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방황할 때
창세기 21장 14-21절
14세기 벨기에의 왕 레이먼드 3세가 동생의 반란으로 감옥에 갇혔습니다. 동생은 형을 가둔 감옥문 아래에 작은 구멍을 뚫어놓고 매일 산해진미를 공급했습니다. 형을 잘 대접하는 것처럼 보여주면서, 형의 살을 찌워 구멍으로 못 빠져나오게 하려는 의도였습니다. 감옥에 갇힌 형은 어떻게든 음식을 절제하고 살을 빼서 구멍으로 나가겠다고 다짐했지만 음식의 유혹을 거절하지 못했습니다. 동생의 계략을 알면서도 식욕의 포로가 되어 자유인이 되기를 포기했습니다. 세상에서 방황하는 자의 특징이 이것입니다. 구멍 밖의 큰 자유를 포기하고 한 평 감옥에서 마음껏 먹는 것이 자유라고 외칩니다. 마음대로 먹고 마시는 자유를 누리겠다고 더 큰 세상을 아는 자유, 새 하늘과 새 땅을 아는 자유를 포기하고 감옥 같은 세상에서 방황하며 살아갑니다.
노예근성 때문에 세상에서 방황합니다. 아브라함의 집을 떠나 브엘세바 들에서 방황하는 하갈과 이스마엘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14). 하나님께서 이삭을 주신 후에 이스마엘을 내어 쫓게 하신 것은 자유자로 태어난 이삭의 자유를 맛봐야 종의 속박을 내어 쫓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이들을 내쫓는 것이 야속하다고 하면 안 됩니다. 하갈은 사라의 여종이고 이스마엘은 육체를 따라난 계집종의 자녀입니다. 그럼에도 아브라함 가문에 속하는 엄청난 은혜를 입었으니 거기에서 허락된 안식을 누리면 됩니다. 그런데 노예근성으로 비교하고 두려워하면서 사라를 멸시하고 이삭을 희롱했습니다. 이삭이 나기 전까지 16년 동안 아브라함과 지내면서도 믿음으로 하나가 되지 못하고 노예근성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누가 쫓아낸 것이 아니라 쫓겨날 수밖에 없는 인생을 자초한 것입니다.
노예근성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입니다. 아브라함의 집을 떠난 하갈과 이스마엘은 물이 없는 사막에서 죽음에 처합니다. 살 한 바탕쯤의 거리, 화살을 쏘아서 날아가는 2~300미터 거리밖에 못 가서 금세 후회하며 방성대곡을 합니다(15-16).
그러나 하나님께서 살려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마엘의 소리를 들으시고 하갈을 불러주십니다. 세상에서 방황을 해도, 거룩한 자리가 아닌 사창가나 감옥에 있어도 하나님은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하갈의 이름을 불러주시고 ‘두려워 말라’ 응답해주시고 ‘그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약속해주십니다(17-18). 탐욕으로 인해 슬픔과 낙심에 빠져 있을 때는 샘물이 안 보였는데, 하나님께서 눈을 밝히시니 물이 보이고 살 길이 보입니다(19). 하나님 안에서만 살 길이 있습니다. 나의 방황을 끝낼 분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재물, 권세,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방황을 끝내시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를 살리십니다.
살려 주셔도 약속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마엘과 함께 계심으로 장성하여 활 쏘는 자가 됩니다. 그런데 육적인 축복과 번성을 누리면서 어머니 하갈이 애굽 여인을 취해 아내를 삼게 하고 불신결혼을 시킵니다(20-21).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매 연약한 이삭은 믿음으로 강해지지만, 활 잘 쏘고 잘난 이스마엘은 세상으로 점점 강해집니다. 육적인 번성 때문에 영원히 하나님의 약속을 떠나서 가라지 역할만 하고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육적으로 살려주시는 것만 바라고 약속의 자녀가 되지 못한다면 인생의 방황을 마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방황과 고난이 헛된 것이 되지 않으려면 육적인 것에 머물지 말고 약속의 자녀로 영적 기업을 얻어야 합니다. 내가 약속의 자녀가 되고, 자녀를 말씀으로 양육하며 약속의 자녀로 키우는 것이 모든 방황을 마치고 살아나는 길입니다.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취하여 하갈의 어깨에 메워 주고 그 자식을 이끌고 가게 하매 하갈이 나가서 브엘세바 들에서 방황하더니” 창2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