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와 그 실체]
이태근 목사
히10:1~18
본문에 나오는 구약의 제사는 의식을 중심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한 형식입니다. 그런데 죄를 위하여 다시 제사를 드리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율법으로 주신 구약의 제사를 다 폐하시고, 신약에 와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게 하셨는지 말씀을 통해서 함께 생각해보고 적용할 것을 찾아보면 좋겠습니다.
첫째, 율법은 그림자일 뿐입니다.
1절에서 율법은 짐승으로 드려지는 희생 제사를 의미합니다. 짐승으로 드려지는 희생 제사는 참형상이 아니고, 그림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초대교회 당시,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 중에 실체와 그림자를 구분하지 못하고, 다시 짐승을 잡아 제사를 드리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실체와 그림자를 구분하지 못하기에 남편을 의지하고 남편의 사랑을 받으며 살고 싶어 하지만, 남편과 자식들에게 배신당하고, 그럴수록 남편과 자녀들을 달달 볶아서 희생 제사를 드립니다. 하지만 내 열심으로 반복해서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도 남도 온전하게 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율법은 짐승을 잡아끌고 온 사람들에게, 그 짐승을 잡아서 각을 뜨는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잔인한 과정을 통해 죄의 심각성을 깨닫게 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짐승의 피가 죄를 정결케하는 능력은 없지만 죄를 기억나게 합니다. 구약의 제사가 없었더라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처참하게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신 대속의 사건을 이해하는 게 더어려웠을 것입니다.
최근 불신교제 중인 아들의 여자 친구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들은 그동안 들은 말씀은 있어서 생명을 지키는 것으로 여자 친구를 설득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들이 청소년부 수련회 이후 계속 주일예배를 빠지고 있는 상태여서 더욱 마음이 답답하고 한숨만 났습니다. 아들은 그날 말씀을 보면서 자기가 성소로 가는 길을 잃어버린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아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신 성도님들 앞에 설 면목이 없고, 걱정을 끼쳐드리는 것 같아 죄송합니다. 아들 여자 친구의 임신 사건 앞에서 실체와 그림자는 무엇일까요? 짐승의 피는 죄를 정결케 하는 능력이 없다고 했는데 부모로서 지금까지 제가 흘렸던 피는 보혈의 피가 아닌 짐승의 피는 아닐까요?
둘째, 실체로 오신 예수님을 붙잡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라고 합니다. 나쁜 그림자가 아니랍니다. 율법이 좋은 그림자가 되기 위해서는 실체와 그림자를 구분하고 실체로 오신 예수님을 만나야합니다. 예수님은 어떤 실체일까요?
1)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내 뜻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오셨습니다. 성부 하나님은 제사와 번제와 속죄제를 원하지도 기뻐하지도 않으시며, 예수님은 이 성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오셨고, 예수님의 사역은 첫째 것을 폐하심으로 둘째 것을 세우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제정하고 명하신 제사를 왜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다고 하실까요? 그림자와 실체는 동시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실체가 오면 그림자는 그 자리를 내주어야 합니다. 실체가 왔는데 여전히 그림자를 붙잡기 위해서 집착하고 있다면 그것은 이미 진리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짐승의 피는 죄를 정결케 하는 능력이 없지만, 보혈의 피는 죄를 정결케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내가 드리는 것이 짐승의 피로, 율법과 기복으로 드리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구원 때문에 보혈의 피로 드리는 예배인지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저는 일찍이 사역자로 부르심을 받았지만, 실체이신 예수님을 붙잡지 못하고 목사 아닌 다른 인생을 꿈꾸며 그림자를 붙잡으려고 했습니다. 아들을 키우면서도 아들이 아빠처럼 살지 않고, 자유롭게 자기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기를 원했습니다. 제가 붙잡고 있던 그 모든 것들이 실체 없는 그림자였다고, 아들의 사건을 통해서 계속해서 제게 말씀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2) 예수님은 단번에 영원한 제사를 드렸습니다.
구약의 제사장은 매일, 서서, 자주, 같은 제사를 반복적으로 드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짐승으로 드려지는 제사의 불완전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오신 예수님은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 즉 단번에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몇 달 전 아들의 사건은 매일 같이 서서 섬기는 적용으로 분류 심사원에 찾아가고, 아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짧은 면회시간을 통해 같이 큐티하고, 4주간의 시간을 잘 인내하고 버틸 수 있도록 하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예수님이 죄를 위하여 아들을 만나주시고, 구원을 위하여 여자 친구를 만나 주시고, 생명을 위하여 여자 친구의 부모님을 만나주셔야 공동체에서 생명을 낳고 온전함을 이루어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면목 없고 너무 죄송하지만, 지은 죄를 회개하고 생명을 낳을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3) 예수님은 새 언약을 도래케 하십니다.
새 언약의 특징은 하나님의 법을 그들의 마음과 생각에 새겨주시고, 죄와 불법을 다시는 기억하지 않으시며, 죄를 위한 제사를 폐하셨다는 것입니다. 옛사람을 버리고, 새사람을 입으라는 것입니다. 돌 판에 새겨진 말씀으로 돌을 던지며 남을 정죄하는 것 그만하고, 내 마음 판에 새겨진 말씀으로 먼저 자기를 살펴보라고 주시는 의미 같습니다. 돌이켜보니 아들은 생명을 지키겠다고 회피하지 않는데, 저는 첫째 아이와 셋째 아이 사이에주신 생명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아내에게 알아서 잘 결정하라며 무책임하게 살인을 방조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죄와 불법을 다시는 기억하지 않는다는 말씀은 용서받았으니 괜찮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죄의식은 깨어나야 하지만, 죄책감에 사로잡히지는 말라는 말씀입니다. 담임목사님께 아들의 사건을 메일로 드리니 이렇게 답을 주셨습니다. '기가 막힙니다. 기도할게요.' 표류하는 배처럼 마음을 잡을 수가 없었는데 목사님의 답신을 받고 마음에 안정이 찾아왔습니다. 이후로 아들과 큐티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기업을 약속으로 받기 위해서 피 흘리는 적용이 필요하다고 하시는데, 아들도 저도 그 길을 함께 걸어갈 수 있도록 인도해주시기를 아들과 함께 기도했습니다. 그동안 공동체에서 양육 받은 대로, 마음 판에 새겨진 그 말씀대로 하나씩 적용하며 옛사람이 아닌 새사람으로, 주의 백성, 주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