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여로보암의 길]
왕상15:25~34
하나님의 계명은 사랑에 의해 해석되어야 합니다. 윤리, 도덕적으로 사는 것이 다가 아니고 자녀를 도덕적으로 키우는 것이 잘 키우는 것도 아닙니다. 잘 키운다고 자부했던 자녀들이 다 지나고 보면 아버지의 길을 가고 있다는 고백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주에 살펴본 9절~24절 말씀의 아비얌과 아사의 행적과 통치를 보면, 연약한 가운데에서도 참된 예배를 드리는 구조에 있으니 일평생 온전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그렇지 않은 북이스라엘의 길이 나옵니다. 오늘은 아버지 여로보암의 길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1.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는 구조입니다.
왕가의 종말을 선고받은 여로보암의 후손이라도 그의 대에 심판받지 않고 왕위를 물려줄 수 있었지만 결국 북이스라엘의 왕들은 한명도 회개하지 않아 심판의 때를 앞당겼습니다. 남유다의 왕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했지만, 북이스라엘의 나답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습니다. 그는 우상숭배와 폭정의 악을 행했습니다. 이런 죄를 범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죄인의 특징인데 이 땅에서 성공해서 잠시 잘 사는 것 같지만, 내일이 없이 사니 가장 무서운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여로보암의 길이 원죄같이 되어 북이스라엘 모든 왕이 그 아비 여로보암의 길을 예외 없이 동일하게 가게 됩니다.
2. 아비 마귀에게서 난 길입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서 예수님께서 유다 종교지도자들에게 마귀의 자식이라고 말한 것은 참기 힘든 모욕이며 폭탄선언이었습니다. 하지만 누구든지 예수를 거부하면 마귀의 자녀입니다. 중간이 없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거부하고 죽이려 하는 것으로 그들이 마귀의 자녀라는 것이 객관적으로 증명하였습니다. 이것이 이 세상 사람들이 가는 길입니다. 아비 마귀는 자녀들에게 금송아지 마귀권세를 물려주고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대를 이어 마귀의 길로 가게 합니다. 금송아지가 돈이요 권세니 따라가는 것입니다. 마귀의 자식이라는 결정적 증거는 욕심과 미움과 거짓으로 나타납니다. 처음부터 살인한 자라는 것은 마귀가 가인의 배후에서 역사한 것을 의미하며, 거짓말쟁이와 거짓의 아비라는 것은 마귀가 모든 거짓의 배후요 스스로 거짓말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요한복음 8장 45절에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유는 예수님이 진리와 사실을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말씀하시니 마귀에게 속한 자들은 절대 안 듣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상 최대의 살인은 예수님을 사단의 하수인인 유대 기득권자들이 로마 공권력을 동원해 죽인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 믿지 못하게 미혹하는 금송아지 기복의 복음이 문제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금송아지 우상을 너무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금송아지 섬기는 벧엘로 가야 하니 그 아버지 마귀의 길을 대부분 따라갑니다.
3. 모반을 당하는 길입니다.
나답이 죄 가운데 행하니 모반을 일으킨 바아사의 손에 죽임을 당하는데, 이는 우연이 아닌 죄의 결론입니다. 바아사의 반란에 의한 나답의 죽음은 여로보암 왕조의 종말을 의미합니다. 모반은 다른 것에 묶거나 맨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끼리끼리 만나서 비슷한 부류끼리 유대관계를 맺다 보면 모반이 일어납니다. 바아사가 모반한 것은 다른 이들과 이미 계약하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미 사람들의 마음이 바아사 쪽으로 기울었다는 것을 나답이 모른 것입니다. 이렇게 정치를 하니 날마다 모반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거역하면 인간관계에서 배신을 당하는 사건을 주십니다. 국가와 직장의 모반 외에 부부관계에서도 모반이 일어나는데 그것이 가장 파괴력이 큽니다. 사람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가장 영적인 것은 회개입니다. 따라서 서로 회개가 되면 서로 통하여 저절로 사람이 됩니다. 밖에서 배우자가 바람을 피워도 아비 마귀에게 속한 것이라 인정하고 내가 회개하며 그를 기다릴 때 진정한 회개로 나아가게 하십니다. 부부간에도 분열이 일어나면 돈도 못 모으고 되는 일이 없습니다. 한편 교회가 한마음과 신뢰가 없다면 되는 일이 없습니다. 교회가 분열되면 영혼 구원이 일어나지 못하고 사역도 중단되는 것입니다.
