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명]
사6:1~8
영화 교회오빠는 자신의 대장암 4기 진단과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죽음, 그리고 아내의 혈액암 4기 진단까지 연이어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을 마주하게 된 이관희 집사와 아내 오은주 집사의 투병기입니다. 2018년 9월 16일 새벽, 시애틀에 있었던 저는 이관희 집사님과 마지막 통화를 하고, 이튿날 타코마 교회 집회 때 집사님의 소천 소식을 들으며 그곳에서 교회 오빠 간증을 틀었습니다. 이관희 집사님은 마지막까지 사명을 감당하고 떠나셨습니다. 오늘은 소명, 즉 부르심에 대해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첫째, 위기의 때가 기회입니다.
웃시야 왕이 죽었답니다. 웃시야 왕은 열다섯 살에 왕이 되어 52년간 유다를 통치하며 유례없는 번영을 주도한 강력한 왕이었습니다. 처음엔 신앙적으로도 훌륭했지만, 육적으로 부강해지면서 영적 교만이 생겨 제사장의 사역을 탐하게 됩니다. 결국 자신이 예배를 주관하다가 문둥병에 걸려 별궁에 갇혀서 죽었습니다. 이사야는 1장에서 이미 소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머리로 소명을 받았기에 계시를 알면서 계속 죄악을 통렬하게 지적했지만, 하나님의 높이 들린 보좌와 성전에 가득한 하나님의 옷자락,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한 것을 6장에 와서 보게 되었습니다. 웃시야 왕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위기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닌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 엎드려있는 이 성전에서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성전이 정말 중요합니다. 말씀과 씨름하고, 오래 인내하며 기도하고 회개하는 구조 속에 있었기에 고난보다 높이 들린 보좌를 보았습니다.
둘째, 드러나기보다 가리우는 것이 많아야 합니다.
스랍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천사들로서 여섯 날개 중 둘로는 얼굴을 가리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자기가 취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얼굴로, 발로 나의 수고와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가리며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외모자랑, 자기자랑, 헌신자랑, 수고자랑을 알아주기 원합니다. 말씀을 통해 나의 그런 자랑들이 부끄러움인 줄 알고 이를 가리고자 하는 것이 바로 큐티입니다.
셋째, 삼위일체의 거룩이 있어야 합니다.
사명 받으려면 제일 중요한 것이 거룩이라는 구별된 가치관을 가지고 가야 하는데 이사야에게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 오직 너에게 필요한 것은 거룩이다, 거룩이다, 말씀하고 계십니다. 성부 하나님의 숨겨진 경륜(Hidden will of God)이 성자 하나님, 곧 예수님으로 그 경륜이 여인의 뱃속 점 하나로 너무도 겸손하게 오셨습니다. 가장 낮아진 바닥에서 하나님의 경륜을 나타내고자 할 때 성령 하나님께서 Effective Power로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삼위일체의 시작도 끝도 목적도 거룩입니다. 저도 걸레질로 낮아져서 감추어진 하나님의 영광을 알아가는데 성령님이 도와주셔서 결혼을 지킬 수 있게 하셨기 때문에 내 영혼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해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내가 거룩을 외쳐서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라 삼위일체 사역을 알고 내가 낮아져야 합니다. 하늘의 언어와 땅의 언어를 같이 써야 참 거룩입니다.
넷째, 서로 화답하는 공동체를 경험해봐야 합니다.
우리가 목장에서 나누는 오픈과 적용이 스랍들의 찬송 소리와 같고, 예배 때마다 느껴지는 우리들교회의 생기가 문지방이 요동하며 성전의 연기가 충만함과 같습니다.우리들교회의 문턱이 낮으니 누구나 들어오기 쉬운 교회인 것도 맞습니다. 상처 많은 사람이 오니까 요동하며 요란할 때도 있지만, 성령 충만의 연기가 가득합니다. 이관희 집사님이 항암을 스물여덟번 하면서도 목장에 참석하고 양육 받으면서, 자신에게 목장예배가 몇 번밖에 없다고 생각하면 오늘 목장예배가 너무 소중하다고 나누었습니다. 목자도 하고 싶고, 너무나 사명도 찾고 싶다고 했답니다.
다섯째, 자기가 입술이 부정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사야가 온 세상에 가득한 여호와의 임재와 영광을 본 후 첫 고백은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다입니다. 그 이유가 나는 입술이 부정하다였습니다. 한마디로 나는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나의 실체를 하나님 앞에 내어놓아야 합니다. 아마도 이사야는 현실을 바라보는 자신의 관점, 기존 가치관이 산산조각이 나듯 부서지는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죽어지는 경험을 하고 하나님의 영광 앞에 선 사람이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여섯째, 핀 숯으로 죄 사함의 은총을 경험해야 합니다.
이사야가 자신이 망하게 되었다고, 입술이 부정하다고 고백했을 때 하나님은 그 고백을 들으시고 입술을 제단에서 집은 숯불로 거룩하고 깨끗하게 해주셨습니다. 먼저 죄를 고백해야 하나님이 우리 죄를 사해주십니다. 소명의 절대적인 적용은 말조심입니다. 죄를 용서받은 경험을 갖지 않고서는 말조심하기가 어렵습니다. 제단에서 나온 핀 숯이니까 말씀의 불로 처방하고, 처방받는 것은 정말 아픕니다. 하나님의 처방으로 핀 숯을 갖다 대니 너무 아프지만, 맞습니다 하니까, 이사야에게 생기가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회개는 인간 최고의 감정입니다.
일곱째, 주의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부르심으로 인한 자원함이 되어야 합니다. 이사야가 죄를 고백하고, 사죄받은 다음에야 소명을 주십니다. 순서가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마치 혼잣말로 탄식하듯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자마자 이사야는 주의 목소리를 예민하게 들었습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이사야의 반응이 달라진 것입니다.
이관희 집사님은 양육훈련을 받고, 목장에 오고, 그것 때문에 기쁨으로 투병 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하루가 더 주어진다면 거룩을 이루기 위해 좀 더 온전해지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도 맑은 정신으로 성경을 보고, 설교를 듣기 위해 모르핀을 맞지 않았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도 교회오빠를 보고 종교와 상관없이 큰 울림을 주는 영화였다고 평을 했습니다. 한국교회를 성숙하게 해주는 영화라는 평도 있었습니다. 이 땅에서의 그의 삶은 끝났지만, 어마어마한 소명의 삶이 펼쳐져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소명은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내 가정, 내 직장, 나의 모든 환경이 소명의 장소입니다. 부르심의 장소입니다. 우리 모두 각자의 환경에서 소명을 찾고, 주의 목소리를 잘 듣고 부르심으로 인한 자원함으로 여전하게 하루하루 잘 살아내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