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후손]
왕상1:1~27
열왕기서의 시대적 배경은 다윗의 뒤를 이은 솔로몬 초기부터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던 여호야긴 왕이 37년 만에 출옥한 시기까지의 사백여년간의 기간입니다. 이스라엘 왕들의 업적이나 실패와 잘못을 정치 사회 경제적 측면에서 바라보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과 선지자들을 통하여 주신 메시지를 기초로 조명하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끊어질뻔 했던 믿음의 후손이 다윗에서 솔로몬으로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보겠습니다.
1. 평생의 약점인 여자문제를 통과합니다.
다윗왕이 늙었습니다. 시종들이 지체의 사랑으로 심히 아름다운 처녀 아비삭을 데려옵니다. 다윗이 전쟁을 치르면서도 여자를 얻어들였고 그 기가막힌 밧세바사건 이후 아들을 쳤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후궁들과 동침을 했습니다. 평생 끊어내지 못하는 약점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이 백주에 자기의 첩들과 동침을 하는 사건 이후에 드디어 다윗이 여자문제를 끊었습니다. 압살롬 반역사건 이후에 그 후궁들을 죽는날까지 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밧세바보다 더 심히 아리따운 처녀와 동침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여자문제에 대한 마지막 테스트를 통과한 것이라고 보여집니다. 솔로몬을 영적후계자로 세우는 시점에서 드디어 약점을 끊어내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자세하게 반복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이런 사람인데도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으니 우리도 자손이 잘 믿으려면 해결하려 하지말고 해석을 잘하고, 말로만 믿으라고 하지 말고 먼저 우리의 약점을 끊어내라는 이야기입니다. 믿음의 후손을 위해 내가 해야할 일은 자녀들에게 큐티해라 말아라 하기 전에 내가 큐티해야합니다. 자녀들에게 탐식하지 말라고 하기 전에 내가 탐식하지 않아야 되고 게임 끊으라 하기 전에 내가 먼저 끊어야됩니다.
2. 자녀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보고 통과합니다.
여자문제보다 더 지독한 문제는 자녀문제입니다. 아도니야는 이름의 뜻이 여호와는 나의 주입니다. 용모가 심히 준수하고 아버지에게 한번도 섭섭한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 아들이라고 합니다. 그 어머니의 이름은 축제라는 뜻인데 아도니야를 통해 잔치를 벌이고 싶은 아들이었습니다. 다윗의 약점은 이런 잘생긴 아들을 계속 편애하는 것입니다. 객관적으로 보지 못합니다. 다윗은 그런 자식에게 잔소리는커녕 한번도 섭섭하게 한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징계를 아끼는 눈먼 애정은 자식을 망치는 첩경입니다. 다윗은 압살롬의 아픈 전철을 밟지 않기위해 무조건 잘한 것 같습니다. 압살롬을 냉대했다가 이런 엄청난 일을 당했으니 다윗에게도 트라우마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어려운 일을 당해본 적이 없는 아들에게 아버지가 그렇게 잘하니까 자기를 위하여 스스로 높이도록 아버지 다윗이 조장한 면이 있습니다. 잘난 아도니야로서는 자신이 왕의 후계자라고 믿는 것이 당연합니다.모든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한 장점이 있습니다. 인간관계를 잘 맺는 것이 장점인 사람이 그 장점으로 하나님을 전한다면 큰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인데 관계 속에서 사람들과의 즐거움만 찾기를 원하고 그 속에 야망을 숨긴다면 이렇게 아도니야처럼 열매없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늘 잘한다 잘한다 하면서 세상왕을 만들어주는 섭섭한 말을 한번도 안하는 아버지가 있는가하면 세상왕을 만들기 위해 날마다 섭섭한 말로 상처를 주는 부모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부모 저 부모 다 예수믿게 해주는 부모가 최고입니다.
3. 반역의 위기를 통해서 부하문제도 통과합니다.
드디어 요압의 실체가 드러납니다. 요압이 스스로 사단의 편에 붙게되는 일이 일어납니다. 요압과 아비아달이 다윗을왜 버렸을까요?다윗이 늙고 힘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도니야가 너무 준수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능력과 출중한 외모에 넘어가서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 다윗을 배신한 것입니다. 요압과 아비아달은 보이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인간의 지혜와 하나님의 약속은 비교가 안됩니다. 큐티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날마다 기억하고 가는 것입니다. 끊임없는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함과 의로 교육을 받는 큐티, 성경묵상을 하며 자신을 쳐 복종시켜야합니다. 우리는 누구와 함께 할까를 생각해야될 때도 있지만 8절처럼 누구와 함께 하지 않아야할까도 묵상해야합니다. 소극적으로 가만히 있기보다는 적극적으로 편을 들지 말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집안에서도 예수를 믿어서 따돌림 당하는 경우가 있고 교회일 열심히 하다보면 세상 친구들에게 초청을 받지못할 때가 종종 있는데 솔로몬은 초청받지 못해서 얼마나 감사해야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막상 닥치면 속이 쓰립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주님께 부르짖게되니 감사해야합니다. 구원받은 사람 몇 명만 있으면 하나님 나라는 이루어져갑니다. 이런 몇 명만 있으면 만명 성도도 얼마든지 감당한다고 목회자 세미나 때마다 이야기를 합니다. 그 한 명이 없어서 교회가 망하는 것입니다. 내게 도움주는 세상의 유력한 자들과 어울리면 좋을 것 같지만 약속이 있는 공동체와 함께 하는 것이 믿음의 후손이 이어지는 비결입니다.
4. 인간적인 속임수와 영적인 계책을 분별합니다.
다윗과 나단은 서로 너무 신뢰하는 관계입니다. 서로 어려워하는 관계가 아닙니다. 제사장 사독이 있고 아비아달도 있지만 다윗이 진짜 신뢰하는 사람은 바로 나단입니다. 그러나지금 언약궤를 지키고 신뢰받는 제사장 아비아달이 아도니야편에 섰기 때문에 사독편을 들어나단이 직접 다윗에게 들어가면 정권싸움으로 비칠 우려가 있습니다. 믿음의 후손인 솔로몬의 생명을 구하기위해 직접 가지 않고 밧세바가 다리를 놓고 후에 나단이 들어가 하나님의 약속을 상기시킵니다. 이게 계책입니다. 이런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 계책은 사리사욕이 아니고 예수생명이 들어갈 계교입니다. 인간적인 속임수와 영적인 계교는 아주 다릅니다. 그런 분별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합니다. 항상 순간순간 자기의 자리를 아는 것이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아비삭은 심히 아름다운 처녀인데 다윗이 왕이라서가 아니라 늙었으므로 시중들었다고 했습니다. 다윗을 하루라도 더 살려서 하나님 나라가 이어지게 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믿음의 후손은 항상 자기 주제를 아는것, 자기자리를 아는 것입니다. 자기자리를 아는 것이 하나님의 자리를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리를 상실할수록 월권과 교만이 나오게됩니다. 이 세상은 혼자 못갑니다. 함께 말씀으로 삶을 나누며 나를 일깨워줄 밧세바와 나단 같은 지체와 영적인 계책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