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천번제]
왕상 3:1~15
우리가 힘써 대장부가 되어 악을 척결하려면 결단이 필요한데, 결단을 잘하려면 천 번의 회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가고 오는 세대에 교회에 가장 영향을 끼친 그 유명한 일천번제를 드렸다고 합니다. 구속사적으로 해석을 잘해야 하는 일천번제의 암(暗)과 명(明), 즉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을 알아보려고 합니다.
첫째, 자기 열심의 일천번제는 불순종의 씨앗이 됩니다.
솔로몬 통치 후, 처음 기록된 행동이 불신결혼과 산당 예배인데, 나중에 결론을 보면 애초부터 불순종의 씨를 잉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 불순종의 씨, 불신결혼을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 바로 전 2장에서 나라가 솔로몬의 손에 견고하여지니라. 이후 곧바로 솔로몬이 애굽 왕 바로와 혼인 관계를 맺어 그의 딸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아도니아 등의 반역을 덮고 신하들을 처단하고 나니 두려웠을 것입니다. 또한 애굽의 침략을 막고, 주변 나라 침략에 애굽의 도움을 받을 수 있기에 혼인관계를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나라를 장악해야 하고, 애굽에서 400년 노예 생활하다 쫓겨났는데 그 나라 왕이 딸을 주겠다고 하니 결혼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또한, 바로 딸이 다윗성에 20년 동안 거했다고 하는데 유대 전승에 의하면 바로의 딸이 유대교로 개종하였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은 나라와 교회를 생각할 때 이치에 합당해 보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것은 이방인과 혼인을 금하고 병마를 많이 두지 말고 다시는 애굽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하는 하나님의 본질적인 명령을 어긴 것입니다. 솔로몬은 바로의 딸도 사랑했지만 이방여인을 자발적으로 집착하며 연애하고 사랑했습니다. 약속의 백성을 이끌어가는 이스라엘 왕으로서는 이런 악의 실마리를 제공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무서운 광야에서 싸우며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지만, 솔로몬은 다윗이 남겨준 전리품 때문에 가진 것이 많아 처음부터 능력으로 시작했고 불신결혼을 합리화 시키고자 그 능력으로 일천번제를 드렸을 것입니다.
2) 불순종의 씨, 또 하나는 산당예배입니다.
여호와의 성전건축이 끝나지 않아 산당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었습니다. 민수기 33장 52절에 산당을 파괴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지만, 가나안 정착 후 법궤를 블레셋에게 빼앗겼기 때문에 산당에서 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윗이 왕이 된 후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왔지만 이미 산당 예배가 만연해져 있었고 제사 기구가 기브온 산당 큰 곳에 있기 때문에 예배드리기 편한 것도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여호와를 섬기다가 산당이 우상숭배 혼합주의의 소굴이 된 것입니다. 그 많은 이방 여인들이 이방 땅인 이스라엘에 시집와서 에돔과 모압에서 가져온 밀곰 신과 아스다롯 신을 섬겼고, 왕이 그 많은 여인과 동침할 수도 없는 데다 일찍 죽었으니 여자들이 외로워 더욱 우상을 섬겼고 솔로몬 왕은 그것을 허용한 것입니다. 산당 예배는 기복이고 언약궤 말씀이 없기 때문에 불완전합니다. 또한 이스라엘을 타락시키는 온상 역할을 하였습니다. 산당에서 드린 솔로몬의 일천번제는 기복을 너무나 자극하여, 가고 오는 세대에 전설이 되어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이 땅에 불순종의 씨앗을 잉태한 솔로몬은 부귀영화 때문에 분열된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 자기 회개의 일천번제는 주의 마음에 드는 기도입니다.
일천번제의 긍정적인 면을 생각해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의 한계, 우리의 한계를 아시고 밤에 꿈에 나타나셔서 부족함을 채워주십니다. 꿈에 나타나셨다는 것은 솔로몬의 번제를 기쁘게 받으셨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일천 번제가 천 일인지 천 마리인지 의견이 분분하지만, 여하튼 천은 완전 수입니다. 번제는 태우는 제사로 일천번제는 나를 태워 주님의 제물로 드리겠다는 헌신을 완전수로 표현한 것입니다. 천 번은 인내의 헌신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능력의 왕이 된 솔로몬이 천 번을 회개해서 자신의 부족을 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에 적어도 이때 솔로몬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렸다고 생각됩니다. 죽어라 자기를 비워서 하나님께 합당한 제사를 지내는 그곳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기뻐서 꿈에 나타나 '네가 기도하는 주제가 뭐냐?'고 물으셨습니다. 솔로몬은 듣는 마음을 달라고 합니다. 솔로몬은 자신이 왕이 된 것은 아버지 다윗 때문이고 자신의 공로는 하나도 없음을 알고 자신의 교만과 무능 부족함을 고합니다. 듣는 마음을 주셔야 선악을 분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듣는 마음은 지혜로운 마음이고 지혜로운 마음은 십자가의 마음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교제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의지를 드리는 과정입니다. 따라서 기도한 후에 취할 태도는 소원 성취에 대한 기대보다는 순종입니다. 일천번제의 최고의 기도 응답은 듣는 마음입니다. 백성들의 고난과 아픔을 가만히 들으면서 하나님의 지혜를 받을 때 섬김의 리더십이 나옵니다. 영적인 것을 구하면 필요에 따라 장수와 부귀도 허락하십니다. 순서가 바뀌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길로 행하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킬 때 생명 연장의 축복을 주신다고 하셨는데, 그것은 제발 긴장하며 깨어서 이 축복을 누리기 바라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불행히도 솔로몬은 초심을 버리고 우상숭배를 해서 타락의 길로 걸어가고 말았습니다. 문자적인 일천번제보다 다윗의15 광야의 인생이 계속 회개하며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영적 일천번제이자 축복의 비결인 것입니다. 일천번제 회개 기도의 결론은 신하를 위해 잔치를 하였더라는 것처럼 공동체와 더불어 나가는 것입니다. 일천번제의 결론은 사명입니다. 공동체와 함께 일어나기 위해서 회개하고 기도하고 말씀 보는 것입니다. 일천번제의 자기 회개로 듣는 마음을 구하여 주의 마음에 합한 기도를 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