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을 얻기 위하여
창세기 21장 7-13절
매주 우리들교회를 찾은 새가족들 앞에서 자신의 외도를 고백하는 집사님이 있습니다. 네 번의 외도 끝에 아이까지 낳은 간증을 하는데, 그 옆에서 부인 집사님도 함께 자신의 간증을 나눕니다. 유수한 병원의 의사로 인정받는 분인데 어떻게 이런 간증을 매주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기업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영적 후사로 기업을 얻기 위해 날마다 적용해야 할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기업을 얻기 위해 잘 서 있어야 합니다. 인간적으로 불가능한 ‘아브라함 노경’에 영적 후사 이삭을 낳았습니다. 사라가 노년에 자식을 얻고 젖을 먹이면서 환경이 좋아지니까 ‘여호와께서 말씀대로(1)’ 주신 아들을 ‘내가 낳았도다’ 하게 됩니다(7). 기복적인 감사는 교만으로 이어집니다. 원하던 응답을 얻고 감사하다가도 내 젖을 먹이면서 ‘내가 낳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젖을 떼는 적용으로(8) 시기마다 욕심을 내려놓는 영적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25년을 기다려서 얻었어도 이런 교만이 나오는데, 고난도 없이 성취를 하게 되면 내가 한 것으로 착각합니다. 내 노력으로 이룬 것 같아서 뭔가 얻고 나면 쉬고 싶어 합니다. 안식은 잘 서는 것입니다. 주일은 쉬는 날이 아니라 서는 날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안주하지 않고 영적 싸움을 잘 싸울 때 성공해도 실패해도 넘어지지 않고 잘 설 수 있습니다.
돕는 배필의 역할을 잘 해야 합니다. 사라가 ‘내가 낳았도다’하고 있으니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는 사건이 왔습니다. 그리고 ‘사라가 본즉’ 이 사건이 자기 인생의 결론인 것을 알았습니다(9). 하갈이 사라를 희롱했고,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는 것이 하갈을 아브라함에게 들여보낸 자신 때문임을 알았습니다. 사라가 자기 죄를 인식했기에 하갈의 소생은 기업을 얻을 영적 후사가 아니라는 것을 분별했습니다. 아브라함의 돕는 배필로서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어 쫓으라는 처방을 할 수 있었습니다(10).
기업을 얻기 위해 내어 쫓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스마엘은 기업 얻을 자가 아니라는 사라의 처방을 듣고도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을 내려놓지 못해서 깊이 근심합니다. 내어 쫓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는데, 아브라함은 가만히 있지 못하고 속으로 근심합니다(11-13). 육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다 누리고 싶어서 근심하고 고민을 해도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영적으로 풍성한 기업을 얻으려면 육적인 이스마엘은 내어 쫓아야 합니다. 이스마엘이 잘나고 성공한 자녀라고 해도 믿음이 없으면 육의 자녀일 뿐 영적 후사가 아닙니다. 믿음을 희롱하고 영적인 것을 멸시하는 육적인 가치관을 단호하게 내어 쫓아야 합니다. 내 속에 있는 이스마엘의 가치관을 내어 쫓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 믿는다고 밥이 나와 돈이 나와?” 희롱하는 소리를 들으며 굴욕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새가족부에서 간증을 하는 집사님도 밖에서 낳은 아들을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부인과 사이에는 딸만 있었기에 처음으로 얻은 아들이 좋아서 교회를 다니면서도 두 집 살림을 했습니다. 그러나 부인 집사님이 말씀 안에서 평안한 모습을 보이니까 아내의 믿음을 희롱하던 집사님도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잘 깨닫지 못해도 끊임없이 양육하고 말씀의 구조 속에 들어오게 했더니 아들과 여자를 끊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힘들어도 매주 자신의 죄와 수치를 오픈하며 끊어내는 적용을 하고 있으니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책임지고 지켜주십니다. 목장과 새가족부에서 영적 기업을 얻으며 가정 중수의 모델로 서있습니다. 기업을 얻고 쉬기 위해서가 아니라 잘 서기 위해서 날마다 영적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큐티와 예배로 나의 육적인 이스마엘을 내어 쫓으며 영적 후사를 세워갈 때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풍성한 기업을 얻게 하십니다.
“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매” 창2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