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리]
왕상 8장1-21절
사람이 제자리를 지킨다는 것은 참 위대한 일 같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자녀 등 너무나 많은 자리가 있는데 제자리를 잘 지킨다면 이 세상은 천국일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일이 가장 어렵습니다. 그래서 제 자리를 잘 지키는 것에 대해서 오늘 생각해보겠습니다.
1. 제자리는 언약궤를 안치하는 자리입니다.
한마디로 말씀이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8장 성전봉헌의 가장 절정은 하나님의 언약의 상징인 언약궤가 솔로몬 성전에 안치되는 과정입니다. 솔로몬 성전은 이방인인 두로의 왕과 종이 안과 밖을 다 지었습니다. 영적으로 도무지 통하지 않는데도 이 사람 저 사람 겪으면서 성도가 제 믿음 제 자리를 지키는 것이 가장 성전을 잘 짓는 것입니다. 성전을 완공하고 모든 기구와 모든 사람이 한 자리에 모여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언약궤, 말씀입니다. 우리의 삶도 중심에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각자의 성전건축방법이 다 다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설계와 식양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20년 동안 성전을 준공한 목적은 지성소에 안치할 언약궤 때문입니다. 그 궤 안에는 두 돌판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돌 판은 우리와 약속하신 말씀이고 모세가 시내 산에서 받은 돌 판입니다. 제자리를 찾지 못했던 언약궤가 480년 만에 제자리를 찾았습니다. 각자의 자리를 찾는 것은 말씀이 제자리를 찾지 않고는 힘이 듭니다. 말씀은 우리의 죄를 보여주고 100% 죄인인 자기 주제를 보게 해주기 때문에 제자리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전이고, 이 성전을 잘 가꾸어가려면 말씀으로 인도함을 받아야 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임해야 자기 자리를 잘 지키게 됩니다.
2. 제자리는 사명의 자리입니다.
제사장이 성소에서 나올 때 구름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했다는 것은 진정한 성전이 된 싸인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에 대한 상징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사장이 영광의 상징인 구름으로 말미암아 능히 서서 섬기지 못했다고 합니다. 죄인인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면 이처럼 두려운 게 당연합니다. 구름 속으로 들어가면 영광이 있는데 십자가가 너무 싫은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육적인 것도 포기 못하고 거룩한 것도 따라가기 어려우니까 능히 서서 섬기지를 못합니다. 고난이 와도 축복이고 영광이 가득한 사건인데 해석이 안 되는 것은 아직도 붙들고 있는 것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 식구의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내가 피하고 싶은 어려움과 고난을 통해서 거기에 들어가게 되면 거기가 주께서 영원히 계실 처소가 됩니다. 그러려면 누군가 말씀으로 인도를 해야 됩니다. 모세가 빽빽한 구름 가운데에서 본 하나님의 영광을 증거하는 것이 말씀사역이라고 했습니다. 모세가 고난을 겪으며 살았던 모든 것이 말씀으로 해석되니 십계명 돌 판을 갖고 내려와서 출애굽기 20장부터 쫙 설명을 해줍니다. 말씀이 내 안에 있으면 사명으로 나가야 합니다.
3. 제자리는 축복의 자리입니다.
내가 주를 위하여 계실 전을 건축할 마음만 가져도 온 회중을 축복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집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면 남을 축복하는 인생이 됩니다. 내 두려움과 욕심이 조금씩 없어져가니까 담대함이 생기고 다른 사람의 영혼을 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위해서는 우리가 굉장히 조심해야 되지만 하나님을 위해서는 담대함도 있을 수 있어야 합니다. 때에 맞게 지혜와 담대함을 주시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 온 회중을 축복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잘 될 거야, 너는 뭐든지 잘할 거야.' 이런 게 축복이 아니고 내 힘든 환경에서 말씀으로 살아난 간증이 다른 사람을 최고로 축복합니다.
4. 제자리는 택함 받은 자리입니다.
축복자의 자격은 자기 의가 아니라 겸손입니다. 내가 성전을 지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하나님의 손으로 이루신 것입니다. 성전을 지을 터도, 좋은 재료들도 모두 하나님께서 준비해놓으신 것입니다. 두로 왕 히람이 아니고 하나님이 다 역사하신 것입니다. 모두 다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지은 것인데 우리는 내가 노력하지 않은 것도 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똑같이 출애굽 했는데 누구는 하나님의 이름을 둘만한 집이 못되고 누구는 하나님의 이름을 둘만한 집이 되고 다스리는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만 다윗을 택했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예정론이 누구에게만 제한되어 있다는 말이 아니라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다윗은 누구 못지않게 죄를 지었지만 왜 택자인가 하면 그 죄에 대해서 날마다 회개하고 눈물로 통회하며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제자리는 회개하는 택자만 지킬 수 있습니다. 회개는 택자만 할 수 있습니다.
5. 후손들이 영의 성전을 짓는 자리입니다.
내 마음에 좋고 하나님께서 좋게 여기셔도 하나님이 거절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성전보다는 영적인 성전을 잘 지어서 쓰임 받으라고 하십니다. 눈에 보이는 성전을 안 주실 때는 반드시 더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인데 우리는 세상에서도 교회에서도 눈에 보이는 역할만 하고 싶습니다. 가시적인 것을 무조건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내가 선한 뜻으로 너무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내가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순종하면 네 몸에서 나올 네 아들이, 쟁쟁한 영적 후손들이 나와서 어마어마한 성전을 지어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적용하고 살 때 반드시 하나님께서 내 자녀에게 말씀을 두었노라의 인생이 될 줄 믿습니다. 내가 말씀을 두어야 우리 자녀들에게도 말씀을 두시는 것입니다. 영적 후손이 이어져 내려간다는 것입니다. 돈 있으면 돈으로 짓고 지식이 있으면 지식으로 성전을 지을 것인데 무엇보다도 말씀으로 성전을 짓는 우리가 되고 우리 자녀들이 되도록 늘 말씀으로 살고 말씀으로 양육하시기 바랍니다.
공동체 고백입니다. 이 분은 동창회 총무를 맡고 있는데 모임이 주일이어서 주일성수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며칠 후 동창회 이사회 공지문자가 왔는데 아내가 휴대폰 문자를 살펴보다 오해를 했습니다. 흥분한 아내는 계속 울기만 하고 말이 안 통했다는 것입니다. 너무 화가 났는데 내가 과거에 바람을 피웠고 내가 원인을 제공해서 아내 나이가 60을 먹어도 의심 병을 못 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내 노력으로는 안 되는구나 하면서 생각하니 화가 신기하게도 눌러졌답니다. 생각을 고쳐먹고 기도했답니다. '정말 죄인인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하나님만이 우리 가족을 고칠 수 있으시다'고. 그리고 아내에게 사실여부를 확인해보라고 하여 오해를 풀었답니다. 이게 주일목장 나눔인데 거기에 기도까지 쓰여 있습니다. 주님. 어떤 환경에서도 말씀으로 인내하고 적용하는 제가 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이것이 바로 남편의 제자리를 지키는 게 아니겠습니까? 먼저 회개한 사람이 제자리 지키는 것입니다. 평범한 삶이라도 아무리 감당하기 힘든 일을 겪어도 결국은 말씀으로 그 사건을 해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그네 인생이지만 말씀이 우리 삶의 중심에 놓이게 될 때 하나님의 영광을 넘치도록 보게 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