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진실한 줄 아노라]
왕상 17:8~24
내가 섬기는 하나님을 자랑하려면 모두에게 진실하다는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진실하다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진실은 하나님의 말씀의 본질을 규정할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이제야 진실한 줄 아노라 라고 평가받기 위해 오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오직 하루하루 말씀에 대한 순종만이 진실입니다.
먼저 엘리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들은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에게 물과 떡을 달라고 하고 과부는 엘리야의 말대로 행합니다. 진실은 말씀밖에 없습니다. 내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사람은 그 말이 그대로 이뤄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엘리야가 말씀을 따라 그릿시냇가로 갔는데도 오랜 가뭄에 말라버리는 일이 생겼지만 아~ 있어야할 일이구나~ 하나님이 아시지 하며 매일 말씀대로 인도함 받다보니, 지나고 나서 봤을 때 그것이 하나님의 세팅이고 죄고의 길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아합이 경고에도 가뭄에도 회개하지 않기에 엘리야는 자신이 전한 말씀을 회개와 절제의 삶으로 살아내야 하는 책임을 져야했고 무시받는 사르밧 과부애게 인정받는 훈련을 받아야 했습니다.
2. 영적자녀를 낳는 사명이 진실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바알 숭배지의 본거지인 시돈으로 파송하십니다. 시돈은 풍요의 신인 바알숭배의 성지인데 왕족은 부자지만 주민은 가난했습니다. 엘리야가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와의 갈멜산 전투를 잘 하려면 까마귀의 공궤도 받아보고 사르밧 과부와 같이 있어보는 것도 필수 훈련입니다. 불쌍한 과부의 보호를 받고 거기서 있었던 것이 도리어 보호받는 길이었습니다.주님께서 눈동자 같이 보호하시며 갈멜산 전투에 임하도록 훈련시키신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 자녀를 낳기 위해 사는 것입니다. 별 인생은 없지만 내가 적용하면 별 인생입니다. 하나씩 적용을 하다보면 지경이 넓어지고 사명으로 나아가면 학벌이 상관이 없습니다. 19년 전 큐티선교회 창립예배 때 고3 딸의 혼전임신을 낙태로 이어지지 않도록 결혼시켜 신앙으로 인도하신 분이 간증을 하셨습니다. 낙태 하지 않는 적용, 불신결혼을 하지 않는 것이 진실입니다. 원칙을 지키며 말씀대로 하나하나 순종하고 가는 것이 진실입니다. 육적 자녀의 아픔을 통해 영적자녀를 낳는 것이 진실입니다.
시돈 여인에게 물도 달라 떡도 달라는 도움을 요청한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었지만 그녀를 분별하기 위해서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과부는 엘리야가 떡을 만들어 달라 하니 본인 먹을 것도 없으며 이것 먹고 아들과 죽을 것이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지도 않는 과부가 죽기 직전에 엘리야를 돕는 것은 까마귀가 돕는 것 보다 더 기적적인 일이었습니다.
과부의 말에 엘리야는 두려워 말라고 합니다. 우리는 인생이 늘 두렵지만 일어날 일을 끌어안고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그 두려움을 해결하실 창조주에 대한 두려움으로 두려움의 내용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러면 일상의 두려움에서 해방됩니다.
과부가 엘리야의 말씀대로 순종한 것은 바알을 섬기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이 한사람을 찾아냈습니다. 진실한 사람을 찾는 것이 진실함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의 가치관으로 바뀌면 통의 가루와 병의 기름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지금 내 형평을 탓하며 말씀을 거절하면 놀라운 하나님의 일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엘리야의 말을 듣는 것이 진실한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믿음으로 말씀에 순종할 때 상황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3. 죄가 생각나는 것이 진실입니다.
16절의 기적을 겪었는데 17절 아들의 숨이 끊어지는 사건이 왔습니다. 말씀 따라 사는데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생기는 것은 하나님이 쓰시는 인생입니다. 과부가 비록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인정함으로 축복을 받았지만 전능의 하나님으로만 알고 있고 언약의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수준을 높게 하시려고 또 고난을 허락하실 수 있습니다.
과부가 엘리야에게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너 때문에 내 아이가 죽었다고 인과응보적인 죄책감에 사로잡혀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람 때문에 하나님의 관심이 집중되어서 재앙이 내렸다는 겁니다. 그런데 가루가 없어지지 않고 기름이 떨어지지 않을 때는 죄 이야기가 전혀 없더니 아들이 죽으니까 죄가 생각난다고 합니다. 엘리야는 말씀의 사람입니다. 오래 같이 있다보니 말씀양육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이 죽는 가장 큰 슬픔 속에서 드디어 자신의 죄가 생각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기름이 떨어지지 않는 축복을 받지만 진정한 축복은 자기 죄를 보는 것입니다. 한계상황의 고통이 오지 않으면 자기 죄를 보지 못하니까 자기 죄를 보지 아니하고 한계상황의 고통이 오면 남의 죄만 보니까 지옥을 사는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의 사람들이라면 힘든 사건을 통해서 숨은 부끄러움의 죄를 봐야합니다.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죽음의 문제는 빨리 인정하고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런데 과부가 내려놓지 못하니 엘리야가 안았습니다. 아들의 병의 위중함을 내 일로 내 아픔으로 여기고 감싸는 것이 엘리야로서 우리의 역할입니다. 죄에 대해서는 단호해야 하지만 아픔에 대해서는 끌어안는 것이 생명을 살리는 길입니다.
엘리야도 기가막혀 하나님께 따집니다. 이 사건이 죽음의 사건이 안되게 하기 위해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또 자기 처소에서 자기 침상에 누일 뿐 아니라 보기도 힘든 차가운 시체를 온기로 덮어주었습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려면 구처적인 수고가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의 부르짖는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주십니다. 아들을 살림으로 엘리야는 드디어 사르밧 과부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어떤 환경도 하나님은 100% 옳으시고 믿음에는 왜가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이제야 진실한 줄 아노라의 평가를 하게 되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