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섬기는 하나님]
왕상 17:1~9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악한 아합을 대적하기 위해 가장 큰 선지자 엘리야를 준비시키셨습니다. 내가 섬기는 하나님은 아합이 섬기는 바알과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셔야 했습니다. 모세가 율법을 대표하는 위대한 인물이라면, 엘리야는 구약 시대 모든 선지자를 대표하는 위대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대선지자가 나와도 이스라엘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이 아합의 악한 시대에 쓰시는 엘리야가 섬기는 하나님은 어떻게 힘을 주시고 인도해 가시는지 보겠습니다.
첫째, 담대하게 해주십니다.
엘리야는 길르앗에 우거하던 디셉 출신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에브라임의 형 므낫세의 첩의 자손인 길르앗의 후손이니 엘리야는 에브라임 지파로부터 상처를 많이 받았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불같은 성정을 가졌다고 합니다. 엘리야가 금송아지를 숭배하는 북이스라엘에서 나의 하나님은 여호와시다라는 신앙 고백적인 이름을 가진 것은 그의 이렇게 환경이 겸손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엘리야를 바알과 대적할 자로 아합에게 보내신 것입니다. 엘리야가 하나님을 내가 섬기는 분이라고 했는데 그 표현은 내가 그 앞에 서 있다라는 뜻으로, 나 엘리야는 오직 하나님께만 복종하며, 하나님만을 섬기며, 하나님만을 경외한다는 비장한 결단의 의미가 있습니다. 출신이 형편없어도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면 이런 담대함이 나오는 것입니다. 지난주 낙태법이 위헌이라는 결정이 내려졌는데 여성의 인권이 태아보다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하나님 자리에 인권이 가 있습니다. 온갖 수치를 무릅쓰고 아이를 낳게 하고, 믿게 하고, 가정을 이루게 하고, 그래서 매 주일 유아세례가 행해지고 있는데,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하나님의 선물인데 사과를 고르듯 선택적으로 아이를 죽인다면 오므리의 악한 권세를 점점 합법화시키는 아합 시대가 맞습니다. 이 땅의 완전함이 다인 줄 알고 품질이 나쁘면 다 골라내서 죽이고 이혼시킨다면 복음이 들어갈 기회를 원천봉쇄하는 것입니다. 이 악의 시대에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는데 수년 동안 북이스라엘에 비도 이슬도 한 방울 없는 가뭄이 있으리라고 합니다. 극심한 고통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서는 풍요의 신, 바알의 급소를 찔러야 합니다. 길르앗은 야곱과 삼촌 라반 사이에 맺은 언약의 증거의 돌무더기를 쌓은 곳입니다. 확실히 이루어질 것이라는 말씀의 증거를 가지고 예언을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두 증거의 돌들입니다. 나 같은 사람도 광야에 살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고 섬기는데, 어째서 왕이 바알을 섬길 수 있는가, 그렇기 때문에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우로를 끊는다고, 왕 앞에 나가서 담대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바알의 세상 가치관이 무너지려면 세상의 육이 무너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로가 끊어지는 것, 수년 동안 비도 이슬도 한 방울 없으리라는 말을 듣는 것이 복 중의 복입니다.
둘째, 고독과 절제의 영성을 배우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엘리야가 아합에게 가뭄재앙을 선포한 후에 아합이 엘리야를 해하려고 찾으리란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엘리야가 안전하게 피할 수 있는 장소를 알려주십니다. 그릿은 분리와 단절을 의미하는데 숨기에는 좋겠지만, 살기에는 불편한 곳입니다. 그릿시냇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들어오기 직전에 거했던 장소로서, 하나님이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양식으로 삼았던 곳입니다. 힘들어도 약속의 땅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분리하고 단절해야 하는 그릿 시댁이나 친정이 있을 수 있습니다. 결국은 다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것이니 일시적으로 좀 숨으라는 것입니다. 알아주지 않아도 생색내지 말고 스스로 감추고 숨으라는 것입니다. 가뭄이 들어도 그릿시냇가에 가기만 하면 마실 물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적용해서 가기만 하면 어떤 환경에서도 마실 물을 주십니다. 엘리야처럼 더 험한 그릿시냇가로 가라고 해도 내가 섬기는 하나님 때문에 칼같이 적용하는 분들이 최고의 MVP입니다. 엘리야 같은 그런 힘든 분들의 적용 때문에 우리가 복을 받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맹목적인 순종도 아니고, 기복적인 순종도 아니고, 구속사적인 구원의 순종을 하기 위해 끊임없이 말씀이 들리는 구조 속에 있어야 합니다. 성도의 최고의 삶은 말씀 인도 따라 사는 삶입니다. 엘리야는 말씀 인도 따라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으로 늘 갔다고 합니다. 앞으로 바알, 아세라 선지자들과 큰 영적 싸움을 치러야 하므로 고독과 절제의 훈련을 시키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큐티하면서 목장에서 묻고 가는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결정적인 날에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생명으로 인도될 것입니다.
셋째, 의외의 사람이 돕게 하십니다.
엘리야가 까마귀가 가져온 음식을 먹으며 시냇가에 숨어있는데 시내가 마르자, 다시 엘리야에게 말씀이 임합니다. 엘리야는 또 어디로 가서 혼자 어떻게 지내나 하는 불신의 갈등 없이 명령하신 바대로 행했습니다. 까마귀도 이후에 나오는 사르밧 과부도 모두 내 인생을 도와줄 것 같지 않은 부류들입니다. 우상숭배가 극심하고, 잘먹고 잘사는 것에만 혈안이 되는 사람들한테 가서 복음을 전하면 나를 싫어하고 대적할 것이 빤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나를 도와줄 사람은 이렇게 보잘것없어 보이고 힘든 환경 가운데 살아가는 과부와 같은 한 사람입니다. 항상 의외의 사람이 나를 돕는 것입니다.
2002년 6월에 남북이 연합하여 예배를 드리는 행사가 있어 평양에 가게 되었습니다. 북한은 정말 우로가 없는 땅입니다. 김일성 개인을 우상숭배 하기 때문에 깨지기가 너무 힘듭니다. 이 세상 땅끝 나라는 바로 북한입니다. 예배를 드리러 간 것인데 참석자 300명을 천 명의 감시원이 붙어서 밖으로도 전혀 못 나가게 하고 기다리라고만 하니까 예배의 소망이 더욱 커졌습니다. 사흘째 주일 아침이 되었는데도 다른 행사 참석을 요구하기에 우리는 생명을 걸고 주일예배를 사수하자고 식당에서 금식기도와 찬양을 드렸습니다. 기라성 같은 목사님들께서 말씀을 전하시는데 그때 생각지도 못했던 한 참석자가 저를 추천하신 것이 받아들여져서 제가 아합 같은 북한의 심장부 평양에서 그날 큐티한 열왕기상 17장 본문으로 회개의 말씀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연약하기에 때로는 고독으로 때로는 고통으로 우리를 훈련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의외의 사람이 돕게 하십니다. 우리의 환경을 겸손한 환경으로 바꾸어서라도 내가 섬기는 하나님이 되게 해달라고, 내가 섬기는 하나님이 여러분도 같이 섬기는 하나님이 되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