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하나님 성전의 문지기]
시편84편
시편 84편의 제목에 고라 자손의 시. 인도자를 따라 깃딧에 맞춘 노래라고 쓰여 있는데, 깃딧은 기쁨의 곡조라는 뜻으로 포도를 틀에 넣고 즙을 짤 때 부르는 노래라고 합니다. 포도가 즙이 되기까지 무수히 밟혀야 하는 것처럼 고라 자손도 밟히고 무시 천대당하면서 십자가의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가 얼마나 기쁨으로 성전을 사모하는지 본문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주의 장막을 너무도 사랑합니다.
고라는 레위 지파로서 모세와 아론의 권위에 도전했던 사람입니다. 평소에 모세처럼 되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있다가 어느 날 약점을 발견하고 권위에 도전합니다. 육적 정신적인 범죄보다 영적인 범죄가 더 크기에 땅이 쩍 갈라져서 고라자손이 멸망했습니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스스로 높아지고 남을 가르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데, 이런 고라 자손의 욕망이 우리 마음속에도 숨겨져 있습니다. 고라 자손은 멸망했지만 그 후예들은 남겨져서 문지기와 찬양대로 봉사하게 되었습니다. 역대상 9장과 역대하 20장에 이 이야기가 나오는데, 150편에 달하는 시편 중에 고라 자손의 시가 11편이나 되는 것을 보면 조상의 죄가 우리 대에서는 끊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기브온 족속처럼 나무 패고 물을 길어도 자기 죄를 확실히 인정하는 사람은 주의 장막을 사랑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라는 자기 생각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했는데 모세를 대적했다고 비난을 받았지만, 루터는 당시 최고의 권위자인 교황 레오 10세에게 95개 논조로 당시 교리를 비판했음에도 개혁자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누구는 반역이고 누구는 개혁자일까요? 개혁의 본질은 예배의 회복이고 주의 장막을 사모함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묵상하며 공동체 속에서 예배를 너무 사모하는 우리들 교회를 보면 저절로 개혁되는 것을 너무도 많이 보게 됩니다. 예배드릴 장소와 시간, 같이 나눌 지체와 통하는 공동체가 있다는 것은 정말 복 중의 복입니다. 저는 고난을 겪는 동안 주의 장막, 주님이 임재하시는 그 장소와 시간에 대한 사모함이 있었습니다. 성경이 구속사적으로 읽히고 주님의 임재하심을 경험한 사람들이 모이는 그곳이 주의 장막이 됩니다.
둘째, 여호와의 궁정을 쇠약하기까지 사모합니다.
쇠약해질 때까지 앉으나 서나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계신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입니다. 반역의 죄가 흐르는 고라 자손이 주의 궁정에 하루만 살아도 좋겠다고 하며 조상의 죄를 내 죄로 여기고 겸손합니다. 인생에 광풍이 휘몰아쳤다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고라 자손처럼 우리 조상에게 뭐가 있어서 그렇겠구나! 생각하고 주의 궁정을 사모해야 합니다. 마음과 육체를 어거(馭車:수레나 메운 소나 말을 부리어 몰다. 거느리어 바른길로 나가게 하다.)하기가, 즉 바르게 다스려 나아가기가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를 하게 되는 것은 나의 육신의 정욕을 어거하기 힘들어서 그런 것입니다. 어떤 것 한 가지도 제대로 조절할 수 없는 것이 육체입니다. 우리들 교회에도 혼전순결을 못 지킨 청년들, 식욕을 조절하기 힘들어하는 분들, 부인이 다른 남자와 주고받은 문자로 감정이 통제 안 되는 남편 등 마음과 육체를 어거할 수 없는 분들이 계십니다. 상처가 많으면 100% 남을 공격하거나 자기를 공격합니다. 착한 사람은 없고 예수를 믿느냐, 안 믿느냐 밖에 없습니다. 예수가 없으면 상처가 해결이 안 되어 쇠약해져서 내 마음과 육체를 어거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쇠잔해져야 내 육체와 마음이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셋째, 눈물 골짜기의 복을 사모합니다.
나는 형편없지만, 주님께 부르짖으니 안식을 얻었습니다. 주께 힘을 얻으면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게 되는 복이 임합니다. 꼬인 마음이 다 풀리고 대로가 열립니다. 고라 자손은 자기 방법으로 애를 쓰다가 마음에 원망의 대로, 미움의 대로, 불법의 대로, 될 대로 되라는 정욕의 대로가 있어서 힘을 못 얻었습니다. 하지만 이것 때문에 눈물 골짜기를 통과하니 다른 사람들이 샘물을 마시게 됩니다. 남편, 자식이 속을 썩이니까 주의 궁정을 사모하게 됩니다. 눈물 골짜기는 지나간다고 그랬지 극복한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에는 극복이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눈물골짜기를 통과하는 것이 성도의 인생입니다. 시온의 대로가 있는 인생, 즉 말씀의 대로가 있는 인생은 아무리 눈물 골짜기를 통과해도 메마른 사람에게 샘물이 되어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녀들이 어려서부터 말씀을 듣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면 힘들 때 어디를 가야 할지 누구한테 가서 물어봐야 할지 압니다. 그런데 다들 사건이 왔을 때 어디에 물어야 하는지 몰라서 자살하고 이혼을 합니다.
넷째, 주의 궁정에서 한날을 사모합니다.
문지기는 주의 궁정에서 한날을 사모하며 점점 주께 힘을 얻습니다. 영적인 자는 조그만 것 하나도 감사하니 감사 제목이 쌓여 점점 힘을 얻어갑니다. 반면, 비판하는 사람은 날마다 비판을 하니까 있던 힘도 점점 없어집니다. 8절에 기도의 대상은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특별히 부르짖는 것은 약속의 조상 중에서 가장 인간적으로 돈과 여자 욕심이 많았던 야곱을 이스라엘 되게 하셨기 때문에 성경은 계속 야곱의 하나님을 이야기합니다. 9절은 나를 도와줄 자가 이 세상에 없지만, 방패 되신 하나님이 오직 나의 보호자라고 합니다. 나는 기름 부으신 자, 택한 자녀이니 나의 얼굴을 살펴보시라고 하며 하나님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사모합니다. 다음 절이 그 유명한 10절입니다.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고라의 반역으로 인해 쫓겨났던 자들이 하나님의 궁정으로 다시 돌아올 수만 있다면 문지기라도 화장실에만 있어도 너무나 좋은 것입니다. 그리고 가문을 멸절시켰음에도 하나님은 제일 좋은 것을 아끼지 않으신다는 믿음의 고백을 했습니다. 우리는 주께 의지하지 않으면 날마다 실수하고, 정직하게 살 수 없고, 날마다 치우치고 지나치고, 말이 많거나 부족하고 과장하고, 한계를 뛰어넘는 약속을 하게 됩니다. 주께 의지하여 모든 것을 잘 분별해서 주님의 복, 바라크의 복, 엎드려 경배하고 예배하고 기도하는 이 최고의 복을 받기를 소원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성전 문지기의 복인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