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욕적인 실수
창세기 20장 1-7절
우리는 모두 실수를 합니다. 그 중에는 돌이킬 수 있는 실수가 있고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치욕적인 실수가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실수를 어떻게 다루어 가시는지 본문을 통해 살펴봅니다.
치욕적인 실수는 나그네 인생길에서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아브라함이 남방으로 이사하여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우거합니다(1). 12장에서 아브라함이 기근을 피해 남방 애굽으로 갔다가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고 치욕을 당했습니다. 그런데도 은금과 육축을 얻어 왔기 때문에 거기에 또 뭔가 있을 것 같아서 남방으로 갑니다. 술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 제일 먼저 당도한 곳이고, 가데스는 가나안에 입성하기 전 신 광야입니다. 천국을 예표하는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 우리는 술과 가데스 사이 그랄에 우거하며 나그네 인생을 살아갑니다. 나그네 인생길에서 치욕적인 실수를 경험하며 이 땅은 잠시 우거할 곳이고 하나님 나라만이 영원하다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
실수가 반복되면서 치욕적인 실수가 행해집니다. 하나님께서 명년에 사라가 잉태할 것이라고 알려주셨으니, 이때는 영적 후사를 낳기 위해 사라를 지켜야 할 중요한 시기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다시 아내를 누이라고 속여서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 보냅니다. 자기 목숨을 지키려고 반복적인 실수로 거짓말을 합니다(2).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고 롯이 딸들과 동침하는 19장에 이어, 20장에 아브라함의 실수가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도 완전한 의인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행위의 의로움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치욕적인 실수를 해도 치명적인 실수가 되지 않게 하십니다. 열국의 어미 사라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야 하기에 하나님께서 급하게 ‘그 밤에’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셔서 사라를 취하지 말라고 하십니다(3). 아브라함이 잘나서가 아니라 인류를 구원하실 예수님이 오셔야 하기 때문에, 이 일이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에 긴급하게 막아주십니다.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살았다는 이방인 아비멜렉에 비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너무나 부족한 모습입니다(4-6). 그럼에도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택하심과 은혜로 우리의 실수에 간섭하시고 막아주십니다.
치욕적인 실수에도 불구하고 선지자로 삼아주십니다. 아브라함의 거짓말 때문에 아비멜렉이 죽음의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나의 불신앙적인 생각과 행위가 나와 공동체를 파괴합니다. 행위로는 아브라함이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 없는 치욕적인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아비멜렉 앞에서 아브라함을 ‘선지자’라고 불러주십니다. 치욕적인 죄 가운데 있어도 하나님을 믿는 아브라함을 선지자로 삼아주시고 믿지 않는 아비멜렉을 위해 기도하게 하십니다(7). 아비멜렉처럼 행위가 온전하고 지위와 권세를 가졌어도, 예수님을 모르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로 자살을 하고 절망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들을 전도하고 살리기 위해서 나를 선지자로 삼아주십니다. 세상을 위해, 안 믿는 가족과 이웃을 위해, 아비멜렉 같은 지도자를 위해 기도할 책임이 나에게 있습니다. 아직도 두려운 것이 많고 반복되는 실수를 행해도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세상을 구원하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불꽃같은 눈으로 지켜주시고 선지자의 특권을 허락해주십니다.
“아브라함이 거기서 남방으로 이사하여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우거하며 그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보내어 사라를 취하였더니” 창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