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불 땅]
왕상9:1~28
다윗과 솔로몬이 다 히람과 친했어도 다윗은 분별하고 넘어가지 않았는데, 솔로몬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다윗이 잘 나서가 아니라 죄 많은 인생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고난을 해석했기 때문에 구속사적으로 히람을 분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솔로몬이 성전건축을 마치고 히람에게 대가로 준 땅의 이름이 아무것도 아닌, 무가치한이라는 뜻의 가불이라고 합니다. 여러분도 열심히 살았는데 아무것도 아닌 가불 땅이 된 일이 있습니까? 우리 인생에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가불 땅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첫째, 서로의 이해타산 때문에 가불 땅이 되었습니다.
솔로몬이 이십 년 만에 성전과 궁전건축을 완성했습니다. 두로 왕 히람은 이 기간에 건축을 위해 온갖 소원대로 필요한 목재와 기술을 제공했고, 히람의 헌신적인 자세와 솔로몬의 불성실한 태도는 대조됩니다. 솔로몬이 히람에게 준 이십 개 성읍이 두로가 필요로 하는 농경지가 아닌 산지로 아무짝에 쓸모없는 땅이었습니다. 그래서 붙인 이름이 가불입니다. 가불은 이스라엘 맨 끝 경계에 있습니다. 경계에 있다고 주었지만,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의 경계 안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이곳이 후에 예수님께서 사역을 처음 시작하신 갈릴리 지방입니다. 다행히 하나님의 섭리로 이후에 다시 이스라엘에 돌아왔지만, 솔로몬이 이 세상 정치 관계에서 보여준 이해타산적인 관계는 앞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여실히 드러날 것을 보여줍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기 원했다면, 성전을 짓고 거기서 예배를 드리기 전에 이웃과의 관계를 먼저 올바로 해야 했습니다. 여러분은 경제가치가 없는 자녀, 부모, 배우자라서 버리고 싶습니까? 가불 같은 내 자녀와 배우자 때문에 천국을 알게 됩니다. 무가치해 보이는 나의 모든 고난의 가불 땅을 보석처럼 끼고 있으면 그 가불이 약속의 땅이 됩니다. 그 가불은 가치를 환산할 수 없는 최고의 땅이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불신결혼했기 때문에 가불 땅이 되었습니다.
솔로몬의 불신결혼 여파로 역군과 마병과 노예가 등장합니다.
(1) 역군을 일으킵니다.
솔로몬이 성전부터 짓고, 왕궁을 짓고 나서 그다음 국방을 위해 성곽과 요새를 건축했으니, 우선순위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건축을 하기 위해 솔로몬이 역군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모세는 성막 지을 때 역군 일으켰다는 말이 없습니다. 모세 때는 백성들이 예물도 가져오고, 모두 자원해서 지었는데 솔로몬은 백성들이 헌금했다는 이야기도 없이 오직 히람하고만 놉니다. 그러니 역군을 일으킵니다. 역군을 일으킨 이유가 바로의 딸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불신결혼의 여파가 정말 무섭습니다.
(2) 마병의 성을 건축합니다.
하나님은 애굽으로 돌아갈까 봐 왕은 말을 두지 말라고 하셨는데 솔로몬은 말을 두는 것뿐 아니라 마병의 성까지 건축했습니다. 성전 짓는 솔로몬의 열심이 하늘을 찌릅니다. 바로의 딸 때문에 끊임없이 애굽을 의식하고 있습니다.
(3) 노예를 삼습니다.
건축하면서 안 믿는 가나안 사람들을 다 노예로 삼았습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사람들을 쳐서 멸하라고 하셨지, 남겨두었다가 노예로 삼으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묵상하지 않으면 이렇게 타협하고 싶은 유혹에 많이 빠지는데, 솔로몬은 특히 일이 눈에 보이기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해석합니다. 하나님은 늘 구속사적인 맥락에서 세상적인 것은 남겨두지 말고 멸하라고 하시는데, 다 멸하지 않고 남겨둔 가드 사람 중에서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다윗을 괴롭히는 골리앗이 나왔습니다. 내가 세상적인 것을 완전히 끊어내지 못하면 그것이 나를 위협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로의 딸을 이방인이라고 다윗 궁에 거하지 못하게 하니까 솔로몬은 백성들 눈치를 보면서 바로의 딸과 함께하지도 못합니다. 학벌, 재산, 다 따지고 결혼했어도 서로 가치관이 다르면 함께 거하지 못할 일이 많습니다. 결혼해서 예수 믿게 하면 될 줄 알지만, 솔로몬도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솔로몬도 장자가 아니라는 열등감으로 인한 과시욕이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여러분도 보이는 게 좋아서 나를 떠받들어줄 노예를 구하느라 결혼한 것은 아닙니까?
셋째, 예배가 예배답지 못해서 가불 땅이 되었습니다.
성전공사가 6장, 7장, 9장에도 마쳤다고 하고, 마치니라 전에 세 번씩 제사와 분향을 올려드렸다고 합니다. 구원과 성화와 종말론적인 인생, 즉 성전은 마치는 게 없고 끊임없이 지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유형의 성전이 있으니까 예배가 정착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불공정거래하고, 음란하고, 역군, 마병의 성, 노예로 삼고, 실컷 죄짓고 있다가 예배 열심히 드렸다고 합니다. 솔로몬은 이렇게 열심히 예배드리지만, 친구가 오직 안 믿는 히람 뿐입니다. 인생이 고난 덩어리라 삶 자체가 예배였던 다윗은 공동체가 있었지만, 부자하고만 교제한 솔로몬은 공동체가 없었습니다.
오늘 공동체 고백은 솔로몬처럼 자신의 왕궁을 만들고 싶었다는 집사님의 간증입니다. 가난한 부모님을 가불처럼 무시하면서 돈의 노예가 되어 자신을 역군 삼아 치과의사가 되었지만, 성공하자 음란한 문화에 물들었답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병원에 불이 나고 투자하는 곳마다 망해서 아내를 다단계까지 시켰는데, 아내와 고등학생 딸이 암에 걸렸답니다. 그제야 비로소 이분이 목장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거기서 한결같이 따뜻하게 대해주는 믿음의 지체들과 함께 큐티하면서, 예수 믿게 해주신 부모님을 가불이라고 무시하고 가족들을 병들게 한 지난 죄를 목장에서 날마다 나누며 하나님의 성전을 지어가고 있답니다.
목장에 들어가는 것이 살길입니다. 나의 가불을 잘 받아들여서 환산할 수 없는 가치의 약속의 땅이 되고, 삶 자체가 예배가 되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