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을 견고케 하신 하나님]
왕상15:1~8
우리나라는 불교 1500년, 유교 500년 이상 내려온 세계 최하위 빈민국이었지만,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백 년 만에 지금은 선교하는 나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정치적으로도 여전히 낙후된 우리나라가 세계 10위권에 들어가는 나라가 되었다는 것은 동방의 예루살렘인 우리나라를 견고케 하신 하나님의 은혜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남유다의 르호보암에 이어 2대 왕으로 등극한 아비얌도 온전치 못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을 견고케 하신 하나님이시라고 합니다. 무엇을 견고케 하셨는지 보겠습니다.
첫째, 우상의 아들 아비얌을 견고케 하십니다.
유다 왕의 연혁을 이야기할 때 꼭 이스라엘 왕의 연혁도 같이 나옵니다. 비록 이스라엘과 유다가 분열되었을지라도 하나님은 이들을 항상 동일하게 자기 백성으로 여기시고 그들 모두를 잊지 않으심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다윗의 유다는 예수님이 오시는 직계 조상의 역할을 하고, 옆에서 괴롭히며 수고하는 요셉 지파 여로보암의 역할이 있습니다. 마지막에는 하나가 되지만, 때가 될 때까지는 역할이 있습니다.
아비얌은 얌의 아들, 즉 바다신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역대하에는 나의 아버지는 여호와라는 뜻의 아비야로 기록되어 있지만, 오늘 본문에서 아비얌이라고 쓰인 것을 보면 당시 무역이 국시이다 보니, 바다신의 아들이라는 이름이 좋아 보였던 것 같습니다. 암몬 여인 이방 할머니 나아마의 영향이 컸고, 그만큼 우상에 빠졌다는 증거입니다. 르호보암이 아내 열여덟 명과 첩 육십 명을 거느리고 아들 스물여덟명과 딸 육십 명 중에 마아가의 아들 아비얌을 후계자로 세웠으니, 마아가 입장에서는 남편 사랑받고 아들은 왕위에 앉히는 홈런을 쳤습니다. 그러니 다윗같이 온전한 마음을 가지기가 참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연약할수록 자식은 마마보이가 되고, 엄마는 자녀우상인 것을 보게 됩니다. 성공의 아이콘인 아비얌이 아버지가 행한 모든 죄를 행했다고 합니다. 아비얌은 한마디로 다윗과 같은 상한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둘째, 온전한 마음이 안되는 것을 견고케 하십니다.
3절부터 5절은 다윗 이야기를 반복하시며 다윗은 온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다윗만 생각하면 열다섯 광야를 주신 것도 안타깝고 반면에 다윗이 그 길을 간 것이 대견하고 또 대견한 모양입니다. 앉으나 서나 내 아들 다윗, 다윗의 길로 행했기 때문에 너를 축복한다고 하십니다. 아비얌은 오늘 1절부터 8절까지 그냥 온전치 못한 나쁜 놈이라는 얘기밖에 없습니다. 역대하에 보면, 아비야가 여로보암을 쫓아가 북이스라엘의 죄를 지적하면서 성읍을 빼앗고 그곳을 벧엘과 그 동네들이라고 합니다. 역대기 저자가 이 사건을 중요하게 다룬 것은 금송아지와 여호와의 싸움이기 때문에, 그리고 첫 번째 벧엘을 전리품으로 소개한 것은 벧엘에 금송아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병력으로 유다가 50만 명을 죽인 이 승리는 이후 아사 시대 평화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열왕기 기자는 아비얌이 일생 왕으로서 한 일이 고작 북이스라엘 왕 여로보암과 전쟁한 것밖에 없다고 기록합니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온전함의 기준이 다윗입니다. 그렇다고 다윗이 온전했을까요? 다윗 역시 수많은 죄를 지었지만, 아비얌은 다윗과 달리 우상숭배라는 죄악 된 행위의 뿌리로 인해 하나님 앞에 온전치 못한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인생은 온전할 수 없습니다. 온전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 온전한 것입니다.
