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살아나셨다]
막 16:1~18
아이가 없던 집사님에게 아이가 생기니 목자도 내려놓고 교회를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믿음이란 정말 선물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모든 환경이 좋아야 부활이고 감사가 아닙니다. 인생의 목적은 돈과 이김 목적이 아니고 거룩입니다. 거룩은 세상 말로 성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의 주제가 거룩인데, 이 거룩을 알려면 살아나신 예수님을 알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오늘은 예수님이 살아나심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부활의 스타 막달라 마리아가 있습니다.
부활의 중요한 목격자로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던 세 여자의 이름을 기록한 것은 제자들의 배신과는 달리 끝까지 주님을 따랐던 여인들을 언급하기 위함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최초로 목격한 부활의 스타 막달라 마리아에 대해 네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1) 근심
막달라 마리아와 여인들은 누가 이 무덤의 돌을 굴려줄까 근심하며 갔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는 듣는 사람이 영접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 지, 사람들 보는 앞에서 거절을 당하면 어떨지에 대한 걱정이 있습니다. 구원을 위한 염려이기에 복음을 전할 상황에 가면, 항상 돌이 이미 굴려져 있는 것을 볼 때가 많이 있습니다. 복음은 내 힘으로 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2) 시체 찾음
예수님을 사랑한 그녀들은 근심하면서 시체이신 나사렛 예수님, 죽은 예수님을 찾으려 했습니다. 사랑했던 예수님이니까 시신을 보고 위로를 얻으려고 했습니다. 청년 천사가 와서 왜 죽은 예수님을 찾느냐며 예수님은 살아나셨다고 합니다. 저도 하루 만에 간 남편의 죽음은 놀라운 사건이었지만, 구원은 그보다 훨씬 더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에스겔 말씀을 통해 죽은 남편 찾지 말고 구원받고 부활했으니 무덤에 있지 않다는 것을 제가 알았습니다. 6절 마지막에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면서 시체를 두었던 곳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빈 무덤이야말로 세상 종교와 참 생명을 가르는 확실한 징표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권세를 깨트리고 살아나셨습니다.
3)사명 주심
부활의 주님을 만난 사람에게는 어떤 환경이라도 사명을 주십니다. 주님은 이 여인들에게 예수님을 부인했던 수제자 베드로에게 살아나신 예수님을 보았고, 주님이 갈릴리에 먼저 가서 기다리심을 가서 전하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제자들에게는 주님을 처음 만난 장소이자 실패해서 도망간 장소이기에 생각조차 하기 싫은 갈릴리인데, 다신 사신 부활의 주님을 믿는다면 나의 삶의 자리로 돌아가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4)양육
마태복음에 보면 천사가 이 여인들에게 예수님이 사흘 만에 살아난다고 그러지 않았냐고 양육을 하니, 그 말씀을 기억해내고 사도들에게 큰 기쁨으로 소리쳤다고 했습니다. 무서웠다가 양육의 결과로 기쁨이 온 것입니다.
둘째, 믿지 아니하는 제자들이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도 믿지 못했는데, 예수님을 보고 온 마리아의 말도 믿지 않았습니다. 죽었다가 살아났다고 해도 성령이 임하지 않으면 믿지 않습니다. 부활을 증거하는 자가 창녀이고 귀신들렸었기 때문에 더 믿지 못합니다. 저는 제 남편의 구원을 에스겔 18장 말씀으로 전했습니다. 저와 같은 환경에 있는 여인들은 다 기뻐했는데, 제자들이 믿지 못하는 것처럼 많은 목사님들은 심각하게 듣지 않았습니다. 12절 엠마오 도상에서 예수님께서 다른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말씀을 자세히 풀어 부활을 전했을 때도 제자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하도 믿지 않으니까 음식 먹을 때 나타나셨는데, 음식을 먹을 필요가 없으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음식 먹는 사람들의 수준으로 낮아지셔서 제자들을 꾸짖고 설명해주십니다. 우리가 구원을 위해서라면 누군가를 위해서 하기 싫은 일이라도 그 수준으로 내려가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에 대한 애정도 있고 직분과 본분을 포기한 것도 아니지만, 아무리 모든 게 있어도 믿음이 없으면 사역을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이들을 안타깝게 여기시며 포기하지 않으시며 꾸짖는 사랑을 보이십니다.
셋째,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온 천하에 다니면서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시는데, 믿음이 있어서 복음을 전파하라는 것이 아니고 믿음이 하나도 없는데 온 천하에 다니면서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십니다. 참된 예배를 드리는 구조 속에서 여러분들이 양육하고 받고, 목장에서 가르치고 배우며 가는 것이 저절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됩니다. 믿어지지 않아도 복음을 전파하는 것부터 하는 것이 주님의 양육 방법입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도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 즉 영원한 심판을 받는다고 하시며 믿는 자에게는 표적이 있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아비 마귀에게서 난 자들이기 때문에 복음을 전파할 때 방해하는 아비 마귀의 세력들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물리칠 수 있음을 약속하십니다.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말씀대로 믿고 살고 누리니 새 방언 천국의 언어를 저절로 쓰게 됩니다. 새 방언은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내 탓입니다. 입니다. 나를 낮추고 남을 섬기고 내 죄를 먼저 보다 보면, 그 입에서는 천국의 언어만 나오게 됩니다.
공동체 고백입니다. 지난 4월 5일 편도가 부어 병원에 간다고 했던 큰아들이 세 시간 후 사망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C T촬영을 위해 조영제 투여 후 의식불명이 되었고 한 시간 후에 심정지로 사망 판정을 받은 것입니다. 정확한 사인 규명을 위해 부검을 의뢰하고 오일장을 치르며 평소에 한 번도 나눌 수 없었던 가족 간에 많은 나눔을 할 수 있었습니다. 각자가 마음속으로 비난하고 문제없는 것처럼 포장했던 것, 무심하고 무정했던 죄들을 눈물로 회개하며 용서를 구했고 남은 가족들이 화해하며 하나 되는 장례가 되었습니다. 우리 가정의 구원을 위해 가장 사랑했던 큰아들을 산 제물로 단번에 받으시고 두 손자를 씨로 남기시고 단명의 복을 받으며 사명을 다하고 눈물도 고통도 없는 본향에서 안식하게 된 줄 믿습니다. 세례는 받았으나 죽음을 준비치 않은 아들을 데려가시면 어떻게 하냐고 하나님께 따지듯 통곡했는데 정례 내내 하늘 가는 밝은 길이 찬송을 들으며 응답해주심을 믿게 되었습니다.
과연 믿는 자답게 해석을 잘하시면서 우리에게 부활의 주님을 보여주시는 것 같습니다. 빈 무덤에서 슬퍼하지 않으시고 부활의 주님을 만나시고 사명을 찾으시니 복음을 전파하는 마을지기로 이런 무서운 독을 마셔도 해를 받지 않는 축복을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우리들의 소망이 하늘 가는 밝은 길 지금도 나중에도 천성문 향해 가는 오늘과 내일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