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구원
창세기 19장 23-28절
공중목욕탕에 불이 나서 밖으로 대피해야 한다면 어디를 가리고 나갈까요? 벗은 몸이 부끄럽다고 안 나온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무리 부끄러워도 생명이 달려있기에 밖으로 뛰쳐나와야 합니다. 마지막에 부끄러운 구원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부끄러운 구원을 얻게 될까요? 왜 부끄러운 구원조차도 얻지 못할까요?
눈을 멀쩡하게 뜨고도 심판의 때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롯이 소알에 들어갈 때에 해가 돋았습니다(23).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이 환히 드러나서 롯은 하나님의 강권하심으로 부끄러운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소돔, 고모라 성과 그 백성들은 부끄러운 구원도 얻지 못하고 불과 유황의 심판을 당합니다(24-25). 이때의 불 심판으로 지층이 낮아지고 물이 빠져나갈 곳 없이 고여서 죽음의 바다, 사해(死海)가 됐습니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재난의 마지막, 죽음의 심판이 소돔과 고모라에 행해진 것입니다. 악하고 음란한 이 세상은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계속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을 통해 심판의 말씀을 듣고 예비하는 사람은 망하는 사건이 와도 놀라지 않습니다. 십자가 없이는 부활이 없기에, 십자가 지는 심판을 당해야만 구원을 얻고 부활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돔처럼 모든 것을 갖춘 사람일수록 심판과 십자가의 말씀을 듣기 싫어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기에 심판의 때를 모르고, 힘든 사건이 오면 해석을 못하고 죽어갑니다. 그래서 부끄러운 구원도 얻지 못할 사람들이 내 옆에 있습니다. 그들이 듣건 안 듣건 끊임없이 예배로 초청하며 말씀을 들려주어야만 부끄러운 구원이라도 얻을 수 있습니다.
한 몸인 부인이 구원되지 못했으니, 이것 또한 부끄러운 구원입니다. 롯의 아내는 돌아보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고 뒤를 돌아봅니다. 수십 년 모은 재산을 두고 떠나자니 억울하고 아까워서, 그냥도 아니고 골똘히 쳐다보다가 소금 기둥이 됩니다(26). 지금도 사해 연변에는 롯의 아내로 추정되는 소금 기둥이 교훈으로 남아있습니다. 한 몸인 부부로 살았어도 한 사람은 구원으로 이끄시고 한 사람은 심판하실 수 있습니다. 심판의 순간까지도 망한 세상을 그리워하며 돌아보는 사람은 부끄러운 구원도 얻지 못합니다. “한 번만 더 도와주면, 한 번만 더 투자하면, 한 번만 더 만났으면”하는 허황된 생각으로 뒤를 돌아보는 자는 마지막 구원의 기회도 놓치고 영원히 멸망합니다.
기도하고도 결과를 살피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결과를 신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기도의 결과를 살피려고 일찍 일어나 여호와 앞에 섰던 곳에 이릅니다. 눈을 들어 소돔과 고모라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심판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27-28). 아브라함은 아무리 기도해도 도울 수 없는 사람이 있다는 걸 인정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응답으로 받았습니다(18:33). 하나님의 결과를 신뢰하고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실 것을 믿었기에 롯을 구하러가지 않았습니다. 구원을 위해 기도한다고 하면서 결과를 살피지 않고 관심도 없기 때문에 가족의 구원이 멀어집니다. 내가 원하는 응답이 아니라고 하나님의 결과를 신뢰하지 않는다면 부끄러운 구원도 얻을 수 없습니다. 영혼 구원이 하나님의 영역이기에 기도해도 안 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구원하신 것처럼, 날마다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살피며 하나님의 결과를 신뢰해야 합니다. 부끄러운 구원이라도 반드시 이루어 주실 것을 믿고 눈을 들어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옳으심을 인정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에게로서 유황과 불을 비 같이 소돔과 고모라에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 본고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창19:2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