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례를 행하라]
최대규 목사
여호수아 5:1~9
여호수아서 말씀을 보면서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여리고성이 무너지는 기적이 내 안에서 일어나면 좋지 않을까라는 기대가 여러분 가운데 다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보면 이것이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순종 뒤에 하나님이 이런 일을 행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여호수아서가 순종의 책입니다. 우리가 승리하고 싶어 합니다. '어떻게 승리할까?' 가 아니라 '너희가 어떻게 순종해야 하는가'를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통해 가르쳐주고자 하십니다.
첫째, 다시 할례를 행하라고 하십니다.
5장 말씀이 오늘 우리가 마땅히 행해야 할 순종에 대해서 말씀해주고 계십니다. 요단강을 건넌 여호수아 군대가 희소식을 듣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이 지금 마음이 녹고 정신을 잃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지금 전쟁하기 딱 좋은 때입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할례를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상황은 여리고 성을 쳐라!라고 말씀하셔야 할 것 같은데, 너의 몸을 베는 칼을 만들라고 하십니다. 내가 만든 내 칼로 원수가 아니라 나를 찌르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은 내가 다 찔려야 될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여리고를 말씀에 대한 철저한 순종으로 무너뜨리실 계획이셨습니다. 그런데 여리고를 칼로 무너뜨려야 된다는 것은 내가 생각한 내 방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내 계획대로 싸우겠다는 고정관념을 깨트리지 않으면 절대로 하나님 말씀을 이해할 수 없고 따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왜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까지 몰고 가시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그것은 주님의 방법으로 싸우라고 계속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내 고정관념을 깨트리기 위해서는 나의 주어를 바꾸어야 합니다. 내 계획이 아니라 주님이 가지고 계신 계획이라는 고백을 자꾸 해야 됩니다. 말씀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견디기 힘들 때가 많은데 이것은 여리고를 무너뜨리기 위함이 아니라 나를 깨트리려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할례가 뭐기에 절체절명의 순간에 하나님은 할례를 명하셨을까요? 할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 백성이 되는 징표인 동시에 언약의 표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땅과 자손을 약속하시면서 할례를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네가 내 백성이라는 표시입니다. 할례의 상처가 아무는 며칠 동안 그냥 가만히 누워만 있어야 합니다. 할례를 받는다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신뢰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이 환경은 사실 할례 받은 환경입니다. 누군가가 나를 힘들게 해서 하나님밖에 없는 것이 지금 내가 할례 받는 중인 것입니다. 내가 왜 이렇게 아무것도 할 수 없이 꼼짝 없이 누워만 있어야만 합니까? 그것은 적군이 아니라 주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변하지 않는 환경 때문에 우리는 나에게 주신 약속을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이들은 한 번도 할례받지 않은 사람들인데 다시라고 하시면서 나는 너에게 한 그 약속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말씀해 주십니다. 우리의 어떠함과 상관없이 여전히 나를 하나님 백성으로 삼으시며 결국에는 가나안 땅으로 이끌어 가시는 주님의 약속은 지금도 유효하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몸에 배어있는 죄악을 잘라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할례는 자신의 몸 한 부분을 잘라내어 내 몸에 흔적을 남겨서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를 기억하며 지키는 것입니다. 신앙은 마음으로만 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는 마음으로 드리는 게 아니라 몸으로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말만 사랑한다고 사랑하는 게 아니고 몸이 가는 수고와 사랑이 있는 것이 신앙입니다. 몸에 익힌 것은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공동체에 붙어가는 것은 몸으로 익히는 것입니다. 몸으로 계속 우리 삶에 신앙을 익혀 나가는 것입니다. 나도 모르게 내 몸에 배어있는 죄가 너무 많습니다. 노력하지 않아도 내 몸이 죄짓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광야 생활을 마치고 돌아가려고 하는데 그들이 몸에 익힌 악한 것들, 나쁜 것들, 악한 습관들이 누구로부터 온 것입니까?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음성을 청종하지 아니함으로,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고 거역하고 믿지 않은 부모세대들의 모습을 자녀들이 보았고 들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자녀들이 부모님의 부부싸움, 재혼, 이혼, 바람, 도박, 폭력, 욕, 술, 담배, 중독, 자살, 혈기, 무시, 자기 말만 하는 것, 강압적인 것, 나를 조롱하는 것, 이 모든 것들을 자녀들의 몸에 익히고 있습니다. 우리 몸에 밴 욕심이 많고 우리 몸에 편한 것을 추구하기에 익숙해진 것이 너무 많습니다. 하나님은 그것들을 몸에서 하나씩 제거하고 베어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이 꼼짝 못 하는 할례 상황이 여러분의 죄가 끊어지는 상황이 될 줄 믿습니다. 좋은 부모 나쁜 부모 없이 예수 믿게 해준 부모가 최고의 부모입니다. 여러분 자녀의 몸에 여러분은 무엇을 배게 하실 것입니까? 지금까지는 여러분이 원하든 원치 않든 여러분의 악이 여러분의 자녀에게 배었습니다. 이제는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예수님의 피 묻은 십자가가 조금이라도 배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세 번째, 수치를 제하려고 할례를 행하라고 하십니다.
수치가 높이 쌓여있던 산의 이름을 이제 굴러간다는 뜻의 길갈로 바꾸어주셨습니다. 사백 년간 애굽의 노예로 살았던 수치가 있고 사십 년간 광야의 방랑자로서 살았던 수치가 있습니다. 수치를 잘라내지 않고 전쟁을 치르면 복수심과 적개심에 불타오르며 내 손에 온갖 피를 묻히는 전쟁이지만 수치를 잘라낸 전쟁은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는 전쟁이 됩니다. 우리도 예수 믿는다고 큰소리치지만, 잘 살기는 커녕 아직도 그렇게 사냐는 조롱과 수치를 당합니다. 그런데 그 수치를 우리가 상처로 받는 것은 예수님 없이 잘 사는 것을 여전히 부러워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고난 당하는 것이 더 나은 삶이라는 것을 인정하면 그들의 온갖 수치와 조롱은 사실 그들을 향한 애통함이 됩니다. 예수님이 수치스럽게 십자가를 지셨는데 예수님은 자신이 당한 수치 때문에 단 한 순간도 괴로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죄를 깨닫지 못하는 백성들 때문에 애통하셨습니다. 내 존재가 하나님 앞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 깨달아지면 수치에서 헤어나올 수 있습니다. 내가 사명의 길로 가야 사람들의 조롱에서 갇혀 살지 않게 됩니다. 수치를 당하지 않으려고 적당하게 포장한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자유롭지 못합니다. 수치심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끊어집니다. 내 안에 쌓여있는 수치의 산들을 굴려 보내야 합니다. 말씀으로 하나씩 굴려내고 간증으로 하나씩 굴려내고 이렇게 굴려 내다보면 그 자리가 감사의 예배 자리가 됩니다.
수련회 저녁 집회를 마치고 난 다음에 아이들 새벽 네 시까지 시키지도 않았는데 여호수아 말씀을 큐티하고 나눔을 하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힘든 아이들이 자신의 고난과 수치를 이야기하면서 굴려 보냅니다. 수치를 당한 아이들이 어떻게 이 수치심과 복수심에 사로잡히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이미 자녀들의 몸속에 배어있는 죄악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거두어질 수 있겠습니까? 내 몸에 예수께서 남겨주신 십자가를 새기고 우리가 한 걸음씩 걸어간다면 우리의 자녀들이 혹 내가 남겨준, 배게 한 것들도 있지만 내가 남겨준 할례를 이어서 받지 않겠습니까? 여러분들이 믿음의 도전을 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