4. 말씀대로 이루어질 심판의 길입니다.
바아사가 나답을 살해했음을 거듭 강조합니다. 북이스라엘이 블레셋과 대치하는 위기국면에서 왕이 살해되는 것은 마귀의 자녀들이 당하는 전형적 모습입니다. 참된 예배의 구조속에 있으니 아비얌은 왕위계승을 잘했는데, 북이스라엘은 안되었습니다. 바아사가 왕이 되어 여로보암의 온 집을 쳤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아사를 통해 나답을 왕위에서 폐위하고 그 집안을 멸망시키셨습니다. 이 세상은 다 여로보암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여로보암의 온 집안이 다 멸절당했는데, 병들어 빨리 죽은 여로보암의 아들 아비야가 축복을 받은 것이 이제야 이해됩니다. 사명 때문에 살려두실 수도 있고, 데려가실 수도 있는 것입니다. 열왕기의 말씀을 보면서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100% 옳으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당한 일이 비참해도 말씀과 같이 된 심판이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고 여로보암의 길로 가지 말라는 경고를 잘 받아야 합니다. 여로보암의 범죄가 이스라엘의 범죄로 이어지고 하나님을 노엽게 하여 후손들도 노여움을 받아 고난을 겪었습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믿음의 조상들이 너무도 중요한 것입니다. 여로보암 집과 다윗 집을 비교해 보면 남북 모두 산당 제사를 드렸는데, 다윗 집안은 살려주셨습니다. 이는 행위보다 중요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5. 일생동안 전쟁이 있는 길입니다.
결국 바아사가 왕이 되며 여로보암 왕조는 무너집니다. 나답이 한 일은 깁브돈을 포위하고 공격하려고 시도한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권세는 결국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습니다. 아사가 41년간 통치하며 전쟁이 계속 있었습니다. 아사의 2차 종교개혁 후에 다시는 전쟁이 없지만 역대상16장 1절에 전쟁 기사가 나옵니다. 우리 인생에도 계속 전쟁이 있지만, 이것을 하나님의 전쟁으로 선포하면 이것이 내 전쟁이 아니기에 다시는 전쟁이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공동체의 한 집사님도 당대 신앙으로 교회 나오면서 술, 담배, 음란, 골프 모임을 끊어내는 적용을 하였는데, 더 악한 자기 의와 생색이 올라왔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아내가 유방암에 걸려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자, 이를 잊고자 캠핑카를 구해서 전국을 유랑한다고 하며 도망가려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회개의 고백 없이 중독을 끊으니 죄짓고 싶으면 공동체를 떠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전에 없던 스트레스와 생색으로 화를 내니 혈압이 올라가 뇌혈관이 부풀어 뇌동맥류 색전술 시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교회 공동체에 붙어 있다 보니 비본질로 본질을 무너뜨리지 말라는 말씀이 들렸습니다. 이분의 적용은 마음이 요동할 때마다 큐티 책을 보고, 죽기 전까지 나외의 전쟁이 있으니 공동체에 잘 붙어가겠다고 고백했습니다.
아버지 여로보암의 길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주님의 시선으로 보지 못하고,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며, 마귀에게서 난 길입니다. 거짓과 살인이 우리 마음 가운데 있으니 모반을 당하고 일생 전쟁이 있는 길입니다. 이 길에서 떠나 전쟁이 그치려면 우리가 주님의 시선으로 주님을 보며, 모든 시선을 주님께 드리며 나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