보고 도망했다고 합니다. 850명을 물리치게 하신 주님이 이세벨을 물리쳐 주실텐데 갑자기 이세벨이 온몸으로 무서워졌습니다. 순간순간 세상 형편이 하나님보다 더 커 보이기 때문입니다. 엘리야 자신으로서는 이세벨을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엘리야의 절망은 하나님께서 이세벨을 당장 심판하지 않으셨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하나님께 대한 절대신앙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온 것입니다. 엘리야는 갑자기 무서워지니까 자신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도망함으로써 원수의 계책에 넘어가서 밥이 되었습니다. 절대신앙이 무너지자 주위의 형편부터 보이는 것입니다. 그가 택할 수 있었던 유일한 길은 자기를 죽이려 한 이세벨에게서 한 발짝이라도 더 멀리 도망하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도망간 브엘세바는 남쪽 유다 땅 중에서도 가장 남쪽에 치우쳐 있습니다. 850대 1의 결투를 마치고 북이스라엘도 넘어서 남유다 구석까지 가서 웅크리고 있는 선지자의 모습은 위대한 사람도 다 연약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인간이 스스로 아무리 노력한다고 할지라도 범죄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연약함을 감출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보다 내 형편이 더 커 보여서 도망간 브엘세바 구석은 어디입니까?
3. 홀로서기가 아니고 혼자라고 생각할 때도 어루만지십니다.
홀로서기가 아니고 혼자라고 생각하니 죽고 싶은 것입니다. 엘리야는 낙담할대로 낙담했습니다. 스스로 죽기를 원했습니다. 왜 이렇게 극심한 낙심이 되었을까요? 자기 옆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합은 왕궁에 잘 있는데 이 바알선지자를 죽인 자기를 이렇게 혼자 두시냐 말입니다. 이 끝이 없는 고난 길 오직 자신만이 스스로 광야로 혼자 들어갔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홀로 고군분투하는데 이세벨이 여호사밧왕과 결혼동맹을 맺고 밀접하게 친밀하게 지내고 있으니까 얼마나 배신감이 들었겠습니까? 특히 남유다의 여호사밧이 이세벨과 혼인하는 것은 경제적, 정치적 이유 외에 이세벨이 얼마나 모두에게 호감을 주는 사람인지 보여줍니다. 이세벨은 결코 악하게 보이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 호감으로 이스라엘은 물론 남쪽 유다에게까지 자기 딸과 불신결혼을 하게 해서 결국 예수님이 오시는 그 땅에 위험한 위기를 가져왔던 장본인이 바로 이세벨의 딸입니다. 다들 신결혼을 해서 너무너무 속을 썩이니까 뭐하러 신결혼했나 싶지만 우리는 이세벨처럼 잘 먹고 잘 사려고 하는 게 아니고 우리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고 거룩이기 때문에 싸우면서 그걸 정상이라고 여겨야 합니다. 이렇게 신결혼을 했다는 것은 하나님 쪽을 우리가 택했기 때문에 반드시 책임지실 것을 믿습니다. 엘리야는 광야를 혼자 가며 홀로서기가 안 되었기에 죽고 싶었습니다. 여러분은 혼자입니까? 홀로서기입니까? 혼자 가도 홀로서기 하는 사람은 나 혼자라고 하지 않습니다.
4. 일어나서 먹고 마시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전에도 도피 중에 엘리야의 일용할 양식을 까마귀를 통해서 과부를 통해서 공급하셨는데 이제 초자연적인 존재인 천사를 통해 공급하시고 계십니다. 얼마나 그가 영육 간에 지쳐있었는지 잘 보여주십니다. 먹고 마시고 다시 누울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택자는 하나님이 이렇게 돌보십니다. 엘리야가 사십주야를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호렙에 이르렀습니다. 성령충만해서 갔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영적인 것이 얼마나 육적인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 가장 어려운 때는 기근도 질병도 아니고 말씀이 깨달아지지 않고 인도를 받지 못할 때입니다. 인생은 누구도 죄인이고 앞날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이 불안한 이 세상에서 말씀의 나침반을 한시도 보지 못하면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말씀의 인도를 받을 때와 아닐 때는 큰 차이가 나는데 이 사소해 보이는 큰 차이를 간과하기에 큰 일이 터집니다. 여러분들의 삶이 너무 힘들어도 말씀 읽고 가면 하나님이 이렇게 미안해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미안해하시는 그런 삶을 좀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힘이 드니까 주님의 말씀을 받을 능력이 없이 지쳐있으니 여호와의 천사가 주님을 대신해서 인도하시고 어루만져주십니다. 굶기를 밥 먹듯 했을 엘리야에게 아이러니하게 음식물을 잘 먹고 마시라고 계속 처방을 내려주십니다. 육신도 자고 나면 회복이 되는데 영적으로도 쉼이 있어야 회복이 되잖아요. 어떤 것도 치우치면 안 됩니다. 지금 일어나서 먹고 마시라고 어루만져야 할 지체는 누구인가요? 여러분의 식생활은 영적입니까? 육적입니까?
공동체 고백입니다. 제 인생에 있어서 아내가 수면제를 과다복용하거나 119차량을 부를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 상상했는데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의식이 깨어나지 않고 있는 아내 얼굴을 보면서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런 심판의 사건이 왔는가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캠퍼스 선교사로 부름을 받은 사명자임에도 불구하고 인터넷바둑게임 중독에 빠져 하나님께서 주신 사역은 적당히 하면서 아내와는 소통하지 않아서 아내는 점점 병들어 가고 있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던 죄인이라는 것이 깨달아졌습니다. 제가 애통해 하는 마음으로 회개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인터넷바둑게임 중독이 13년 만에 끊어지게 하시고 한 달 후인 2017년 1월 8일에는 하나님께서 저를 목자로 아내를 권찰로 부르셔서 남은 자가 되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어루만지시는 주님은 믿음으로 행한 일에 참담한 결과가 날 때도, 이 세상 형편이 더 커 보일 때도, 홀로서기가 아니고 혼자라고 생각할 때에도, 어루만지시면서 일어나서 먹고 마시라고 계속 위로해주십니다. 택자인 우리는 내 모습 이대로 사랑하신답니다. 나의 모든 발걸음을 주가 아신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