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터기는 남아있는 것 같이]
김성우 목사
사6:1-13
악하고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고 입술이 부정하여 모든 것이 망한 저였는데 십자가의 은혜와 공동체의 손과 발이 가는 수많은 수고로 많은 날이 지나 제 속에도 조금씩 구원의 소망이 싹이 자라고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오늘 모든 것이 무너지고 황폐해진 그곳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루터기가 남아있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포기하고 저 사람만큼은 안 될 거다, 하는 그 사람에게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탄식하십니다. 누군가는 하나님을 대신해서 그 그루터기에 다시 싹을 피우고 구원의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
1. 나의 웃시야 왕이 죽는 사건을 허락하십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간혹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은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일상을 평범하게 살아가다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 밀려오거나, 아무도 모르는 내 죄가 낱낱이 드러나 수치를 당할 때, 침 삼키는 것조차 힘이 들고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으며 환경 너머에 계시는 누군가를 원망하는 바로 그때가 오늘 본문의 웃시야 왕이 죽던 때입니다. 저 역시 이런 때를 몇 번 경험했습니다. 아버지가 감옥에 가게 되어 집이 경매로 넘어갔을 때, 술 취한 아버지의 폭력과 욕설을 견디다 못해 어머니가 결국 집을 나가던 때, 세 명의 여자들 사이에서 나의 모든 거짓과 수치가 드러나 삼자대면을 했던 때, 바로 이런 때 평범하게 흐르던 시간에는 결코 경험해보지 못했던 감정들과 시간을 경험하게 되며 평범하게 살았다면 결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죽음과 죽음 너머의 삶과 이 땅의 눈에 보이는 것 너머의 무언가에 대해서 우리는 생각하게 됩니다. 바로 이때가 그루터기와 같이 남은 자들의 구원을 위해 나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때입니다. 그런데 저에게 이런 때가 2주 전에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대전에 혼자 사시는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하셨다는 연락을 받고 병원에 도착하니, 한 걸음도 못 걸으시는 아버지를 차에 태우고 내리는 것이 십자가처럼 무거웠고, 그런 아버지를 가까스로 휠체어에 태워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는데 조금만 움직여도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시고 휠체어와 병실에서 오줌을 싸시니 멘붕에 빠졌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실 때 늘 고함을 지르십니다. 결국 처음 간 병원에서 쫓겨나고 두 번째 병원에 가서도 처음부터 시작되는 혈액검사, 소변검사, 엑스레이, 심전도, 가는 곳마다 골절된 곳을 수술해야 된다고 했지만 수술을 채 받기도 전에 또 쫓겨나고... 가까스로 다섯 번째 병원에서 입원을 받아주셔서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2. 성전에 가득한 하나님의 영광과 내 죄를 보여주십니다.
이 때 내가 어디를 바라보아야 할지가 너무나 중요합니다. 내 환경과 상황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1절 말씀에 지극히 높이 들린 하나님의 보좌를 바라봅니다. 환경이 아닌, 내 눈에 보이는 현상이 아닌,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내 시선을 향한다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시선을 향하는 것이며 하나님이 임재하고 계시는 예배와 목장으로 내 시선을 고정시킨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자신의 얼굴을 가리우고 함께 모여 십자가를 길로 놓고 거룩을 외치며 먼저 고난당한 집사님들의 기도가 향이 되어 온 천지를 요동시키는 그곳, 문지방을 넘어 들어갈 때 이 기가 막힌 때를 살아낼 수 있을 뿐 아니라 사명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환경을 넘어 문지방을 넘어 예배로 목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한 예배와 목장에서 화답하는 수많은 슬픔과 간증과 아픔과 살아난 적용을 들을 때 결코 보이지 않던 내 죄가 보입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이 고백은 망하게 될 것이다가 아니라 망하게 되었다입니다. 사르밧 과부와 의로운 오바댜가 죄 이야기를 한 것처럼 공동체와 말씀 앞에서만 우리는 내 죄를 볼 수 있고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에 응할 수가 있습니다. 이번 교통사고를 통해서 내가 얼마나 구원의 값을 치르는 것을 아까워하며 손과 발이 가는 적용을 싫어하는 자인지 화로다 망하게 되었도다 이 고백을 하나님은 부정한 제 입술에서 받아내셨습니다. 이번 사건이 없었다면 저는 결코 아버지를 모셔오지도 않고 모셔올 생각도 없었고 구원을 위한다고 하면서도 아버지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어 아마 죽을 때까지 돈만 보냈을 죄인입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포기하는 저의 아버지를 하나님께서는 포기하지 않으시고 누가 나를 위해 갈꼬 오늘 말씀하십니다.
