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보존하라
창세기 19장 12-22절
중세의 흑사병, 20세기 스페인 독감과 최근의 사스, 조류독감, SI 등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의 숫자가 1,2차 세계대전으로 죽은 수보다 많다고 합니다. 백신 개발도 전염병의 유행을 막을 수 없고, 우리의 목숨을 지키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물어야 합니다.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경건으로 이끌어주는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남색하는 자들의 눈을 어둡게 하셔서 롯을 살리셨지만 소돔의 심판은 이미 시작됐습니다. 심판 가운데 롯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롯과 그에게 속한 자들까지 성 밖으로 이끌어내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생명을 보존할 수 있습니다(12-13). 심판이 임박한 세상에서 경건으로 이끌어주는 지도자가 있을 때 생명을 보존하고 구원을 얻게 됩니다.
경건을 농담으로 여기기 때문에 생명을 보존하지 못합니다. 롯의 사위들은 하나님께서 소돔을 멸하신다는 말을 농담으로 여깁니다(14). 천사들을 지키려다 죽음에 이르렀던 롯은 자신의 무능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소돔에서 잘 살고 있는 사위들은 심판에 동의하지 못합니다. 하나님 앞에 인간의 무능을 인정하는 것이 경건인데, 사람의 능력에 의지하고 사람의 영향을 받으면서 경건을 농담으로 여깁니다. 경건을 모르기 때문에 상황을 분별 못하고 들어야 할 말을 못 알아듣습니다.
생명을 보존하려면 지체하지 말아야 합니다.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이 롯을 재촉합니다. 소돔의 형벌과 롯의 가족을 분리하시고 아내와 두 딸을 이끌라고 하십니다(15). 그러나 거기에서 롯이 지체합니다. 롯은 소돔의 악함을 알면서도 안목의 정욕으로 소돔을 택했습니다(창13:10-13). 하나님을 아는 경건이 나와 가족, 모두의 유익인데 세상의 화려함을 포기하지 못하고 지체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인자를 더하심으로 롯과 가족들의 손을 잡아 성 밖으로 인도하십니다(16).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산으로 도망하라고 하십니다. 산으로 도망하라(17)는 것은 멸망을 면하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초청입니다. 도망하는 행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초청을 받아들여야 생명을 보존할 수 있습니다. 생명을 보존하고 나면 돌아보거나 들에 머무르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17).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명령과 교훈을 받으며 구원을 유지하는 것이 생명 얻은 자의 책임입니다.
끝까지 기다리시는 주님 때문에 생명을 보존할 수 있습니다. 롯은 재앙을 만나 죽을까 두려워서 산까지 도망할 수 없다고 합니다. 재산에 대한 미련으로 작은 성을 구하면서 ‘욕심이 아니라 두려워서 그런다’고 합리화합니다(18-20). 예배와 큐티가 살 길이라고 해도 안 믿는 배우자, 시부모님 핑계를 대며 ‘예배에 갔다가는 죽는다’는 것이 우리의 주제가입니다. 온전한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는데, 사랑이 없이 인정받으려고만 하니까 욕심과 두려움으로 죽는 소리를 합니다. 그래서 ‘경멸할 만하다’는 뜻의 소알에서 경멸받는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경멸받아 마땅한 롯도 구원해주십니다(21-22). 욕심과 불평으로 지체하는 나를 끝까지 참으시고 구원하십니다. 나에게 더하신 하나님의 인자를 기억하며, 내가 경건으로 이끄는 지도자가 되어 다른 사람을 살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는 식구들, 소알에 가겠다고 우기는 지체들이 있어도 그들을 끝까지 기다리며 사랑하는 것이 우리들의 생명을 보존하는 길입니다.
“그 사람들이 그들을 밖으로 이끌어낸 후에 이르되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무르거나 하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 창19:17