셋째, 등불을 주시는 하나님 때문에 견고케 하십니다.
다윗을 위하여 예루살렘에서 그에게 등불을 주신다고 합니다. 등불을 뜻하는 미르는 후손을 상징하는 말로써 오늘 본문에서 유다 왕족을 이을 후계자를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죄악을 징계하시되 왕권 자체를 파하지는 않으시고, 한 지파를 주어 다윗왕권의 명맥을 유지할 것을 약속하셨는데 이 언약이 죄 많은 솔로몬의 뒤를 이은 죄 많은 르호보암에 이어 죄 많은 아비얌에서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그 통치 장소를 예루살렘으로 제한한 것이 가난한 마음을 가진 한 지파의 축복입니다. 상한 마음이 바로 견고케 하시는 것입니다. 혼자서는 갈 수 없습니다. 등불은 넘어지면 꺼지지만, 그래서 서로 동행하며 내가 꺼지면 누군가 밝혀주고, 누군가의 등불이 꺼지면 내 등불로 밝혀주면서 점점 길이 밝아지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나라를 견고케 하는 일입니다. 다윗이 우리아를 죽였지만, 그 일로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나단 선지자를 통해 죄를 지적하실 때 자기 죄를 인정하고 분수령적인 회개를 했습니다. 온전한 마음은 죄에서 돌이키는 마음입니다. 유턴하여서 일평생 상한 마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죄에 대해 인식하는 만큼만 온전한 마음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등불, 영적 후사가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주홍글씨 같은 죄패가 다른 사람을 밝혀주는 선물이 되고 있습니까?
넷째, 전쟁으로 견고케 하십니다.
아비얌과 여로보암 사이에도 전쟁이 있었다고 합니다. 부모, 아들 세대에도 대를 이어 전쟁을 했다는 것입니다. 원통함을 풀지 않는 것입니다. 아비얌이 하나님나라를 위해 전쟁을 치렀다고 하지만, 속지 않으시는 하나님은 아비얌이 오십만 명을 쳐부숴도 온전치 못하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르호보암과 남유다 백성들에게 형제인 북이스라엘과 싸우지 말 것을 분명히 명하셨습니다. 사는 날 동안 전쟁이 있었다고 하는데 싸우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겨도 져도 하나님은 너무 슬퍼하십니다. 구원받았음에도 계속 죄 가운데 살면서 약속의 자녀 같지 않게 이기기 위해 산다는 것은 믿음과 상관없는 일입니다. 다윗은 평생 사울과 가장 사랑하는 아들까지도 자신을 죽이려 했어도, 다윗은 끝까지 그들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다윗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구별되게 사는 거룩입니다. 세상 나라와는 다른 결정을 해야 합니다. 아비얌이 선친 르호보암처럼 하나님 앞에서 범죄한 인생을 살았지만, 마지막에 한지파는 회개하고 천국에 갔습니다. 하나님은 남유다의 왕위 후계자를 다윗을 통해 끝까지 등불을 주시며 다윗 가문을 돌보셨습니다. 십년 전, 초신자로 우리들교회 온 한 집사님이 회개하며 울고 웃고 십 년을 수일같이 공동체와 하나가 되었는데 언제부터인지 초심을 잃고 스스로 의롭다 여기며, 요즘 말씀 듣기를 힘들어하는 아내에게 네 죄를 보라면서 날마다 넘어진답니다. 별로 고난이 없을 때는 모든 말에 걸려 넘어질 수 있는데 예루살렘을 견고케 하신 하나님이 참된 예배의 구조 속에 상한 심령을 주시고, 등불을 주셔서 견고케 하실 줄 믿습니다. 다윗의 상한 심령이 되기를, 오십만 명을 죽이고 전쟁에서 승리해도 옳지 않고, 오직 예수 믿는 게 최고다, 그렇게 말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어떤 고난을 주셔도 합당하다고 고백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