3. 탄식하는 주님의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주님의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화로다 망하게 되었도다 이 고백을 하며 내 죄가 보일 때 우리는 주님의 탄식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내 죄를 용서받은 은혜를 경험한 자만이 모든 것이 무너져 이 목소리에 반응할 수 있습니다. 이 힘든 아버지를 위해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주님은 오늘도 탄식하며 말씀하십니다. 저는 세계선교를 한다고 하면서도 아버지만큼은 근처로 모셔올 수 없다고 목장에서 지체들과 나누면서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대며 피해왔었습니다. 힘든 아버지의 구원을 위해서 마지막까지 수고할 수 있도록 저에게 이 영광스러운 시간을 허락하셨는데 이는 우리를 위한 일, 즉 주님을 위한 일이라 말씀하십니다. 담임목사님께서 힘든 내 남편, 내 가족, 내 자녀를 고르고 골라서 특별히 나에게 맡기셨다고 했는데 그들을 외면한 채 주님의 목소리를 회피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4. 그루터기가 남아있습니다.
사건을 통해 들리는 주님의 목소리에 순종하며 가고 있지만 지금도 침을 삼키는 것도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11절 말씀처럼 주여 어느 때까지이니까? 탄식이 나오는 하루하루입니다. 주께서 모든 것이 무너지고 황폐한 것이 많을 때까지라고 대답해주십니다. 뇌부터 온몸의 모든 것이 망가져 황폐해진 아버지이지만 오늘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이 다 황폐해져 남은 십 분의 일조차 황폐해지고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해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있을 거라 말씀해주십니다. 그 그루터기는 남아있어 거룩한 씨가 있다고 말씀해주십니다. 사고를 당하고 병원에서 쫓겨나 또 다른 병원을 찾으며 전전긍긍하며 차 안에서 아버지께 또 한 번 물었습니다. 아버지~ 심근 경색으로 오늘 밤 갑자기 예수님 앞에 서실 수 있는데 천국에 가실 수 있냐? 물으니 갈 수 있다고 대답하시기에 이렇게 힘들게 사셨고 모든 것이 무너지고 황폐한데 어떻게 천국에 갈 수 있냐? 물으니 아버지께서 믿음으로 말씀하십니다. 무엇을 믿냐? 물으니 부활을 믿는다고 하십니다. 누구를 믿냐? 물으니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십니다. 뛰어난 머리도 잘생긴 얼굴도 예쁜 아내도 쌓아 올린 모든 재산과 건강, 경제적인 모든 것이 황폐해지고 무너졌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그루터기를 남겨주셨습니다. 그 씨를 포기하면 안 됩니다. 그 씨가 싹이 트고 열매를 맺도록 오늘 하나님께서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적용하려고 결심한 그 순간부터 하나님께서는 도울 천사를 보내시고 오바댜 같은 신실한 동역자를 만나게 하십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13절을 다르게 번역하면 거룩한 자손들이 그루터기가 되어 거기에서 다시 싹이 틀 것이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주홍같이 붉은 죄를 핀 숯으로 사하여 주셔서 거룩한 자손들로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손과 발이 가는 적용을 통해 그 씨가 자라는 구원의 수고를 해야 합니다. 그 씨에 눈물과 기도와 섬김과 애통과 물질과 나의 시간을 양분으로 드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해야 합니다. 이 일이 너무 힘들고 모든 사람이 포기한 그 사람에게 보내기에 하나님께서는 네가 가라 명령하지 않으시고 누가 우리를 위해 갈꼬 탄식하십니다. 힘든 그 사람에게 오늘 찾아가는 것이 주님을 위함이라 말씀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