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평생 여호와 앞에 온전하였으며]
왕상 15:9~24
요즘, 스카이 캐슬 등 자녀교육의 문제가 모두 부모의 문제로 비하되어서 신문에 오르내리는 일들이 많습니다. 좋은 부모, 나쁜 부모가 없다고 했는데, 자녀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못할 것이 없는 부모를 최고로 치고, 그렇지 않으면 지질한 부모로 여기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돈 벌기 위해 악하고, 벌고 나면 음란한데, 많이 벌수록 매너리즘에 빠져 새로운 재미를 찾으니, 재력이 되는 만큼 더 쾌락과 음란에 빠지게 됩니다. 정말 칼날 위를 걸어가는 모습이 있지 않으면 매너리즘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일평생 여호와 앞에 온전하기가 쉽지 않은데, 아사 왕이 일평생 여호와 앞에 온전했다고 합니다. 오늘은 아사의 온전함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부모를 통과했습니다.
아사라는 이름은 의사, 치료자라는 뜻입니다. 이름대로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바로 서게 하는 치료자 역할을 했습니다. 아사는 참된 예배를 드리는 구조 속에서 개혁을 단행했는데 남색 하는 자를 그 땅에서 쫓아내고 가증한 아세라 목상을 섬긴 태후의 위를 폐했습니다. 아사랴의 계속되는 설교와 양육으로 사방에 평안을 주셨기 때문에 우상을 섬기는 사람까지 모두 척결했는데 거기에는 가증한 아세라 목상을 섬긴 태후도 예외가 없었습니다. 아세라의 어원의 뜻은 예수 없는 행복의 우상, 우리의 인생을 깨뜨리고 구멍을 뚫는 무시무시한 형상의 혐오와 가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아가 어머니 태후의 영향력 때문에 온전하지 못했던 르호보암 할아버지, 아비얌 아버지를 객관적으로 보았기에 어머니를 폐위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에게 잘하는 어머니를 객관적으로 보는 것은 상한 심령이 아니고는 불가능합니다. 역대하에 보면 아사랴의 말씀이 굉장히 길게 나오는데, 좋은 왕에게는 항상 좋은 선지자가 있고, 아사는 말씀이 들리기 때문에 아사랴의 조언을 들었습니다. 아사는 영적인 곳, 기드론 시냇가에서 우상을 찍고 빻았는데 어디서 우상을 찍고 빻아야 하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아세라 우상을 불사르고 어머니를 내친 것이 얼마나 큰 사랑인지 모릅니다. 이 땅에서 나의 우상이 불살라지는 것은 축복입니다. 구원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같이 가는 통과의 대상입니다. 부모를 객관적으로 보고 구원받아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으면 이런 적용은 불가능합니다. 금과 은을 비롯한 기명들과 같은 전리품들을 여호와의 전에 바친 아사의 행동은 솔로몬이 자기를 위해서 은과 금을 쌓은 모습과는 대조가 됩니다. 그는 물질 문제에도 온전했다고 보입니다.
둘째, 일평생 온전하였으나 일생 전쟁이 있습니다.
일생 전쟁이 있다는 표현을 역대하(15:19)에서는 다시는 전쟁이 없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역대기는 남유다 전쟁의 긍정적인 표현을 강조하기 위해서 쓰였습니다. 아사가 통치하는 41년 동안 20년은 평안하고 나머지는 각종 전쟁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전쟁이 있는 것도 맞고, 다시는 전쟁이 없었다는 것도 맞습니다. 영적으로 보면, 똑같이 전쟁이 있었어도 일생 전쟁이 있었다는 것과 내 인생에 다시는 전쟁이 없다는 것은 믿음의 분량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사가 종교개혁을 하고 태후까지 다 물리쳤는데, 갑자기 북이스라엘의 바아사왕이 라마를 건축해서 유다와 이스라엘의 왕래를 하지 못하게 했답니다. 바아사는 북이스라엘 백성이 예루살렘 교회로 가는 것을 막고, 종교적 정치적 이유로 모든 자유로운 왕래를 끊어버리고자 한 것입니다. 라마를 건축하기 위해 바아사가 남유다를 공격하며 남침을 하니, 남유다는 구스와 전쟁을 하느라 병력이 약화 되었기에 벤하닷에게 은금을 모두 가져다 주며 여호와께 묻지 않고 군사적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것은 이방의 군대를 끌어들여 동족을 치고, 남북 이스라엘의 침공의 길을 확보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바아사가 벤하닷의 공격으로 급히 군사를 철수하는 바람에 모든 건축 물자를 그대로 두고 떠났는데, 아사 왕이 전국적 규모의 부역을 시행해서 성읍을 건축했다고 하니 정말 얍삽 합니다. 첫 번째 개혁에서는 전쟁이 없었지만, 지금은 전쟁이 징계로 왔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마지막 평가가 되어야 합니다.
아사 왕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지만, 산당은 제거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아사의 마음이 일평생 여호와 앞에 온전했다고 평가해주십니다. 아사 왕은 절대 권력을 누리면서 벤하닷에게 뇌물을 주고 선견자 하나니를 옥에 가두고, 하나니와 같은 편의 백성을 학대합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이 징계로 늘그막에 발에 병이 들었는데, 역대하에서는 발에 병이 들어 매우 위독했으나 여호와께 고하지 아니하고 의원께 구했다고 자세히 불순종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아사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예수 믿고 옛 성품이 없어지고 새 성품이 덧입혀지는데, 옛 성품 새 성품이 50:50으로 시작해서 51:49, 52:48...이렇게 하나씩 옛 성품을 죽여가는 것이 열다섯 광야를 통과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90:10까지 변화되었다고 해도 안 변하는 10이 있기에 늘 온전하지 못합니다. 유다는 일생 부족해도 하나님을 찾은 일이 너무도 많았기에 하나님은 그를 긍휼히 여기셔서 다윗의 등불로 인도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의 참된 예배를 드리는 구조 속에 있으니 나는 온전치 못하나 주님이 나를 온전하다고 칭해주시는 이 놀라운 은혜를 우리가 보게 됩니다. 낙심하지 말고 여호와를 찾기 바랍니다. 우리의 마지막 평가가 반드시 일평생 온전했다고 하는 이 평가를 받게 될 줄 믿습니다.
외모, 학벌, 인맥이 없어 돈을 모으는 것으로 금 방패로 삼고 절약하며 열심히 살았던 실버 목장 목자님의 고백입니다. 건강검진에서 위암이 유방, 임파선, 등뼈까지 전이 되었다는 흉한 소식을 받고 택자로 인치시며 돌아보고 정리하고 회개할 기회를 주셔서 할렐루야가 되었다고 합니다. 돈을 어떻게 쓰는가가 중요하다는 말씀이 큰 은혜가 되어, 목회자 세미나에 참석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힘든 목회자, 돈이 없어 치료받지 못하는 환우들, 교도소에 큐티인 제공을 위해 물질적 후원을 서원하셨습니다. 예배드리는 구조에 있다 보니까 암에 걸려도 이렇게 감사함으로 할렐루야를 하시니, 이것이 하나님께서 일평생 온전했다고 평가해주시는 마지막 평가가 아닐까요? 여러분 모두 나는 온전치 못하나 주님이 온전하다고 해주시는 평가를 받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